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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Aug 12. 2023

벌써 잘 시간입니다

  동생이 속초에 와 살게 된 이후로 밤늦게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 일찍 잠이 들기 때문이었다. 이해되지 않았다.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내 친구 ‘농장’도 밤 열 시쯤 잠이 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전형적인 농사꾼이다. 역시 이해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어릴 적부터 잠이 없던 나는 모두 잠이 든 밤의 고요함이 좋았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잔잔한 포크송을 들으며 애틋한 사랑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했다. 그런 내가 밤 열 시면 병든 닭처럼 졸고 있다. 


  책을 펴면 몇 줄을 채 읽지 못하고 잠든 적 없는 잠에서 놀라 깨어나기 일쑤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펴면 몇 줄을 채 쓰지 못하고 감은 적 없는 눈꺼풀을 치켜뜨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기도 한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글을 써보자, 다짐했다. 하루를 커피 향기 그윽한 책상에서 우아하고 지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느긋한 아침. 명상과 지혜로운 고전의 가르침으로 나만의 아침을 만들자. 라고 다짐한 지 한 달. 젠장. 


  잠을 이길 방법은 없다. 내가 그나마 이길 확률이 높은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SNS와 유튜브, 넷플릭스와 게임을 줄이기로 다짐하고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그러자 어느덧 더 큰 화면으로 SNS와 유튜브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이렇게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었나 싶다. 실망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목적인지, 오늘도 글을 썼다는 기록이 목적인지 불분명해졌다는 생각이 났다.


  내가 나를 너무 목적 없는 목표에 가두는 것은 아닐까? 글은 쓰고 싶은데 왜 써야 하는지 모르면서 무작정 글 근육을 키운다며 써내려 가면 글이 될까? 글의 내용보다 제목 하나 잘 만들어 조회수만 많이 나오면 좋은 글인가? 내 생각을 적었을 뿐인데 옳고 그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어떡하지? 등등. 오랜만에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나도 모를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해 본다. 분명한 것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쓰니 행복하다. 이제 그만 자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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