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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l 22. 2023

제주 또는 속초

  함께 지내는 며칠 동안 아버지를 많이 닮아있는 동생을 보았다. 욱하는 성격과 별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차가운 듯 친절한, 어딘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그런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우리 형제와 대화가 없었던 아버지였다. 마음으로는 신경 쓰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냉정해 보였던 아버지를 동생도 닮아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투병 생활을 하시던 때에도 동생은 나와는 다르게 늘 병원에 가 온갖 궂은 간병을 도맡아 했다. 난 주말에 한 번 정도 생색내듯 간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동생이 특별히 아버지와 관계가 돈독했던 것도 아니었다. 엄마의 부탁이기도 했고 난 당시 고3이라는 이유로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린 것이다. 동생은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아버지 곁을 지켰다.  


  성정이 모질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며 마음이 여린 동생에게, 그것도 외국인 노동자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자리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상관에게는 할 말 다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돈을 벌러 한국에 왔지만, 간단한 한국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에게 번역기를 돌려가며 친절히 설명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도 했다. 한번은 한국 사람을 쓰면 편하지 않냐고 물었다.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지 않다는 단호한 대답이 나왔다. 이유인즉 일하려는 사람도 없지만 불평불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다면 군소리 없이 일하는 것을 오히려 좋아한다고 했다. 


  속초에 머물며 알게 된 또 한 가지는 이곳 토박이보다 동생처럼 외지에서 온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속초 해수욕장 앞은 예전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호텔도 계속 생기고 있다. 양양부터 낙산, 속초를 거쳐 고성까지 동해안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새로 건설되는 호텔은 대규모로 지어지고 있고 갈수록 경쟁도 심해질 것이다. 기존의 펜션, 모텔, 민박은 점점 마천루의 그늘로 밀려나 바다의 풍경을 빼앗긴 채 도태되고 있다. 적은 인원이 운영할 수 있던 숙박업은 이제는 몇 배의 인력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자연스레 외국인 노동자가 그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세인 요즘이지만 객실 정비와 서비스는 사람만이 할 수 있기에 오히려 커지고 있는 시장이다. 


  동생은 아직 젊은 나이에, 그것도 꽤 짧은 시간에 속초에 정착했다. 이 정도 단기간에 자리를 잡은 것은 드문 경우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느닷없이 속초에 와서 혼자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는 동생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애틋해 보이기도 한다. 연극배우였던 젊은 시절부터 속초에 오기 전까지 하는 일마다 힘겹고 아픈 세월을 보낸 동생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안정된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요즘은 자기 일을 배워두면 도움이 될 거라 말하며 계속 함께 있길 나에게 은근히 권유하고 있다. 내가 제주도에 정착할 계획이 있는 것을 알기에 더 적극적으로 속초의 장점과 나에게 올 이득을 설명하기 바쁘다. 나 역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내가 나아갈 방향이 더 명확해질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시작하는 방법은 그만 말하고 이제 행동하는 것이다.’

  ‘인생은 속도보단 방향이고, 방향보단 시작입니다. 일단 시작하세요.’

  ‘수많은 각오를 했네. 한 번의 행동을 할걸.’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많은 생각은 답을 주지 않는다. 더 많은 생각을 줄 뿐.’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다. 결국 행동해야 변화가 오고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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