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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심이 Oct 05. 2021

이뤄내도, 이뤄내지 않아도 다 괜찮아

그저 내 몫의 노력을 다하며 즐겨보기





그래, 좋다. 너도 나와 함께 가자

나에게는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건 바로 작은 것도 크게 부풀려 염려하는 마음이다. 다른 사람들은 1을 생각할 때 나는 벌써 10까지 생각하고 있다. 한 친구는 나한테 바둑을 두면 잘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거냐고 하면서.


내가 하는 걱정이 감사하게도(?) 모두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은 벌써 다년간 쌓인 데이터로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진짜일 수도 있잖아'라는 생각이 나를 또 염려하게 만든다.


나는 큰 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강철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이지 너무 부러웠다. '그런 걸 대체 왜 걱정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런 염려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럼 어떡하지? 저럼 어떡하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스스로가 지치기도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도려낼 수 있다면 도려내어 버려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타고난 내 성향을 칼로 무 자르듯 잘라버릴 순 없는 노릇이니까, 불가능한 이야기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가벼운 걱정도 마음을 크게 지치게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루 종일 작은 컵 하나를 이렇게 들고 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잠깐은 괜찮지만 몇 시간이 지나면 그 컵을 들고 있는 팔이 아파올 거예요. 하루 종일이라고 한다면 말할 것도 없겠죠. 걱정도 이와 같아요. 아무리 작은 걱정거리라도 마음속에 계속해서 자리 잡고 있다면 마음이 크게 다칠 수 있는 거죠."


내 마음이 이렇게 수년간 걱정으로 고통받았기 때문일까. 지난해 말, 나는 이 염려증 때문에 불안증세를 크게 앓았다. 언제나 크고 작은 걱정을 지니고 있던 나였지만 해야 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불안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해, 불안증세는 차원이 달랐다. 걱정이, 또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해야 할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밤에 잠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도저히 못살겠다 싶어 상담소를 찾아갔다. n번째 상담을 할 때쯤 상담비가 아깝게 느껴졌고, 그 순간 아! 나 이제 정신이 좀 돌아왔나 보다 싶었다.


그렇게 헤매며 깨달은 것이 있다. 그냥 평생 이와 함께 가야겠다는 것. 


그래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 좋다. 같이 가자.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아, 우리 그냥 같이 가자."라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무작정 미워하고 외면하려고 했던 나의 약한 점을 정면 돌파하고 인정하고 나니 속도 후련했고, 더 이상 외면하고 싶을 만큼 미워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이 때문에 스스로를 아프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 뒤로도 역시 나는 작은 것에도 염려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다.


너는 나랑 같이 가는 거라고. '그래, 그렇게 되면 어쩔 건데!' 하는 담대한 마음으로 우리 같이 가보자고.


그렇게 마음이 불안할 때 내 마음과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상상을 했고, 그러고 나면 불안한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나는 내 마음과 손을 잡아야 했고, 그럴 때마다 불안함을 느끼는 정도가 약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또 스스로를 애틋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결국 그 모습도 나라는 걸 인정하고 나면 그 모습이 조금은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 같다. 


그래, 너도 나구나. 그렇담 어쩔 수 없다. 우리 함께 갈 수밖에. 





이뤄내도, 이뤄내지 않아도 다 괜찮아

오랫동안 우리 교회 청년부를 이끌어 주셨던 목사님이 계셨다. 작년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시기 위해 우리 교회를 떠나셨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를 봐오셨으니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겪은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내게 좋은 일이 있든지, 힘든 일이 있든지 언제나 묵묵히 들어주시며 기도를 아끼지 않으신 참 감사한 분이다.


 다시 기간제 교사를 하며 새로운 길을 준비하게 되었을 때, 오랜만에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다시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목표한 새 길을 이루고자 한다고 말씀드렸다. 오랜만에 드리는 연락이 합격했다는 말과 같은 기분 좋은 소식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싶어 씁쓸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구구절절 보낸 내 이야기에 대한 목사님의 답장을 난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받아 보지 못했던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너의 도전으로 수년 뒤에 무언가가 이뤄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아.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도전하는 너를 목사님도 사모님도 응원하고 기도하며 함께 할게."


치열한 시간들을 보냈음에도 끝내 열매 맺지 못함에 작아지고 또 작아지던 나에게, 오랜 꿈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노라고 결단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말. 나의 도전으로 수년 뒤에 무언가가 이뤄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난 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될까 미리 너무 앞서 계산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계산하려고 해도 계산되지 않을게 뻔하고, 내가 계산한 대로 되지 않을게 뻔하니까.


그리고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언젠가 무엇인가를 이뤄낼 필요도 분명히 있음을 안다. 계속 도전만 하며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을 순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이뤄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아닌, 내 몫의 노력을 다하다 보면 머지않아 필요한 곳에서 나만의 작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과 기대로 살아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어떤 인생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자신만의 기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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