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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주 엄마 Mar 05. 2022

밤수 끊고 통잠 재우기 프로젝트(3)

육아서적들이 말하는 아기를 눕혀서 재우는 방법에 대하여

아기를 눕혀서 재우는 방법과 밤수 떼는 방법에 대해서 각 책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1) 프랑스 아이처럼 : 잠깐 멈추기를 통해 아이가 울어도 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도 통하지 않는다면 절멸법을 쓰는데, 이것은 적당한 저녁 시간에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방에서 나와 아침 7시가 될 때까지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오랜 시간 울겠지만 다음날이 되면 더 짧아질 것이고 다음날이 되면 더 짧아질 것이고 결국 성공할 것이다. 


2) 돌 전 아이에게 해 줘야 할 116가지 : 6개월이 넘었는데도 밤수를 하고 있다면 아기를 울려서라도 밤수는 그냥 떼세요. (초간단하고 단호한 설명)


3) 꿀잠 자는 아이 :

- 낮잠보다는 밤잠을 재울 때 시도한다.

- 스왑법 : 아이가 아직 깨어 있을 때 아기 침대에 내려 놓고 방 밖으로 나간다. 아기가 3개월 미만이라면 10분, 3개월 이상이면 15~20분 후에 아기에게 간다. 이 시간이 지난 후에 만약 아기가 차분한 상태이거나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잠들 때까지 계속 기다려 본다.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면 실패를 인정하고 평상시 방법대로 재운다. 그리고 며칠 뒤에 다시 시도해 본다. 이런 시도를 계속해서 한다.

- 아기를 완전히 재운 후 살짝 깨운다. 완전히 깨우지는 않고 살짝만 건드려서 깨운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 자게 만든다. 아기가 등을 대고 누우면서 자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방법이다.

- 아이의 수면을 돕는 행위를 조금씩 줄인다. 안아주기, 자장가 불러주기, 이야기해주기, 토닥여 주기 등 행위의 강도를 매일 밤 조금씩 줄여나간다. 부모가 곁에서 얼러주기는 하지만 크게 개입하지 않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이 과정을 며칠 간 지속한다. 깊이 잠든 척 연기도 해 본다. 아기가 엄마에게 와 매달리면 살며시 안아주되 눈은 감고 있는다. 그러다가 점점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아기와의 거리를 벌려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아기를 침대에 내려 놓고 방에서 걸어 나온다.

- 슬립법 : 적절한 취침 시간에 아기를 눕히고 방에서 나간다. ('프랑스 아이처럼'에서의 '절멸'과 동일)  


4) 똑게 육아

-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방을 나온 후 3분 후 다시 들어간다. 아기 방에서 30초 정도 머문 후 다시 나온다. 5분  다시 들어갔다가 나간다. 그리고 계속 5분 간격으로 체크한다. 이렇게 30분~60분 정도를 울린다. (사실상의 퍼버법. 퍼버법은 전진적으로 사라지는 방법으로 3분, 5분, 10분 등 시간 간격을 점점 벌려가며 돌아와 들여다보는 방법이다.)

- 밤에 중간에 깰 때는 똑게식 진정 계단 사용해서 한 단계씩 점차적으로 진정 방법 올려 나가기  : 1단계 아기 근처에서 머무르기, 2단계 손부채질, 3단계 공갈젖꼭지 입에 넣어주거나 인형 보여주기, 4단계 간단한 스킨십(등 두드리기, 가슴이나 배, 머리 쓸어주기), 5단계 누워 있는 상태에서 이리저리 움직여 주기(?? 이건 사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누워 있는 상태에서 굴리라는 소리인가..), 6단계 안아 올려 부드럽게 둥가둥가 하기, 7단계 젖 먹이기

- 밤수할 때에는 먹이거나 눈 마주치지 말고 다른 자극 주지 말기 / 기저귀는 응아 아니면 웬만하면 갈지 말기(하지만 나는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특히나 밤수를 한다면 계속 오줌을 싸는데, 기저귀 갈지 말라는 똑게식으로 했다가 완전히 기저귀가 젖어 버려서 이불에까지 새어나가고 아기는 발진 생기고 했던 적이 있어서 아기가 밤에 울 때 웬만하면 기저귀 갈지 말라는 말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5) 베이비 위스퍼 : 피곤해서 하품하는 시간을 잘 포착해서 재운다. 취침 전에 목욕과 마사지를 해 주고 자장가를 들려준다. 아기가 눈을 스스르 감으면 더 이상 안아주지 않는다. 아기가 칭얼대도 끼어들지 않는다. 계속 칭얼대면 등을 규칙적으로 가볍게 다독여주는 정도만 한다. 계속 일정한 속도로 심장박동을 흉내내면서 아기 등을 다독거린다. 칭얼거림이 멈추면 다독거림도 멈춘다. 아기가 잠들기 전에 수유를 하거나 안고 걸어다니지 말라. 자다 깨서 울어도 끼어들지 말라. 아기가 악을 쓰며 울어도 굴복하지 말라.

