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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주 엄마 Nov 01. 2023

둘째 고민은 낳아야 끝이라면서요?

초저출산 시대를 사는 엄마가 둘째 낳기를 망설이는 이유

둘째 고민은 낳아야 끝이라던가.


요즘 나와 남편의 가장 큰 고민은 둘째를 낳느냐, 마느냐는 것이다.


둘째 고민은 첫 아이인 복주를 낳고부터 30개월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끊임없이, 가끔은 치열하게 한 고민이었다.


둘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이 시점에 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 그리고 낳고 싶은 유혹을 갖게 한 요인을 한번 쭉 적어볼까 한다.



딩크도 많고 외동이 보편화된 오늘날, 그래도 내가 둘째를 고민하는 이유


1. 육아친화적인 천혜의 직장

나는 한국에서 가장 육아친화적인 환경의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3년 육아휴직을 직장의 구성원 누구나 자연스럽게 쓸 수 있고,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는 모성보호시간을, 어릴 때에는 육아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퇴근 시간은 4시 50분, 육아시간을 쓰면 최대 2시 50분에 집에 올 수도 있다. 육아시간을 앞뒤로 나눠 쓰는 것도 가능해서 등하원이 크게 어렵지 않다.   

그래서 나 역시 복주가 세 돌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3년째 육아휴직을 하고 있었고, 3년 동안의 육아휴직을 하면서 나는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면서 복주를 마음껏 사랑해 주었고, 마음껏 안아 주었고, 하고 싶은 교육도 실컷 연구해서 해볼 수도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가사일을 마친 후 잠시나마 운동도 하고 나의 여가시간도 즐길 수 있었다.

전업 주부의 생활은 생각보다 너무 즐겁고 좋았다.

이것저것 요리를 시도하는 것도 재밌었고, 깨끗하고 정돈된 집을 유지하는 것도 기분 좋았고, 아이 교육에 원없이 내 시간을 투자해 볼 수 있는 것도 보람 있었다.

한 마디로 나는 아주 행복하게 여유롭게 육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평화롭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3년 더 연장할 수 있다니..!!

솔직히 말하면 육아휴직을 연장하고 싶어서 둘째를 고민할 정도였다.


2. 너무 귀여운 아기

두말하면 입 아픈 아기의 귀여움..

뒤통수만 보고 있어도 귀엽고, 빵빵한 볼도, 포동포동한 발도, 땡깡 부리면서 얼굴을 찌푸리며 우는 표정까지도 너무나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복주가 자라나면서 애기애기함이 점차 사라지고 꼬마가 되어가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복주의 유아기가 끝나가는 게 너무나 아쉬워서, 또다시 둘째를 낳음으로써 이런 지극한 귀여움으로 느끼는 지극한 행복의 시간을 더 길게~ 길게~~ 연장하고 싶다는 충동이 언제나 일어났다.


3. 친구들이나 사촌들과 있으면 더 신나게 노는 복주

혼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심심해서 많이 칭얼대고 엄마 껌딱지가 되어서 하루종일 내게 붙어 있는 복주가, 명절에 사촌들을 만나면 같이 줄을 돌리면서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같은 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면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였다.

복주를 데리고 캠핑을 가도, 여행을 가도.. 또래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에서 더 복주는 즐겁고 신나 보였고, 나 역시 우리 세 가족만 여행을 가면 뭔가 심심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고는 했다.

조금 더 복작복작 깨알 볶는 즐거움을 여러 자녀들과 알콩달콩 누리고 싶었다.

더 복작복작한 크리스마스 파티, 더 복작복작한 캠핑...!

때로는 혼자 노는 복주의 뒷모습이 왠지 안쓰럽고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4. 나에게 있어서 유년기의 형제의 의미

나에게는 남동생이 있는데, 동생과 어렸을 때 정말 잘 놀면서 지냈다.

