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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May 25. 2023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오늘이 낯선 지구 여행자입니다만 ep5

  아이들이 없어졌다. 동이 트기 전이라 밖은 아직 어두웠다. 새벽예배에 다녀온 우리 부부는 덜컥 겁이 났다. 분명 문은 닫혀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들춰보고 침대 밑을 확인했다. 화장실에도 베란다에도 없다. 집 어디에도 아이들이 없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당황하면 안 된다. 정신 차려! 나쁜 생각은 하지 말 자. 아무 일 없을 거야. 일단 휴대전화를 들었다. 꿈을 꾸고 있다면 빨리 깨고 싶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만 같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아내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고 있었다. 경찰에 전화해야겠다. 


  딸이 7살이었다. 아들은 5살. 내일 소풍을 간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간식거리를 사러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마트에 갔다. 좋아하는 음료수 작은 것 하나, 과자 하나를 골랐다. 딸은 무언가를 고를 때 신중하다. 사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 가장 어려운 고민거리다. 눈동자가 빠르게 진열장을 훑고 간다. 그런 아이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났다. 내가 그랬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인지 늘 생각했다. 다 가질 순 없었다. 하나를 가지는 것도 사치였다. 난 아이에게 하나 더 사라고 했다. 나를 올려다보더니 아빠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옆에 있던 분홍색 과자 상자를 집어 들었다. 

 

  이미 방에는 여러 벌의 옷을 펼쳐 놓았다.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아침은 제법 쌀쌀했다. 하지만 낮엔 금방 여름이 올 것처럼 더운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빨간색과 노란색 면 티셔츠가 딸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예뻤지만 아이는 고민했다. 동생은 그런 누나의 고민에는 관심도 없었다. 무엇을 입든 중요한가. 뛸 곳만 있다면 최고다. 소풍 가방에 넣을 음료수는 냉장고에 있다. 아들은 음료수가 잘 있는지 수시로 열어본다. 가늘고 긴 손잡이가 무거워 힘겹게 여닫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빠가 혹시 먹지 않을까 걱정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현관을 들어오는 아이들은 어느덧 새벽에 있었던 일을 다 잊은 듯하다. 소풍이 재미있었나 보다. 딸의 노란색 옷이 흙먼지로 누레졌다. 아들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은 마치 왁스를 바른 것처럼 삐죽거리고 있었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엄마에게 달려와 안기는 아들의 볼이 발갛게 햇볕에 그을려 있었다. 요즘 살이 붙어 더 동그래 보이는 볼은 땀으로 끈적거렸다. 옷을 하나씩 벗겨 낼 때마다 마치 비에 젖은 것 같다. 땀으로 축축한 옷이 힘겹게 벗겨지고 있었다. 배와 엉덩이가 앞뒤로 통통했다. 아이들이 무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니 감사했다. 


  새벽에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은 어린이집이었다. 딸아이는 어제 골라 둔 노란색 면 티셔츠를 입고 동생 손을 꼭 쥔 채로 선생님과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나니 비로소 안심됐다. 선생님도 놀라셨다고 한다. 꼭두새벽에 아이들이 어린이집 문 앞에 와 있으니 그럴 만했다.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골목길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생각에 힘들었던 새벽이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잠에서 깨어보니 둘 뿐이라는 것을 안 딸아이는 교회에 간 엄마, 아빠를 대신해 동생을 깨워 양치질을 해주고 냉장고에 넣어둔 음료수까지 가방에 챙겨서 집을 나섰다. 언제 올지 모를 엄마를 기다리다 늦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기다리던 소풍인데. 


  어이없지만 기특했다. 아이들은 잠에서 깼을 때 부모가 없으면 운다. 대체로 그렇다. 딸은 밤새 설레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아직 밖은 깜깜했지만 중요하지 않다. 늦으면 안 된다. 부리나케 일어나 미리 준비했던 옷을 입고, 자는 동생을 깨워 씻기고 소풍 가방까지 잊지 않고 챙겼을 아이의 그 시간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왠지 다 큰 것 같은 생각에 뿌듯했다. 더 자고 싶지만, 투정 부리지 않고 누나의 보살핌에 순응한 아들의 천진함 또한 사랑스럽다. 늘 부모와 함께였던 골목길을 손 꼭 잡고 서로 의지하며 걸어가는 두 아이를 상상해 본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뒷모습이 참 예쁘다. 


  그때처럼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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