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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Sep 17. 2024

일요일은 쉽니다

폰세바돈 - 폰페라다 26.7km

천둥번개가 치더니 거센 비바람이 밤새 알베르게 창문을 심술궂게 두들겨 댔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천둥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잠에서 깼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던 난,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찌뿌둥했다. 올라왔던 만큼 다시 내려가야 하는 날이라 무거운 몸을 애써 일으키고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알베르게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공기가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난 배낭 속에 있던 패딩 조끼를 꺼내 입고 다시 나와야 했다.



문 앞에서 어제 만난 프란체스카를 또 만났다. 그녀는 이 추위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춥지 않냐고 묻자, 괜찮다며 미소 짓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 방법이 없었기에 감기 조심하라는 짧은 인사를 하고 각자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시야가 좋지 않았다. 자료에는 현재위치에서 100m 정도를 더 오르고 난 후 본격적인 내리막이 시작된다고 했다.



짙은 안개였지만 앞에 어렴풋이 주황색 재킷을 입은 사람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독일인 니콜이었다. 그녀는 간밤에 한 침대를 위아래로 나누어 쓴 사이였다. 얼핏 보면 나보다 누나였는데, 실제로는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이었다. 한국인의 동안(童顔)에 놀라워하는 그들이지만, 나 또한 그들의 노안(老顔)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첫딸을 열여섯 살에 낳았다고 해서 또 한 번 놀랐다.



니콜과 나와의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역시 게르만 민족의 후손이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희미하지만 가늘고 높게 솟은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순례길의 여정 중 가장 유명하면서 동시에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일명 ‘철의 십자가’였다. 이 십자가 아래엔 수많은 돌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사연과 소망을 담아 이곳에 작은 돌 하나씩을 놔두고 갔다.



길가에 있던 작은 돌 하나를 주워 들었다. 한국에서 미리 돌을 준비해서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딱히 준비하지 않았다. 심지어 난, 늘 그랬던 것처럼 이곳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어쩌면 그 작은 돌멩이 하나에 나를 담아내기보다는 우뚝 솟아 있는 십자가와 온전히 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이야기가 길 위에 그렇게 툭 던져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거창한 소망 대신 우뚝 솟은 십자가 아래 내 발로 당당히 걸어와 서 있음을 감사하는 의미로 작은 돌 하나를 조용히 올려놨다. 



이게 길인가 싶었다. 일부러 고생시키려고 길인척하는 것 같았다. 비가 왔던 탓에 매우 미끄러운 데다가, 날카로운 바위들이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베어버릴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난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기로 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축축한 물방울들이 얼굴과 옷을 계속 적셔오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어서 내가 걸어가고 있는 걸, 뒤에서 오는 차량이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덧 시야가 탁 트인 곳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구름은 산허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구름이 걷힌 게 아니라, 구름 아래로 내려온 셈이다. 추위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굽이굽이 내려가는 길이 훤히 보였다. 길가에 자란 풀은 비를 충분히 머금어 더욱 싱그러운 녹색을 띠고 있었다. 고도를 보니 해발 800m. 대략 대관령 높이 정도였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해가 나기 시작해 젖은 땅이 말랐을 거라고 예상하고 원래 가야 할 산길로 접어들었다. 실수였다. 나무 그늘로 인해 땅은 젖어있었고,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바위 때문에,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걸 두고 사서 고생이라고 하나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져 갈 때쯤, 다시 도로가 보이고 마을이 보였다. 작은 가게에 들러 빵과 콜라를 집어 들었다.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당이 부족함을 느꼈다. 골목 안에 있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대로 눕고 싶었다.



잠시 쉬고 다시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시끄럽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니 중국인 무리가 식사하다 말고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들은 왜 나를 반가워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닌데. 인공지능 미소를 선사하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길 양옆으로 보이는 집들이 근사해 보여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가 문득 시계를 봤다. 오늘의 목적지인 폰페라다까지는 아직 두 시간가량은 족히 걸어가야 했다.



호텔에서 알베르게를 같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시설이 호텔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방마다 카드키로 잠금장치가 되어있고, 침대 옆엔 개인 사물함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미국인으로 보이는 여자와 대만이나 동남아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방에 누워있었다. 난 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하필 일요일이라 영업 중인 곳이 거의 없었다. 할 수 없이 뭐라도 사기 위해 슈퍼마켓에 갔다. 그마저도 시골 구멍가게같이 생긴 곳이라 살만한 게 없어 음료수 하나만 사 들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방에 누워있던 동남아인처럼 보였던 사람이 나를 보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얼떨결에 나도 인사를 했는데, 내가 알아듣는 언어로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었다. 이런. 난 외국인인 줄 알았다며 미안함에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자주 겪는 일이라며 웃어 보였다. 우린 같이 저녁을 해결해 보기로 하고 영업 중인 식당을 찾았다. 메뉴 고르는데 꽤 까탈스러웠던 그는 나를 데리고 한 태국음식점으로 갔다.



식당은 그 친구보다 더 까탈스러웠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지금 그 음식이 안 되는 별의별 이유를 떠들어댔다. 우린 결국 저녁에 가능한 유일한 식사 메뉴였던 ‘새우볶음밥’을 시켰다. 이곳은 저녁부터는 술집으로 운영하므로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국의 흔한 마트에서 파는 냉동 볶음밥보다는 조금 괜찮은 볶음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누군가 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프란체스카였다. 안녕? 프란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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