동생과 함께 있었기에 만화영화를 봐도 더 재밌었고 여행을 갈 때도 차안에서 심심하지 않았다.

동생과 온갖 기상천외한 놀이들을 생각해 내면서 놀고는 했고,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걸 동생에게 가르쳐 주었을 때 동생이 신기해 하고 더 궁금해 하는 것을 보는 것도 좋았다.

내가 처음으로 쓴 소설도, 만화도 처음 읽어 준 독자는 동생이었고 나의 유년기에서 동생의 존재가 없었다면 얼마나 외롭고 심심했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복주에게도 동생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육아를 함으로써 게 되는 커리어 리스크가 적다는 것, 은 기회비용

육아친화적인 나의 환경을 보고 다들 짐작했을 거라 생각한다. 나의 직업은 교육 공무원, 즉 교사이다.

월급 적기로 소문 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만큼 육아휴직을 해도 포기해야 하는 소득의 기회비용은 그리 크지 않았다.

복직 후에 내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두려움도, 승진에서 누락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없었다.

육아를 함으로써 갖게 되는 커리어 리스크가 적다는 것은 둘째를 희망하게 하는 큰 요인이 되었다.


6. 약간 혹하는 정부의 경제적 지원

내년에 정부는 아이를 낳으면 100만원의 출산 지원금과 200만원의 바우처, ★1년 동안 월 100만원(1년 후에 두 돌까지는 50만원)의 부모급여★,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준다고 했다.


"이 정도면 둘째를 꼭 낳아야지!" 정도의 금액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어느정도 힘들 때 시터도 쓰고 살 수 있겠다.. 싶은 정도의 금액은 되어서, 육아가 가장 힘든 1년 동안 어느 정도 시터를 쓸 수 있는 금액이라는 점이 큰 메리트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둘째 낳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둘째를 망설이는 이유


1. 둘째 출산과 육아에 비협조적인 남편

남편은 나와 달리 육아 스트레스가 큰 편이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성격에 가까운 나는 육아로 인해 벌어지는 온갖 변수와 힘듦에 대해서, 물론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에 비하면 비교적 여유 있게 넘어가는 편이었다.

그에 비해 언제나 심리적 긴장도가 높고 삶에서 변수가 생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체력도 약한 편인 남편은 변수 많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나보다 훨씬 강했다.

똑같이 떼를 쓰는 복주를 보아도, 나는 아이는 원래 저러지~ 라면서 그냥 훈육을 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반면 남편은 복주의 인성에 대해서 지나치리만큼 걱정을 하기도 하고 훈육도 (내가 보기에는) 조금 가혹하게 하기도 했고 본인 스스로도 아이에게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했다.

남편은 체력도 좋지 않아서 육아로 인해 육체적 노동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을 많이 느꼈고, 본인은 한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육아 기여도가 낮았다.

복주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육아와 가사 분담 문제로 인해 수도 없이 싸웠고, 둘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한계를 느꼈다.

그 싸움은 복주가 어린이집에 가고 내가 한숨 돌리게 되면서 낮에 기력을 보충하고 오후에 거의 온전히 육아를 다 도맡아 함으로써, 그리고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가사일도 거의 다 해냄으로써 드디어 종결되었다.

이 세상에 워킹맘이라는 단어는 있어도 워킹대디라는 표현은 보편화되지 않은 실상이 보여주듯이, 워킹대디인 남편은 출산 후 삶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아니, 남편은 은연 중에 자신의 삶이 크게 변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애가 없을 때에도 하던, 쓰레기 버리기와 설거지 정도를 하는 가사일의 분담..

남편이 정기적으로 늘 하는 분담 업무는 이게 끝이었다.

