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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주 엄마 Feb 12. 2022

9개월 아기를 키우는 흔한 엄마의 일상

이유식 좀 제발 먹어줄래...?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써 본다.


나의 브런치북이 공모전에서 탈락해서 김이 빠져 버린 것, 아기가 낮잠 시간이 줄어들고 이유식을 여러 끼 먹게 되면서 아주 바빠져 버린 것 등 그동안 육아일기 쓰기를 게을리 한 것에는 많은 핑계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내가 잘하고 있을까..?"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복주는 10개월이 다 되어가는 여태까지도 밤수를 끊지 못했다.


잠을 자고 일어나는 패턴도 루틴이 잡히지 못하고 뒤죽박죽 엉망이다.


나는 아기와 눈을 마주치며 웃고 교감하며 몸으로 놀아주는 육아 대신 장난감에 의존하는 쉬운 육아를 택했다.


이유식을 만들고 먹이는 데 매일 큰 시간을 쏟고 있지만, 정성껏 만든 이유식은 복주에게 외면당하고는 해서 나의 인내심도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


본받을 만한 점도, 모범이 될 만한 점도, 육아일기의 구독자님들께 알려드릴 만한 그 어떤 제대로 된 좋은 육아 정보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벼랑끝에서 버텨 나가는 듯한 이런 일상을 써서 무얼 할까, 라는 현타가 글을 쓰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정말 영원히 육아일기를 못쓰고 복주가 다 커버릴 것 같아서 오랜만에 큰맘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보기로 한다.


나의 육아가 표준적이고 모범적인 육아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지 못하게 되고, 그저 복주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크는 것만을 소박하게 목표로 삼게 된 것처럼...


나의 육아일기도 표준적이고 모범적인 육아일기가 아닌 그저 순간순간의 하루들을 기록하고 기억해 나가는 것을 소박하게 목표로 삼아 보고자 한다.




이유식... 그놈의 이유식...


이유식을 먹이기 전이 정말 그립다.


젖만 입에 갖다대면 끝이었던 그때가 그립다.


재료를 주문하고, 재료를 다듬고,  채소를 데치고 육수를 만들고 이유식 큐브를 만들어 냉동실에 얼리고, 찐 고기와 채소를 밥과 섞어 갈고..


그 모든 노고들..


그 귀찮은 노고를 거쳐서 복주에게 이유식을 갖다 대면


안 . 먹 .는 .다...



이놈시키...


왜일까, 실내화며 핸드폰이며 전원코드며 먹지 말아야 할 모든 것들 포함 눈에 보이는 것은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입에 쑤셔 넣으면서..


이유식만은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면서, 숟가락을 배구선수마냥 팍 블로킹 해서 손으로 쳐내면서..


죽어라 안 먹는다.


그러면 나는 이유식을 먹이기 위해 스피닝 휠, 스윙 구스 같은 현란한 장난감들을 틀어 복주의 눈을 현혹시키면서 그 틈에 밥을 입에 쑤셔 넣거나.. 복주가 좋아하는 바나나나 사과 같은 달콤한 과일들을 으깨서 이유식에 얹어 주고는 했다.


그렇게 하면 몇 숟갈 먹는다.


하지만 그런 효과도 절반~2/3 정도 먹으면 끝이 나고 다시 복주가 이유식을 안 먹기 시작하면 나는 남은 이유식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한 두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먹여 보고는 했다.


그렇게 이유식을 먹일 때마다 아기의 입이며, 턱받이며, 의자며, 의자 주변이며 온통 음식 찌꺼기로 더러워진 것들을 닦아 내고 치우고..


이유식 먹은 복주가 똥을 뿌지직 싸면 똥을 치우고..


이유식을 하루에 두세 번 먹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복주는 8개월 정도부터 통잠이란 걸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마도 이빨이 나면서 치아통때문인 것 같은데, 5~6개월 쯤 낮잠도 많이 자고 밤에 통잠도 어느 정도 자주던 그 때와 비교해보면 낮잠도 거의 안 자고 밤에 두세 번은 깨는 8~9개월은 육아 암흑기와도 같았다.


어떤 때에는 새벽 한두 시 쯤 일어나 다시 잠들지 않고 몇 시간을 놀아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복주는 일어나서 침대를 잡고 우뚝 서 있었는데, 새벽에 창문의 달빛을 받으며 빛나는 복주의 넓은 등짝을... 우뚝 서 있는 그 등짝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나는 한줄기 식은땀이 흐르고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밤도 또냐...


저 감당할 수 없는 뻗치는 기운을 어찌하면 좋을꼬...



복주의 에너제틱함은 끝이 없었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기어다니고 물건을 잡고 일어나면서 온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책장에 있는 책들을 다 빼는 것은 기본, 서랍마다 열고 안에 옷들을 끄집어 내고.. 쓰레기통을 밀어 넘어뜨리고.. 코드를 잡아당겨 선반 위의 물건들을 떨어트리려고 하고..


복주가 지나간 곳은 언제나 난장판이 되었다.


그런 복주를 돌보는 게 힘들어서 베이비 룸에 가둬 두기도 했지만, 베이비 룸에 가둬 두면 울타리를 잡고 꺼내달라고 세상 서럽게 울어댔다.


