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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rbaChoi May 03. 2024

을의 Digital Finance 블로그(22)

지속가능한 디지털전환을 위한 기술경영/팀 경영 (2-1)

전통 금융기관의 디지털 전환은 급변하는 경영환경변화에 생존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이다.  디지털 경제에서 새로운 생산수단인 소프트웨어를 탁월하게 만드는 방식을 마스터한,  디지털 네이티브 스타트업(토스)과 빅테크(네이버, 카카오)가 주요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전통 금융기관들도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통 금융기관들은 전략 컨설팅 회사의 조언을 받아,  주기적으로 프로세스를 고객중심으로 재설계하고,  시스템을 재구축하면서,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애자일 경영 방식 도입을 추진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통 금융기관들은  컨설팅이 종료된 일정 기간 후에는 다시 혁신의 파이프 라인이 말라버리고,  아직도 조직문화는 수직적이며,  경직된 프로세스와 유연하지 못한  모노리스(Monolith) 시스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상의 전략과 최선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과 운영 역량이 디지털 전환의 병목을 느끼고 있다. 


전통 금융기관에서  IT자회사 CEO, CIO 역할을 수행하면서,  항상 지속가능한 디지털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는 항상 고민거리였다.  비즈니스 리더들과 기술 전문가 사이의  심각한 단절을 자주 경험하면서,  혁신을 방해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자문해 왔다.  시간이 갈수록 겉으로 보이는  프로세스, 시스템, 조직구조 차원의 문제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영철학, 경영원칙, 기업문화 차원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느껴졌다.  그렇다고 단순히 기업문화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제대로 된 디지털 전환이라는 과제가 중차대하다고 생각하였다. 


디지털 시대에 창조적이고 열정적인 크리에이터들의 성공사례는 넘쳐나고 있고,  국내의 개발자들 또한 역량이 뛰어난데 왜 전통 조직은 이런 개인의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조직은 개인의 역량을 확장하는 수단인데, 전통금융기관들은   수직적 계층구조에, 숨 막히는 규제, 느린 의사결정으로 오히려 개인의 역량발휘를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내적 동기요인이라는 자율성, 목적성, 전문성은 강제적인 방법으로 이끌어 낼 수가 없다.  반면 경쟁우위의 원천인 새로운 고객경험, 운영혁신,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탁월한 소프트웨어 개발, 운영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개인과 팀워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커리어를 돌아보면 항상 이런 간격을 느끼면서,  개인의 열정을 끌어내, 조직차원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디지털 전환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방안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하루하루였다고 생각된다.   


차제에 블로그로 정리하면서,  현장에서 직면했던 현상과 약간 거리를 두고 문제의 본질을 더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애자일 방법론과 기법보다는 경영모델과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바이블 같은 책들과 기사들의 행간을 뒤지면서, 무엇이 근본 문제였을 까 생각해 봤다.   


첫째,  전통금융기관들은 산업화 시대 경영모델을 고수하고 있어,  비즈니스와 소프트웨어 현장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었던 거 같다.    명시적이지는 않았지만  산업화 시대의 테일러리즘과 유사한  구 시대 경영모델을,  복잡하고 역동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 적용하려고 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중장기 디지털 전환계획,  전형적인 대형 프로젝트 추진, 전통적인 비용과 일정 중심의 관리,  광범위한 아웃소싱 추진과 이에 수반되는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업그레이드 작업 등  구 시대에 적합한 방식을  디지털 시대에도  계속 적용하고 있는 사례가 많았던 거 같다.  


산업화 시대의 경영모델은 사람을 자원으로 본다.  물적자원, 재무자원과 같은 선상에서 사람도 인적자원으로 보고, 이들 자원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 운영 효율성(Operational  Efficiency) 극대화를 최우선 문제로 보며,  경영원칙도 전문화, 표준화, 공식화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결과적으로 계층적인 조직구조,  숨 막히는 절차과  사내정치가 발달하게 된다.  계층화된 조직은 자연스럽게 엘리트주의를 부추기고,  직원과 CEO사이의 권력거리를 더 멀게 만들며,  지시와 통제의 문화를 조장하게 된다.  이렇게 산업화 시대의 경영모델에 기반을 둔 계층적이고 근시안적인 조직은,  점점  모든 프로세스와 절차를 상세하게 정의하고 이를 공식화한다. 하지만 프로세스와 내부 절차를  아무리 잘 정의해 두어도,  디지털 시대가 요구하는 최상의 고객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구 시대 경영모델은 비즈니스 리더와  기술 전문가가  일하고 소통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를 만든다.   일정과 비용에만 포커스 하는 비즈니스 리더 입장에서는,  기술부채, 스토리 맵,  애자일, 데봅스와 같은 기술전문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적인 소프트웨어 전달 개념에 관심이 없다.  대규모 프로젝트 관리에 적합한 구식 경영모델은,  빌딩을 건축을 하거나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본래 가변적이며,  수많은 인력과 복잡한 프로세스, 다양한 툴에 걸쳐 진행되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다.  순차적인 제조공정과 달리, 소프트웨어 릴리스라고 불리는 생산 프로세스에는 개발과정과 디자인, 설계 과정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역동적인 소프트웨어 개발과 운영 과정이  요구하는,  속도, 빈도, 복잡성, 변동성을 고려하면,  개개인의 단순한 그룹형태보다 응집력이 강한 진정한 팀 형태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전통 금융기관들은 수직적 계층조직구조하에서  과거 방식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을 관리하면서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  비즈니스 리더들도  AI와 빅데이터, 프로그래밍 등 하드 스킬을 학습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을 단순한 구현 기술로만 이해하는 정도에 그친다.  기술이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구식 경영모델 패러다임에 익숙한 비즈니스 리더들은  점점 더 기술자가 하는 업무를 이해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잃고 있다. 