 

이런 저런 말들로 길게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 모든 책들이 하는 말은, '아기를 울리시오' 였다.


아기를 수면교육하는 거라고 하지만, 사실상은 수면교육이 아니라 '엄마가 아기의 울음을 참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봐야 했다.


아기의 울음 소리를 듣고 있다보면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고는 했다.

수면교육할 때 울부짖었던 복주ㅠㅠ

이러다 진짜 애 잘못되는 거 아냐? 정말 정서에 아무 문제 없을까?

(아기가 고개 까딱까딱하는 것만 보고도) 혹시 불안감에 틱 생긴 거 아니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뇌세포를 파괴한다는 데 우리 아이 바보되는 거 아니야?

엄마를 미워하게 되면 어쩌지?

세상에 대한 불신감이 생기면 어쩌지?

복주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나 편하자고 하는 이기적인 행동 아닐까?

나이가 들면 결국 해결되는 문제 아닐까? 쫌만 더 기다려서 말귀 알아듣는 나이가 되면 알아서 잘 자지 않을까?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런 생각에 결국 참지 못하고 복주에게 달려가 안아줄 수밖에 없는 그런 나였다.


결국 나는 복주를 혼자 내버려두는 '절멸법'은 한 번밖에 쓰지 못했다.


내가 쓴 방법은 점진적으로 도와줌의 단계를 줄여 나가는 '곁에 있어주기'였다. <꿀잠 자는 아이> 책에서 소개된 '스왑법'이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이라고 봐야겠다.


수면교육 첫째날 40분간 복주를 울렸던 절멸법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다시 쓰기가 힘들었다. 사실 '스왑법' 비슷한 방법을 그동안 여러번 썼는데도 수면교육에 실패해서 바로 절멸법으로 갔던 것인데, 절멸법은 여러 번 반복하기에는 도대체가 너무나 잔인한 방법이었다.


그래도 절멸법이 아예 쓸모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수면교육 첫날에 복주를 오랫동안 울리면서 나 역시 복주의 울음에 대해 약간의 내성이 생긴 것인지 스왑법을 하면서 복주의 울음에 예전보다 좀더 무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어서 결국 스왑법을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충분히 진행해서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복주를 눕혀서 재우기 위해 쓴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 가만히 곁에만 있어 주기 : 아기가 아무리 보채도 안아주는 것은 최소한으로 하고 가만히 옆에 앉아만 있었다. 마치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 짐짝이 된 처럼.. 무생물처럼 곁에만 있어 주었다. 만약 복주가 너무 심하게 울면서 내게 달려들어 안기면 앉은 채로 복주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토닥이기는 했지만 복주를 들고 일어서서 흔들어 주거나 젖을 물리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수시로 끌어안고 토닥여 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개입을 줄여나갔고, 결국에는 내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복주가 혼자 뒹굴다가 잠들 수 있는 단계까지 진행시켰다.


2) 잠시 나갔다 들어오기 : 옆에 앉아서 가만히 있어 주는데 복주가 우는 게 너무 심해지고 계속 보채기만 하고 내 몸에 달려들기만 하면 나는 범퍼침대에서 나와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 복주는 가엽게도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악을 쓰고 울고 절규했다. "엄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내게 그럴 수가 있어요!!"


5분 정도 밖에 있다가 다시 범퍼 침대 안에 들어가 그냥 가만히 복주를 앉은 채로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기만 했다. 그런 후에 복주를 눕혔다. 복주는 당연히 다시 또 울어댔다. 그러면 나는 다시 범퍼침대에서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1분 정도만 밖에 있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렇게 세 번 정도를 반복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복주는 자기가 칭얼대면서 울면 엄마가 다시 방을 나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울음을 참고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어린 아기가 억지로 울음을 참는 듯해 보여서 불쌍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나 역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복주는 훌쩍 훌쩍 불쌍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조용히 흐느꼈다.


그리고는 침대 안을 이리저리 뒹굴다가 스스로 잠들었다.


나는 복주가 스스로 뒹굴다가 등을 침대에 붙이고 잠드는 것을 그때 처음 목격했다.


