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정신병력을 모두 가질뻔한 자의 이야기
최근에는 또 다른 소중한 취미를 갖게 됐다.
바로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는 것.
성과물이 나올 뿐만 아니라 결과가 좋건 좋지 않건,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 줬다. 그리고 감정을 색채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 잊고 있었던 동심을 다시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치유의 과정을 갖게 해 줬다. 작은 일에도 쉽게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받는 나에게 이런 잔잔하고 향긋한 힐링의 시간은 감정을 긍정적인 쪽으로 중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사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직장인들, 일반인들에게 본인만의 치유 방법을 가지는 것은 필수적인 것 같다.
사실 요즘 내가 겪고 있는 무수한 문제들과 트라우마들, 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헛구역질이 나기도 하지만 이러한 정서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성공이 판가름이 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사실 정말 시작은 어려웠다. 나는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 수준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보면서 신기해하고, 옆에서 글씨를 끄적이는 것에서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친구가 파스넷으로 끄적였던 걸 낙서라고 생각하지 않고 스캔을 해서 책자를 만들어준 것에서 시작됐다.
낙서에서 시작된 것은 나의 모토를 담은 ‘La Vita e bella,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그림에서부터 그림을 알려준 친구의 초상화, 직장에서 만난 평생 친구를 위한 선물, 강아지를 좋아하는 친구를 위한 선물, 자작곡 커버를 그려달라고 한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정도까지 발전하게 됐다. 명확한 대상을 정하고 그리는 것에 힘듦을 느낄 때쯤 전문가의 조언으로 나의 인생을 반영해 주는 추상화도 그리게 됐다.
벽 틈 사이에 핀 꽃.
꽃이 필 수 없는 환경에서도 틈을 비집고 피어나는 작고 하얀 꽃처럼, 나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이제는 오일파스텔뿐 아니라 젤 스톤, 아크릴 물감들도 쓰기 시작했다.
최근에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풍경을 그리는 바탕색은 생각보다 진한 단색이라는 것이었다. 과감하게 캔버스를 진한 색으로 색칠하는 선생님을 보면서 속이 시원하기도 했고, 어떻게 디테일을 채울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시작부터 색감의 디테일과 그라데이션을 시뮬레이션해서 그리려다 보면 시작이 더욱 힘들다. 아직 색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고 많은 면을 차지하는 색감을 찾아내는 것이 먼저다. 연한 색으로만 시작하는 것이 아니더라. 걱정보다는 강한 터치와 색감으로 일단 발을 딛는 것이 중요하다. 시작이 어렵지. 그다음은 나만의 느낌으로 회화적인 표현을 찾아 나가면 된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서도 색이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 때는 전문가의 도움도 받으면서 정리를 해나갔다. 망했다고 생각한 것도 나의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생각들, 어쭙잖게 쌓인 얕은 지식들로 판단한 것이다. 밝은 색으로 때로는 어두운 색으로 경계를 뚜렷하게 해주고 나면 망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도 점점 명확해진다.
일단 시작해 보자.
첫 단추를 ‘잘’ 꿰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작하지 못한다면
예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더 늦춰지지 않겠는가?
아차. 단추를 잘못 꿰었다면 다시 풀고 제 자리를 찾아 나가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