둘째, 지금까지 전통금융기관이 추진한 대부분의 디지털 전환 노력은,  하류공정인 프로세스와 절차, 경영기법 차원에 집중해 온 것 같다.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과 효과는 미미했고,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전환 전략을 수립했어도, 과거 경영모델과 관련 프레임워크이라는 기본 전제가 이미 존재하여,  실행에 있어서는 절차와 기법, 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략 컨설턴트들은 전면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와  애자일 중심의 조직, 프로세스, 시스템의 변화를 재설계하지만,  근본적인 수직적 계층적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  변화관리에 있어서도,  상위 몇 퍼센트의 핵심인재인 Top Talent에 집중하고,  최고경영진으로부터의 변화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한다.  변화관리 과정에서 오히려  암묵적으로 수직적 계층적 조직문화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실  전략 컨설팅 회사의 직접적인 고객은 기업 CEO이므로,  경영철학적인 관점에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운영을 위한 애자일 방법론과 데봅스 툴의 개선도 의미가 있었지만,  의미 있는 생산성 향상에는 미치지 못했던 거 같다 (생산성 향상은 5~ 10% 미만).  


새로운 해결방법의 모색은 우선 새로운 경영모델, 경영패러다임의 변화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을 인적 자원으로만 보지 말고, 경영의 최우선 문제를 운영 효율화(Operational Efficiency) 보다 고객가치와 비즈니스 가치기여를 최대화(Contribution Maximization)하는 것에  중점을 두며,  모든 조직, 시스템, 프로세스에 보다 사람 중심적인 원칙을 넣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어떻게 보면 너무 이상적인 접근법으로 인식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소규모 팀 구성에서부터 전사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경영철학과 원칙을 재고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디지털 전환을 담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 사람중심의 새로운 경영모델은  제조업에서는 린 생산방식,  소프트웨어 산업 현장에서는 애자일, 데봅스 방식으로  이미 효과를 증명해 왔다.  시장의  IT 전문가들은 이미 애자일, 데봅스 방식과 툴에 깊이 빠져있지만,  비즈니스 조직의 시각은 여전히 테일러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한 가장 큰 장애물 중의 하나가 이 간극이 아닐까 한다. 


새로운 출발점을 고민해 보았다. 사람중심의 경영 원칙을 기본으로 비즈니스와 IT의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  바람직한 소프트웨어의 미래(아키텍처)에 맞추어 팀 경영을 시작하는 것,  애자일을 기법만이 아닌 경영모델, 경영원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속가능한 디지털 전환을 담보해 나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비즈니스와 기술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IT의 비즈니스 가시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재인식하자.  IT와 비즈니스 간의 단절의 주원인은,  IT가 블랙박스이고 비즈니스 가시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빅데이터와 쉽게 접근가능한 분석 툴이 있는데 가시성이 왜 문제일까?  문제는 데이터 접근의 문제가 아니라,  IT와 비즈니스가 사용하는 용어와 측정지표가 다르다는 데  있다.  시장의 MZ세대 IT개발자들은 이미 제품 지향적인 애자일, 데봅스 세계관으로 일하고 있는데,  정작 비즈니스 리더들은 전통적인 프로젝트 관점에서 사고하고 관리한다.  비즈니스 리더는 영어를 사용하고, 기술 전문가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형국이다.  


비즈니스와 IT의 간극을 줄이려면, 비즈니스의 가치흐름과  소프트웨어 개발운영 흐름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비즈니스와 IT가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비즈니스가 비용과 효율성만이 아닌 혁신속도와 역량에 관심을 가지고,  기술전문가가 기술 부채,  주간배포 횟수 등의 개념과 수치를 비즈니스 가치, 성과지표로 전환하여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공동의  이해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애자일 방법과 툴을 이용하여 단순히 지속적인 통합과 전달을 자동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약  IT가 비즈니스와 분리되어 있다면 애자일 팀과 디봅스 배포 속도가 병목지점이 될 기회조차 없다.  종종 주간 배포 횟수와 같은 대리지표에 의존하면서, 실제 중요한  비즈니스 성과지표를 놓칠 수 있다.   


