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우주가 되어
"홍시, 자몽! 너희가 좋아하는 건 뭐야?"
"엄마!, 그리고 산책, 간식, 엄마 가게에 놀러오는 꼬마 친구들, 멍프리 애견카페, 동네 강아지 친구들, 파란 하늘, 잔디...! 엄청 많아!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뭐야?"
"엄마가 좋아하는 건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의 시간, 노을, 초여름, 수선화, 밤바다, 산책, 홍시자몽을 포함한 동물들, 주황색 가로등, 기차, 벚꽃길... 이런 것들이 있지"
강아지를 키우며 1박 이상의 여행을 가기도 어려워졌고, 하루에 한번씩은 꼭 산책을 시켜줘야 하며 외롭지 않도록 대부분의 시간을 붙어있다보니
세상으로의 여행, 더 나아가서 모험을 즐겼던 나는
자연스레 집순이로 변해갔다.
그래서인지 ENFP 였던 성격유형 검사 결과도
INFJ로 바뀌었으며 전보다 훨씬 내성적으로 변한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엔 자아를 잃어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잃어버린 나를, 내 행복을, 내 천진함을 찾기 위해
홍시자몽이의 응원을 받아 '나와 이름' 프로젝트를
다시한번 시작했다.
'나와 이름' 프로젝트는 2018년 대입에 실패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이름을 찾아주고자,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자 하는 꿈을 찾아주고자
홀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의 내용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도전과 모험이었고 무수한 공모전에 응모하거나 서울로 전시회 투어를 떠났으며 집필을 시작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이름을 찾지 못했었다.
결국 남이 주는 이름을 그대로 받아
'굶어 죽어도 공무원은 안 할거야' 할만큼
혐오했던 공무원 시험을 꾸역꾸역 보고,
또 기가 막히게 합격을 해서 3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 3년 동안, 나는 나를 죽도록 혐오했던 것 같다.
왜 그렇게까지 공무원이 되기 싫어했을까? 생각해보면 태어날 때부터 내 사주가 공무원 사주라고,
귀에서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영화과에 가는 것을 죽도록 반대하셨던 할머니의 모진 말들의 끝은 다 공무원 사주라는 이유때문이었으니까.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싫었던 게 아니라,
그 사주에 얽매여 꿈도 제대로 꾸지 못하는.
그런 비이성적인 샤머니즘을 혐오했던 것 같다.
공무원 합격과 동시에 '나와 이름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영화과 학생으로서 살아갈 '김하라'라는 이름으로의 개명은 엎어졌고,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구질구질한 김민주로 살고 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이라는 영화를 추천받은 지는 한참 전이었으나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지 않아 이태껏 보지 않고 두었었다. 이 영화를 알려준 사람이 내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서야 이 영화가 떠올라 바로 찾아봤다.
영화가 내 인생에 들어온 2시간이 끝난 뒤,
나는 다시 남몰래 '나와 이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주인공, T.D. 레몬 나인틴헌드레드]에게
무참히 매료되어버렸기 때문에.
배에서 자라나, 배에서 죽음을 맞이한.
행운 혹은 비운의 피아니스트.
세상에 태어난 기록조차 없이
피아노 연주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그의
삶과 청춘과 사랑이 담긴 배. 그리고 이름.
유한한 건반으로 무한한 자신만의 음악을 창조해냈던 그는 무한한 세상에서 유한하게 국한될 자신의 모습 대신 자신의 온 세상이었던 버지니아호에서 숨을 거두는 것을 택한다.
죽음으로 지켰던 그 자신의 이름은
결코 무모하거나 경솔하게 기록되지 않았다.
아주 두텁고, 단일하고, 아름다웠다.
나도 그런 이름을 적어내리고 싶다.
나만의 배 안에서 전설이 된다는 것은.
그리고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누군가의 마음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보석같은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과연 어떤 역사로 풀어야
제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기차를 타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밤바다에 도착했다,
걷고 싶었지만, 걷지 않고 돌아왔다.
혹시나 하는 바램으로
핸들을 돌려 돌연 도착한 이 곳에서
모든 것들이 다 틀어져버린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러한 이유들로, 그렇기에, 그러고 싶어서.
물밀 듯 밀려오는 후회를 바다 저 편으로
모조리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어찌 알고 왔는지,
사랑하는 만큼 증오하는 것들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와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았으나,
한 마디도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기 파괴적인 혐오를 끝내는 방법은
그것을 사랑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걸.
혐오로부터 배워, 이렇게 돌고 돌아 다시 돌려준다.
너무나도 미운,
증오스런 그 것들을, 그 사람을, 그 시간들을.
한번씩 벅차오르게 안아주고 돌아왔다.
다행히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무사히, 혐오로부터 살아남았다.
홍시가 사랑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자몽이가 사랑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두 아이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엄마로서의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우리의 만남은 찰나같았지만 아마도 이별은 길겠지.
아마 나는 평생 아이들을 마음 속에서
놓아주지 못할 것 같다.
자신을 버렸던 주인을 용서했을까?
자신을 학대했던 주인을 용서했을까?
아이들의 마음에 혐오와 미움이 남아있을까?