물론 주말에 내가 밥을 차리거나 하는 동안에는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외식을 할 때면 주로 남편이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었다. 가끔씩 밤에 아이를 재워주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등원, 하원, 하원 후 놀아주기, 식사 차리기, 아이 먹이기, 씻기기, 재우기, 아이의 온갖 용품 구매하기, 연령에 따른 아이의 교육 챙기기 등 육아에 관한 한 90% 이상 내가 역할을 해야 했고, 남편에게 이 역할들을 좀더 분담하게 하는 것은 남편과의 많은 갈등을 야기했다.

남편에게는 육아분담을 좀더 나눠가질 의지도, 시간도, 체력도.. 모든 것이 부족했다.


둘째를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은 자신은 둘째 생각이 결코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그릇은 지금 복주 한 명만으로도 차고도 넘쳐. 둘째를 갖는 것은 내가 역량이 정말 안 돼. 만약에 둘째를 정말 정말 낳고 싶다면, 너 혼자 키울 각오로 낳아. 나는 이번에 둘째 낳으면 육아에 손도 안 댈 거야. 나 없다고 치고 100% 너 혼자 다 키울 자신 있으면 낳자고 해."


남편의 이런 말은, 둘째를 낳아도 자신은 육아에 절대로 비협조적일 것이라는 선전포고나 다름 없었다.


남편이 낳자고 낳자고 졸라서 낳은 복주를 기를 때조차도 남편의 육아참여는 날이 갈수록 저조해져서 성에 차지 않았던 나였다.

그때에 나는 틈틈이 그냥 남편은 없는 셈치고 혼자 육아를 하자고 마인드컨트롤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남편이 아예 이렇게 대놓고 나는 못하겠다고까지 나온다면...


둘째를 기르는 육아 난이도는 정말 헬이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지금은 비록 내가 아직 휴직 상태이고, 아이가 한 명이기 때문에 남편의 이 정도의 작은 육아참여에도 어느정도 여유롭고 행복하게 육아를 할 수 있지만.. 만약 아이가 두 명이 된다면..? 어린이집도 가지 못하는 어린 아이와 복주를 나 혼자서 케어하게 된다면...? 내가 복직을 한 후 남편의 협조 없이 두 아이를 돌보는 워킹맘이 된다면....?


둘째가 5세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어쩌면 그 이상까지도) 꽤나 바쁘고 힘들고 때로는 지옥같이 느껴질 빡빡한 삶을 살게 될 것이 불보듯 뻔했다.


떼쓰는 복주로 인해 유난히 힘든 육아 하루를 보냈던  어느날, 복주에게 저녁을 먹이고 난 후 복주를 씻겨주는 것만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나에게,

"나 여태 일하고 와서 힘든데..! 낮에 집에서 있었으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라면서 짜증을 벌컥 내는 남편을 보면서,

'아.. 그래. 내가 누굴 믿고 둘째를 낳길 낳아.. 한 명도 건사하기 힘들다.'

라면서 둘째 생각을 접어 버리는 나였다.

 

나의 둘째 출산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결국 남편이었다.


아니 어쩌면, 엄마 혼자서 오롯이 애를 케어해야 하는 핵가족 사회+아직 이런 시대에 맞게 잘 거듭나지 못한 (육아분담 쪽에서만) 구시대적인 남편들이야말로 오늘날 둘째를 못낳게 하는 큰 요인이 아닌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 명의 애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한데 말이다ㅜㅜ


2. 노산

나는 한국의 평균적인 혼인 나이에, 남편은 평균보다 조금 이른 나이인 만30세에 우리는 동갑으로 결혼을 했다.

그러나 신혼생활 1년을 보내고, 임신 준비기간을 (원치 않은 유산 등으로) 2년 가진 후에 첫 아이를 낳은 내 나이는 의학적 노산 연령을 딱 1년 앞둔 시기였다.

현재 나는 빼박 노산의 나이에 접어들었고, 아직 아이에게 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점점 위험해지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노산과 환경호르몬 등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사회에 자폐와 기형아 출생 확률이 높아졌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또 미디어에서 접하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힘든 삶을 보고 있을 때면, 내가 첫째는 어떻게 무사히 넘겼다만.. 둘째는 혹시라도... 하는 걱정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장애가 있는 자식을 출산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생에 너무 큰 리스크인데, 노산으로 인해 그 확률이 높아져 있다는 것 역시 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약간의 요소가 되었다.