내가 베이비 룸 안에 들어가면 울음을 멈췄지만, 그렇게 되면 내 자신이 복주의 먹잇감이 되었다.


앉아 있는 내 몸을 복주는 타고 기어 오르고,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고, 손톱으로 목덜미와 가슴을 할퀴고, 목을 잡고 매달리고, 뺨에 열정적인 뽀뽀를 퍼부어 대다가 뺨을 콱! 물어버리고...


복주와 몇 시간만 놀아주다보면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피곤해 기절해 버리겠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곤 했다.


그렇게 복주와 놀아주면서도 가사일과 이유식 만들기도 안 할 수 없었다.


복주를 아기띠에 얹고 등에 매서 업은 다음..(처음엔 할 줄 몰랐는데, 유튜브에서 '아기띠 뒤로 매기'를 검색해서 몇 번 따라하다보니 이제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저녁을 차린다.


이제 10kg을 훌쩍 넘어버린 복주를 등에 한참 업고 있으면 허리에 부담도 많이 가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전혀 집안일을 할 수가 없는걸 ㅠㅠ


"숲 속 작은 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섰는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


복주에게 동요를 불러주고 있을 때면 이 동요의 노래 가사가 그야말로 내 심정이었다.


"나좀 살려주세요~나좀 살려주세요~ 나를 살려주지 않으면..... 엄마는 빵! 기절해 버린대요."


복주야 제발 살려줘 ㅠㅠ


내가 정말 경이롭게 느끼는 것이 뭐냐면, 이 세상의 이 많은 인류들이 그토록 부모들을 힘들게 하면서 영아기를 보냈다는 것.. 수많은 부모들의 피와 땀과 눈물 위에서 이 많은 사람들이 자라났다는 것이다.


원래 사람 한 명을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건가..? 아니면 우리 복주가 조금 유별난 건가..?



그렇게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는 나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돈을 쓰는 것밖에 없었다.


베이비시터를 불러 아기를 맡기고, 이유식을 만들지 않고 사서 먹이고, 도우미를 불러 가사일을 시키면 이 엄청난 피곤함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피곤함에 몇 번이나 검색을 해보며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큰맘 먹고 시터를 불러보기도 했고 이유식을 사다 먹여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 있으면서 외벌이로 전락하여 자금도 넉넉치 않은데 매일같이 그렇게 돈을 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유식도 한 끼에 5천 원 정도라 하루에 세 끼를 매번 사서 먹이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사실 어떻게든 쥐어짜내면 돈을 쓸 수야 있기는 있겠지만... 고 몇 시간 쉬자고 그렇게 체력보충에 기별도 안 가는 몇 시간의 휴식을 위해 몇 만원이라는 큰 돈을 지불하는 게 심리적으로 잘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가 정말 피곤해 졸도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급하게 지역 맘카페에 시터 구하는 글을 올려서 하루 단기 알바를 구하곤 했다.


시터를 부르면 복불복이었다.


어떤 시터는 복주와 궁합이 잘 맞어서인지, 시터가 아이를 잘 보는 분이어서인지.. 내가 손이 안 가고 정말 편히 쉴 수도 있었지만..


어떤 시터 분과는 복주가 잘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울어대서 내가 옆에 붙어 있어야만 했다. 또 기껏 시터를 불렀는데 복주가 하필 그때 낮잠을 한참 자기도 했다. (복주가 워낙 낮잠 시간도 불규칙적이라서 시터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또 어떤 시터분은 복주와 제대로 놀아주지 않고 복주에게 장난감을 던져 준 채 그냥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시터비가 아까워서 그냥 내가 보는 게 낫지..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잘 봐주시는 시터분들은 대개 얼마 안 있어서 다른 집에 매일 나가는 고정 시터직으로 빠져 버리고는 해서 다시 부르려고 하면 단기 알바인 나는 부르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시터를 몇 번 부르지 못하고 나 혼자서 어떻게든 9개월 넘게 복주를 키워왔다.


그래도 키운 보람이 있게 복주는 착실히 발달 단계에 맞는 성장을 보여 주었다.


5개월 쯤부터 혼자 앉기 시작했고, 6개월이 되면서 배밀이를 하고, 6개월 반부터 기어 다니고, 7개월이 되면서 물건을 잡고 혼자 일어서고, 8개월이 되기 전에 걸음마 보조기를 잡고 밀고 걸어다녔다.


옹알이도 많이 늘어서 하루종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 같은 옹알이를 뭐라뭐라고 떠들어댔다.


자기를 베이비룸에 혼자 두고 밥을 먹고 있는 나와 남편에게는 항의하듯이, "야~! 압빠음마!!(아빠엄마)"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한단계 한단계 업그레드 되어가는 복주가 기특하고, 별탈없이 건강하게 크는 복주가 기특하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언제나 그렇게 되뇌어 보지만..


이 참을 수 없는 피곤함과 고단함은 만성질병처럼 몸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언제쯤이면 좀 편해질까....?


내일은 좀 낫겠지, 내일은 좀 낫겠지, 하면서 하루살이처럼 근근히 버티고 있는 하루하루..


내일은 다르겠지, 내일은 좀 낫겠지.. 좀더 시간이 흘러서 복주가 말귀를 더 잘 알아듣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더 낫겠지..


그렇게 오늘도 속으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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