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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심이 Aug 26. 2021

이 시국 학교가 살아남는 법

학교 밖은 모르는 치열한 학교 안 현장





2학기가 시작된 지 약 2주가 지났다. 이번 학기 초는 왜 이렇게 유난히 정신이 없고 바빴는지 희한하게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계속해서 할 일이 남아있었다. 나는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교직을 떠날 생각이기 때문에 퇴근 후에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런데 요 며칠간 그 일들에는 손조차 댈 수 없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특히 내가 맡은 학년의 온라인 등교 주간이 시작되면서 어쩜 그렇게 매일 할 일이 쏟아지는지! 퇴근을 한 후에도 일을 놓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코로나와 함께 한지도 어언 2년이 다되어 간다. 이 새로운 바이러스가 이렇게나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하게 될 줄 그 누가 예상했을까. 이 무지막지한 바이러스 때문에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해야 했고, 변했다. 학교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었다. 학교도 변했다. 



난생처음 겪는 2시간의 점심시간

모름지기 점심시간이라고 한다면 4교시가 끝나기 몇 분 전부터 선생님 몰래 주섬주섬 필통을 정리하며 몸을 들썩인 후 종이 치자마자 달려 나가는 맛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눈치 없는 바이러스의 등장 이후 우리가 알던 점심시간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점심시간이 2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한 학년이 2시간의 점심시간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한 시간에 한 학년씩 식사를 한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전교생의 2/3가 등교하고 있다. 백신을 맞은 3학년은 매주 등교를 하고 있으며 1, 2학년은 일주일 씩 번갈아가며 등교한다. 매주 학교에 총 두 개의 학년만이 등교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두 학년마저도 점심시간에 마주칠 수 없다. 1, 2학년은 4교시에, 3학년은 본 점심시간에 식사를 한다.


아이들은 우선 수업이 끝난 후 각자의 교실에 앉아 방송을 기다린다. 그리고 "0반 나오세요"라는 방송을 듣고 급식실 앞에 줄을 선다. 그 후 순서대로 손 소독을 한 후 열화상 카메라를 통과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급식실에 입장할 수 있다.


왁자지껄 즐거운 급식 시간은 이제 없다. 급식실 안의 모든 자리에는 접촉을 제지하기 위한 칸막이가 쳐져있다. 혹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역학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수업 시간에도 지정좌석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급식 시간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자리에 1~3학년의 이름표가 붙어있다. 아이들은 줄을 지어 음식을 받아 자연스레 자기 이름이 적힌 자리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시작한다. 


지난주 이름이 적힌 칸막이를 보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착착 순서대로 들어온 후 조용히 앉아서 식사를 하는 아이들도 대견했지만 나는 역시 이 전교생의 좌석을 배정하고, 이름표를 만들고, 최적의 동선을 위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셨을 아무개 선생님들의 노고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렇게 학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치열한 순간들이 모여 굴러가고 있다.



가족오락관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다음부터 수업시간 때마다 아이들과 가족오락관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입 모양을 보지 않고 대화하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다니! 진짜 멀리 앉은 친구들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 귀에는 들리지가 않는다.


"00이라고?"

"아니요! 0000이요!"

"뭐? 000? 좀 더 크게 말해봐"

"아니요ㅋㅋㅋ0000이요!!!"

"(결국 학생 앞으로 가서) 뭐라고?ㅋㅋ진짜 안 들려!!"


내가 유난히 저팔계인 건가.. 완전히 고요 속에 외침이 따로 없다. 그래도 아이들이랑 한 번 더 웃게 되니 그건 좋다. 그것만 좋다.


그리고 나는 수업 시간에 질문을 많이 던지는 편인데 당최 누가 대답했는지 알 수가 없다. 


"자, 이거 아까 한 건데! 뜻이 뭐였죠?"

"(어딘가에서)... 이요."

"맞아! 뭐야! 누구야? 누가 대답했어?"


그럼 대답 없이 쑥스럽게 웃는 눈이 보인다. 그럼 그 아이가 대답했는지 안다.



통화 포비아 극복

나는 통화보다 문자가 편한 통화 포비아가 있던 사람이다. 통화를 할 일이 생기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됐다. 그런데 이 시국 학교에 다니면서 통화 포비아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끊임없이 전화를 걸고 또 걸고. 온라인 수업이라는 것을 처음 시도해야 했던 2020년 1학기, 교사들도 학생들도 처음 맞이하는 초유의 상황에 교무실은 콜센터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통화 포비아를 가뿐히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웃픈 이야기.


나는 지금 고등학교에 재직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하게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욕심 있는 친구들은 출결과 과제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다.


대면 수업일 때는 공부를 하든지 안 하든지, 수업에 집중을 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일단 그 자리에 와서 앉아는 있는다. 스스로 출결을 했다고 나서서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리에 와서 앉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스로 출결을 증명하지 않으면 결과 처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전화를 건다. 수업 수강과 과제 제출 마감 기한까지 1시간 남으면 미완료 학생 목록을 뽑아 통화를 시작한다. 사실 각 반 마다 통화하는 학생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 출결 처리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친구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래도 우리 학교 학생들은 참 착하다. 다들 전화를 받긴 받는다. 처음엔 하도 닦달을 해서 '아, 또 난 줄 알면 전화 안 받겠다'싶었는데 웬열, 매일 받긴 한다. 그러면 나의 설득이 시작되고 수업을 듣고 출결 체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에 비로소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해 확인해보면 대부분 출결을 완료해놓는다. 


예쁜 녀석들, 이래서 내가 전화하는 걸 포기할 수가 없다.



역시 애들이 있어야 하나 봐

나는 아이패드로 화면 녹화를 하며 목소리를 입히는 식으로 온라인 수업을 준비한다. 그런데 텅 빈 교실에 앉아서 혼자 주절주절 수업을 녹화하는 일이 너무 어색하고 어렵다.


희한하게 앞에 사람이 있으면 말을 하기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수업은 그렇지 않다. 앞에 학생들이 있어야 비로소 수업이 수업다워진다. 나에게 있어 수업은 단순히 정보 전달을 하는 시간이 아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함께 웃으며 신뢰와 래포를 형성해나가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편안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텅 빈 교실을 앞에 두고 수업을 하려니 입이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버벅거리는 통에 편집 시간이 늘어만 간다. 


서로 지지고 볶아야 한대도 아이들이 보고 싶다. 얘들아, 역시 학교에는 너네가 있어야 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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