또한 나와 남편의 나이가 많아짐으로 인해 육아를 할 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것 역시 둘째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였다.

빨리 결혼하고 빨리 첫아이를 낳아야 둘째를 낳을 확률도 올라가는 것 같다.


3. 아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의 한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한국에서 생존을 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물론 안 그런 나라가 어디있겠냐마는..

한국은 특히나 취업도 어렵고(복주가 취업할 때쯤엔 동년배 수가 너무 턱없이 적어서 취업이 더 쉬워질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원하는 삶에 대한 사회적 기준도 상당히 높다.

또 부모의 서포트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입시, 취업, 결혼의 관문을 깨는 퀘스트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며, 결혼 후 적당한 부동산을 구매하여 자산을 불려나가는 속도까지도 천지차이가 된다.

한국에서 생존을 하고 내 자신의 자리를 잡는 데 너무 힘들다고 느꼈던 사람일수록, 또 나 자신이 자식에게 사회에서 잘 자리잡도록 도와 주는 데 충분한 지원을 할 만한 여력이 되는가에 대해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아이를 낳는 것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흔히 '사교육비'가 너무 걱정되어서 아이를 못 낳는다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또 SNS로 인한 비교질로 인해 사람들이 아이를 못 낳는다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나는 아이에게 사교육비를 아주 크게는 투자하지 않을 예정인 사람으로서, SNS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연예인들이 얼마나 잘사는지 그 흔한 관찰예능 한번 잘 보지 않는 사람으로서도...

둘째를 출산하는 데 있어서 부담을 느낀다.


왜냐하면 형제로 인해 복주가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불이익' 때문이다.


형제가 있음으로 인해 복주에게 투자하는 우리의 교육비는 절반에 가깝게 줄어들 것이고,

또 복주가 결혼한 후 집을 살 때에 지원해 줄 돈 역시 훨씬 줄어들 것이다.

내가 복주의 교육에 신경쓰고, 복주에게 붙어서 책을 읽어주고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복주가 받는 그러한 불이익이 복주가 형제를 가짐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작은가..?


확실하게 예스라고 말할 수 없었다.


또한 그렇게 절반으로 줄어든 지원은, 복주가 이 사회에서 생존하고 잘 자리잡을 확률을 낮출 것이다.


그냥 적당히 놀고,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살아가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누구나 괜찮은 직장을 가질 수 있고 살아가는 데 큰 박탈감이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아마 내 아이도 큰 이변이 없는 한 괜찮게 살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으로 아이를 여럿 낳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입시를 뚫고, 치열하게 취업 준비를 해야만 어떤 '꽤 괜찮은 직장'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지구상의 다른 여러 빈민국에 비하면, 옛날 60~70년대 가난했던 한국에 비하면, 현재 대한민국의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보다는 훨씬 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괜찮은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우리의 눈은 눈앞에 벌어지는 빈부격차의 커다란 간극을 좇고 있는데...

조금 더 윤택하고 조금 더 풍요롭고 조금 더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해서 결핍감으로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가는 이 사회에서..

복주 혼자 어떤 삶을 살든(경쟁에서 크게 뒤쳐진 삶을 혹시 살게 되더라도) 자존감 높게 언제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기 어려웠다.