"홍시, 자몽. 너희는 미운 사람이 있어?"
"글쎄! 우리는 매일 사랑하기만해도 시간이 부족한 걸!"
잠깐 마트만 다녀와도
이렇게나 이산가족 상봉하듯 반겨주는 홍시와 자몽.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나 사랑이 넘치는
너희 둘을 만나 살아남을 수 있던 걸까.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아마도 나 자신이라
그 사실이 너희에게 얼마나 큰 불안감을 줄 지 잘 알고 있어.
그래도 엄마를 사랑해줘서, 아무 대가없이 안아줘서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해.
무수한 사랑과 혐오 가운데
수많은 사람이 왔다가 떠나기를 반복했고
그런 관계에 지쳐 빗장을 걸어잠근 내 울타리 안에는
홍시 자몽만이 남아 있다.
목돈이 입금된 날이면 꼭 시저를 산다.
개인회생에,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법원에 고발까지 당해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경황은 없지만
그래도 내새끼들 한끼라도 맛있는 거 먹이고픈
엄마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나봐.
올해 다섯 살이 된 홍시와 자몽이의 나이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다 보면,
'어머 너희도 나이 좀 먹었네' 하는 반응이 종종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심장이 무너져내릴 것 같다.
내가 혐오하지 않고, 그저 투명하게 사랑하는
세상 유일한 존재들인데.
그런 존재들이 사라지면 나는.
나는 어떻게 살아가지?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진 이후로,
살고 싶다는 의지도 함께 증발했다.
지금은 죽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은.
그저 숨만 붙어있는 중.
하나님이 나를 어여삐 여기사
우리 홍시 자몽이 데려가시는 날
나도 함께 데려가셨으면 좋겠다.
이제는 누군가와의 사랑을 꿈꾸지도,
예쁜 아이를 낳아 키우는 행복한 상상에 빠지지도,
세상에 무수한 사랑을 나누고픈 열정이 샘솟지도 않는다.
그냥. 살아만 있자.
살아만 있자. 숨만 붙어있자.
하라리움 가게 앞에 만들어둔 고양이 집에서
몇개월간 지내며 밥을 챙겨줬던 아이.
고구마가 새 가족을 만났다.
하라리움에 매일같이 오는 꼬마 단골손님이
고구마와 깊은 정이 들어버려서
가족의 동의를 구하고 구마를 데려갔다고.
그 소식을 듣는데,
분명히 기뻐야 하는데.
겨울이라 걱정됐는데 다행이라고.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가 않았다.
내 마음에 세워뒀던 작은 집 하나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헤어짐은 언제나 불시에 찾아오고,
정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으니
늘 이별을 혐오하면서도 사랑해야만
내가 아끼는 것들을 지킬 수 있나 보다.
중학교 때 우연히 티비 채널을 넘기다
이 영화를 만났다.
'연공 : 안녕, 사랑하는 모든 것'
일본 로맨스 영화고, 청량했으며 새드엔딩이라 마음에 오래 남았다.
2008년 작품이라 특유의 일본풍 필름카메라 느낌이 난다. 돌연 그리워서 찾아보다가, 다섯 번쯤 돌려보았을 때 일본어 회화 공부까지 시작해버렸다.
자막 없이, 이 들의 대화를 듣고
감정을 이해하고 싶었다.
남자주인공 히로는 끝내 죽음을 맞이하고
여자 주인공 미카는 그런 그와 헤어지지 않고
그를 영원히 추억하며 그린다.
사랑이란 뭘까.
내가 사랑이란 존재를 너무 사랑하다보니
그것에 대한 증오 또한 무참히 커져버린 모양이다.
친한 언니가 새해를 맞이해 혼자 집에 있을 나에게
연어를 보내줬다. 홍시 자몽이와 함께 나눠먹었다.
돈이 있고 상황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사람도 있고 사랑도 있다는 말이
왜 요즘 유독 마음에 꽂히는 지 모르겠다.
이 사람도 결국 떠나면 어떡하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 나는 숨쉬는 것조차 힘들다.
왜 세상 사람들이 편하게 가져가는 것들을
나는 죽기살기로 노력해야만 가질 수 있는 걸까?
중학교 때 처음 뺨을 맞아봤다.
구질구질한 스티로폼 단열재 조립식 판잣집,
매일같이 나오는 녹물, 그로 인해 뒤집어지는 피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거지같았던 날들.
치매에 대장암을 앓으셨던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
우울증에 신경질적인 할머니
열 세살 때부터 목을 매달기 시작한 손녀
우리 세 가족이 그렇게 서로를 혐오하며
서로의 살을 뜯어먹으며 살았던 것도
다 서로를 사랑해서였을까.
왔다 가는 인연들이 무섭다.
하지만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는 현실에
홀로 고독감에 파묻혀 사는 것이 더 두렵다.
아몬드가루와 분당 40여kg 을 눈앞에 두고
나는 호기롭게 애증에 대한 상념으로
두시간을 흘려보냈다.
홍시 자몽이는 가게 한켠에 놓인
커다란 방석에서 함께 자고 있다.
사랑에 마지않는, 다만
미워할 수 없는 유일한 내 전부인 녀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