복주가 스스로 잠들기까지의 시간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더 짧아졌고 저항도 줄어들었다,


복주가 조금씩 스스로 자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엄마의 한쪽 젖은 빨고 한쪽 가슴은 손으로 만지다가 잠들던 복주였는데, 그걸 못하니 애꿎은 엄마 허벅지와 종아리만 작은 손으로 벅벅 문지르고 만지작거리다가 자는 복주였다.


나는 복주에게 다리만 내어주고 개입하지 않은 채 명상하는 기분으로 몇십 분을 가만히 앉아있고는 했다.


이 방법은 가장 온건해 보이는 방법이었고 '점진적으로 울리기', '부드럽게 울리기'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것 역시 결국은 울리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지난 2주 동안 복주는 목이 쉬어져라 울었고, 며칠 동안이나 쉰 목이 되어서 듣기만 해도 가슴 아픈 쇳소리를 하루종일 내었다.


복주가 우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면 수면교육 그냥 때려치우고 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책에 써 있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가 눈물을 조금 흘렸다고 해서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볼 수는 없다. 아이가 눈물을 조금 흘렸다는 것은 부모가 아이를 다소 실망시켰다는 뜻이며,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새로운 능력을 갖출 기회를 주는 것도 부모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다. 아이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무수한 역경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아이가 화를 내거나 언짢아한다고 해서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 변화는 어려운 법이고, 인간은 누구나 변화를 거부하기 마련이다.

 - 꿀잠 자는 아이


매번 아기의 요구에 응해주고 Non이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으면 아기의 인격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밀고 넘어서야 할 장벽,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대라는 장벽을 없애기 때문이다. '푹 자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아이가 자립하고 혼자서 잘 해낼 수 있도록 첫 번째 교훈을 주는 것이다.


아기가 밤에 배가 고프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에 프랑스인 소아과 의사 미셸 코헨은 이렇게 말했다. '배가 고프다고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한밤중에 공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위도 쉬어야 한다는 걸 알고 먹지 않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아기들도 그렇게 하는 게 좋다.'

- 프랑스 아이처럼


평화롭고 평온한 긴 밤을 발견하고 고독을 받아들이는 자체가 아이가 슬픔을 이겨내고 내면의 평화를 회복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자는 법을 배우는 것과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결국 동의어가 아니겠는가?

- 잠, 꿈, 아이



낮에 즐겁게 웃으면서 노는 복주가 쉬어터진 목소리로 웃음소리를 내면, 그렇게 밤중에 엄마가 울렸는데도 웃어주는 복주가 대견하고 고마우면서도 너무 미안해서 나는 쉼없이 눈물을 흘렸다.


복주가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조차 죄책감이 드는 시기였다.


지금도 결국 수면교육에 성공은 했지만 이것이 정말 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친구들 중에는 나처럼 아기를 울려서 결국 수면교육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성공하지 못해서 두 돌이 될 때까지도 밤수를 하며 두 세시간 간격으로 깨고 그 후에도 밤에 한 두번은 계속 깨다가 아이가 여섯 살이 되고 나서야 통잠을 자기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후자라고 해서 현재 행복하지 않다거나 아이가 뭔가 잘못되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다 해결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모두가 수면교육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면교육이 꼭 옳은 것도 아니다. 책이나 논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정말로 미세한 정서상의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수면 '교육'이 된 게 아니라 아기가 그냥 부모가 자기를 달래주는 것을 '포기'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했던 것은, 나는 이렇게 계속 밤에 수시로 깨어나는 채로는 결코 행복하게 육아를 할 수 없었고 너무나 힘들고 너무나 피곤했고 낮에도 아기를 온전하게 케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육아 우울증에 걸리기 일보직전인 나에게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전히 한계에 몰리고나서야 수면교육을 했다는 점에서 수면교육은 온전히 복주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기적인 나를 위해서였다.


수면교육을 하지 않았던 것도 복주를 울게 하고 싶지 않고 복주를 너무 사랑해서 못한 것이기도 했지만, 수면교육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신경 써서 루틴을 만들고 밤에 깨어난 아이를 몇 시간 동안 붙잡고 씨름할 에너지와 여력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수면교육을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도, 이번에 수면교육을 독하게 한 것도 모두 복주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나를 위한 것이 더 컸다.  


수면교육을 그동안 하지 않아서 복주가 밤마다 깨어나서 너무 많은 양의 젖을 먹고 살이 뒤룩뒤룩 찌게 했던 것도 나의 잘못이었고, 수면교육을 해서 복주가 엄청나게 많은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 했던 것도 나의 잘못이었다.


무엇인가 더 현명하게 아이를 울리지 않고 부드럽게, 더 빨리 잘 재우는 방법이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이러나 저러나 엄마는 죄인이다.  


복주야, 울려서 미안해. 하지만 너를 누구보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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