또 혹시나 복주가 경쟁에서 많이 뒤쳐져서 혼자 힘으로는 취업도 어렵고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아이가 복주 한 명이라면 카페 하나라도 차려 주거나 뭐 하나 자영업이라도 시작할 수 있게 우리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식이 나중에 커서 크게 열등감 느끼지 않고,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사회적 지위를 갖출 수 있도록 서포트하려면 한 명한테만 하는 '지원 몰빵'이 유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 생각이 둘째를 낳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은 복주가 적당한 직업을 가져서 결혼에 성공하고, 또다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여건을 가게 될 확률을 높이려는 계획.. 다시 말하자면 내 유전자를 후대에 다시 전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려는 나의 무의식적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한 명만 자식만을 낳는 요즈음의 추세는, 자원은 부족한데 인구는 넘쳐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유전자를 계속 이어나가려호모사피엔스의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4. 자식으로서 내가 살아온 삶

아마 우리 세대가 자식을 낳지 않는 큰 이유는 이것일 것이다.

우리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투자해 주신 부모 세대,  하지만 부모님께 돌려드리는 것은 딱히 없는 우리 세대..


자식으로서 이러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 세대 역시 자식을 낳았을 때 많은 자원을 투자하게 될 것이고 자식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미래를 예견하게 해 준다.


부모에게 보은하기는커녕, 자식이 취업도 못하고 40대가 되어가도록 빌빌거리며 집에서 게임만 하면서 붙어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자식이 그냥 자기 밥벌이 하나만 해줘도 고마운 세상이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평생 경제적으로 한 인간을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서 모험을 강행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운이 좋아봤자 고된 육아로 돌아오는 마지막 결실은, 자식이 집에서 독립해 나가서 혼자 잘 사는 것이고.. 자식에게 투자한 시간과 경제적 자금을 그 이상으로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로지 육아를 하는 내적 충만감과 정신적 즐거움, 아이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보람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위해서만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이 낳기를 포기한다.


자식 한 명 한 명이 긴요한 인적자원이자 자산이 되었던 농경사회에서는 자식이 곧 재산이었기 때문에 많이들 자식을 낳았다.


자식이 노후를 책임져주는 보험 같은 존재였던 60~70년대에도 자식을 노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여기며 많은 자녀를 출산했다.


노후대비책까지는 아니어도 그냥 대충 키워도 나중에 제 밥벌이는 당연히 하겠지? 라는 기대감이 있던 80~90년대에도 자식을 두 명은 낳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세대에게 자식이란..?


정말 공들여서 아주 열심히 내 모든 것을 쏟아 키워내야 겨우 제 밥벌이를 제대로 할까말까 예상되는 존재이다.





사실 나는 아직도 둘째를 낳을까 말까 결정을 확실히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둘째를 낳았을 때의 장단점이 둘다 분명해 보여서 어느쪽의 결정도 쉽지 않다.


어느날은, '아.. 내 인생의 운명의 수레바퀴 어딘가에, 정말 예쁘고 착하고 건강하고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그런 둘째가(이왕이면 딸이..ㅎㅎ) 기다리고 있다면... 근데 내가 그걸 모르고서 그런 귀여운 둘째를 갖는 인생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라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


한 명도 벅차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루종일 떼를 쓰면서 밥도 잘 안 먹고 등원도 잘 안하려고 하고 목욕도 안 하려고 하고.. 온갖 땡깡을 다 부리는 복주를 데리고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양가 도움도 받을 처지가 안 되고, 남편의 도움도 크게 기대할 게 없는 나의 외로운 처지를 상기할 때면.. 역시 둘째는 안 되겠구나 싶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자식을 낳는 것에 대한 확실한 메리트가 어느날 생긴다면, (상급지의 부동산 분양 확률이 아주 많이 높아진다든가.. 두 자녀 이상 가정의 자녀가 대학갈 때 입시에서 큰 메리트가 생긴다든가.. 부모 급여가 두 배로 높아진다든가.. 1년 동안 시터 비용이 하루 6시간 이상 무상이라든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낳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정도의 상태에서는..


낳을까 말까.. 정말 잘 모르겠다.


이런 나의 고민은 깊어지는데, 출산이 생물학적으로 어려워지는 시기는 성큼성큼 재빠르게도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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