비즈니스와 IT의 간격을 줄이지 못해 디지털 전환에 실패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노키아의 애자일 실패사례는 지속적인 통합과 릴리즈 자동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중요한 소프트웨어 구조의 문제(기술요건만을 반영한 단일 데이터베이스 기반의 시스템 구조)나 조직차원의 병목지점을 간과한 결과라고도 한다.  다른 실패사례로  비용만을 중시하여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는 결과,  결과적으로 생산성이 감소한 글로벌 대형은행의 케이스가 있다.  디지털 프로젝트 목표는 늘 그렇듯 일정과 예산 준수였고,  비용절감이라는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전통금융기관은 경영지표로 CI (Cost Income) 레이쇼, 즉 이익대비 비용률을 중시한다. 자연스럽게,  디지털 전환의 결과가 비용을 얼마나 절감했는지,  코스트 센터로 간주되는  IT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게 된다.  비용 절감이 주요 관리 포인트가 되면,  기술부서가 현업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쉽게  절감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IT비용이다.  결과적으로 비용은 줄겠지만, 소프트웨어 전달 속도, 혁신의 속도는 더 느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콘웨이 법칙(소프트웨어 구조는 조직구조를 따른다)을 역으로 활용하여, 진정한 팀 경영을 위한 조직으로 전환해 가자.    콘웨이 법칙에 따르면,  조직의 구조가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구조보다 우선한다.  전통금융기관의 수직적 계층적 조직구조는  모노리스 레거시 시스템 구조를 만들게 한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위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소프트웨어 구조는,  분산형 클라우드 네이티브 마이크로서비스 구조라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소프트웨어가 경쟁력의 원천인 빅테크 기술기업들이 자율적인 소규모 팀으로 운영하는 이유이다.  전통 금융기관들도 이에 걸맞은 팀 경영을 위한 조직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 


금융산업에서  대규모 차세대 시스템 구축을 반복해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도, 수직적 위계조직에 있었다고 본다.  시스템 구조는 조직구조를 반영한다는 콘웨이 법칙에 따르면, 현재의 모노리스 레거시 시스템은 현재 수직적 계층 조직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지만,  오너십 정립 없이  대규모 SI, 아웃소싱에 맡기는 위계조직 문화에서,  디지털 시대에 맞는 분산화된 마이크로 서비스 구조로 시스템을 전환하기는 불가능하다.  


셋째,  애자일과 데봅스를 실제로 작동시키기 위해서,  소프트웨어 현장의 경영모델과 경영원칙부터 적극 수용하자.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생산수단인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만들기 위한,  애자일과 데봅스는 개발자들의 마인드를 이미 바꾸었고,  결국은 소프트웨어가 중심인 비즈니스 전체에 적용해 가야 한다.  단순한 애자일 기법과 툴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 결과를 담보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이 되는 경영모델, 오너십과 자율과 책임, 지속적 학습의 원칙들을  실제로 수용하는 것은 가장 큰 변화관리를 요구하지만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규모 시스템 운영에서 실제 개발자가 개발에 사용하는 시간은 34%에 불과하다고 한다. 코드를 작성하는 일에 대가를 지급하고, 실제 개발자가 원하는 일은 코딩이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더 많은 개발자, 더 많은 툴, 증가하는 소프트웨어의 규모와 복잡성은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애자일과 데봅스 툴을 도입하면서,  서로 다른 이슈 추적 툴에 따로따로 데이터를 중복 입력하며,  진행을 위해서는 관리자의 승인을 대기하는 비생산적인 시간이 많다고 한다.  자동화된 DevOps 툴이 있지만,  실제 수직적이고 관료적인 관리체계는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과도한 보안과 정보보호 관련 절차들도 빌드, 테스트, 배포 과정의 속도를 지연시키고 있다.   단순한 기법과 절차가 아닌,  실제적인 경영원칙의 전환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고 

1. Humonocracy ,  Gary Hamel 지음

2. The Art of Beuraucracy, Mark Schwartz 지음

3. 디지털 초격차 코드 나인,  이상호 지음

4. 프로젝트에서 제품으로,  믹 커스텐 지음 최희경 외 옮김

5. 팀 토폴로지,  매튜 스켈톤 , 마누엘 페이스 지음  김연수 옮김 

6. 애자일 컨버세이션,  더글라스 스퀴렐. 제프리 프레데릭 지음,  김모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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