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와 전통시장 차이
결혼 한 이후, 살림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장 보는 곳은 항상 마트였다. 마트의 크기와 브랜드를 바꿔가며 난 늘 마트에서 식재료를 구매했다.
남편이 먼저 제주로 내려오고 내가 가끔 다녀가는 형식으로 살 때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올레시장이 있어 시장을 자주 갔다. 시장을 가면 여행객처럼 회를 샀다. 올레시장에서는 비교적 싼 값으로 회를 먹을 수 있어, 제주에 왔는데 회를 먹어야지!라는 마음으로 회나 전복을 주로 샀다. 와, 회와 전복을 이렇게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니!
온 가족이 모두 제주에 자리 잡고 나서는 일상처럼 장을 봐야 했는데, 역시 나는 집 근처의 이마트를 이용했다. 기본적으로는 이마트에 가서 사거나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시장에서 장 보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김치와 튀김을 파는 가게
반찬가게라고 하기에는 반찬이 많지 않고 딱히 뭘 파는지 알 수 없는 그 가게에 제주도 할머니들이 모여 김치를 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 가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제주도 할머니들이 김치를 살 정도라면 맛집이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그 집에서 나도 김치를 샀다. 역시나 너무 맛있었다. 그 이후로는 시장에 가면 그 집을 꼭 들렸는데, 그 집에는 김치와 튀김을 같이 팔았다. 튀김을 좋아하는 남편은 시장에 가면 그 집 튀김을 먼저 사서 손에 들고 장을 보면서 그 튀김을 먹는 것을 좋아했다. 튀김 자체가 얼마나 혜자스러운지 오징어 튀김의 오징어의 두께가 가히 엄지 손가락 굵기이며 길이도 족히 15센티는 된다. 그 집 사장님은 철에 따라 열무김치, 파김치 등을 팔았는데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으로 말도 안 되게 많은 양을 주신다. 우리 부부가 가면 일단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신다. (얘네가 또 왔네)
“사장님 김치 뭐 맛있어요?” “지금은 열무지” “그럼 열무김치 좀 주세요” 그러면 얼마를 살 거냐 묻지 않고 일단 싸신다. 그리고는 만원. 오천원. 이런 식으로 가격을 부르시는데, 가끔 너무 많이 싸셔서 오늘은 2만원인가?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5천원! 이래서 귀를 의심하게 만들곤 한다. 희한하게 그 집을 자주 가면 갈수록 김치값이 싸지는 느낌이다. 시장은 그람을 달거나 가격을 써놓지 않아서 사실은 가격은 온전히 사장님 마음이다. 김치는 집에서 만든 것처럼 너무 맛있다.
최근에 이 집을 갔는데 사장님이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장사를 잠시 쉬신단다. 이럴 수가. 저희 서운해서 어쩌죠. 너스레를 떠는데 갑자기 겉절이 김치를 싸신다. (달라는 소리도 안 했는데…) 싸주셔서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건가 싶어 얼마예요?라고 물으니 그냥 먹어! 하신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런 충격적 거래라니. 요즘 시장을 갈 때마다 문이 닫혀있는 그 집을 지나면 마음이 허전하다. 어서 치료받고 돌아오실 날을 기다리며…
난이도 높은 야채가게
마트에서는 야채가 소분되어 정확한 가격이 매겨져 있어서 필요한 만큼 선택하기가 쉬운데, 거기에 길들여진 서울깍쟁이에게 시장에서 야채사기는 난이도가 매우 높다. 일단 가격이 쓰여있지 않다. 처음에는 사장님 파 얼마예요? 이런 식으로 물었는데 그 얼마냐는 말이 참 무의미하다. 분량이 나눠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사장님은 내 얼굴을 한번 보고(요리하는 양이 얼마나 되는 사람인가 보시는 걸까?) 이 정도? 하면서 손으로 한 움큼 쥐어 보이신다. 그럼 천 원! 머 이런 식이다.
이렇게 모든 게 사장님의 손대중을 거쳐야 하는데 일일이 가격을 묻기 어렵고 여러 가지를 사기도 어려워서 처음에는 한두 개만 사고 나오는 식으로 하거나, 야채가게에 손님이 많을 때는 사는 것이 망설여지곤 했다. 몇 번 그런 일을 거치다가 이제는 그냥 사장님을 믿고 종목만 말한다.
“사장님, 깻잎, 미나리, 마늘, 고추, 양파 주세요.”
그럼 깻잎 한 줌(엄청 많다.)에 천 원. 고추 한주먹에 천 원. 미나리는 뭐 할 건데? 이렇게 물어보신다. 그럼 그냥 한주먹 주세요. 이러면 천 원. 싼 야채들은 그렇게 산다. 마늘이나 양파는 나름 계량이 되어 있다. 고사리처럼 비싼 것들은 바구니에 소중히 담겨있고 만원. 혹은 오천원. 이런 식이다. 야채를 이것저것 다 사도 온누리 상품권 만원 한 장이면 몇천 원을 현금으로 거슬러 받게 되어 있다. 시장의 야채는 마트의 야채와 비교가 안되게 싱싱하다. 제주의 야채는 특히 식감이 좋은데 무도 아삭아삭하고 양파도 사각사각하달까. 특히 제철에 나는 제주산 양파, 양배추, 무, 당근 등은 정말 너무 맛있다. 가끔 엄마에게 보내주고 싶은데 야채가 너무 싸다 보니 택배값이 더 들라나? 싶어 망설이게 된다.
무튼, 야채가게는 아직도 좀 더 적응해야 하겠지만(뭔지 모르겠는 야채들이 꽤 된다. 한 번도 안 사본. ) 뭐든지 천원인 그 사장님 손대중 계량이 무척 마음에 든다.
정육점
어렸을 적에 우리 동네에 “충남 정육점”이 있었다. (이 정육점은 얼마 전에 가보니 아직도 있다.) 가끔 엄마가 정육점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불고기 거리 얼마 사와라. 이런 거였다. 정육점 심부름을 할 때는 비싼 거를 사러 간다는 진지함이 있었다. 내가 살림을 하면서는 정육점에서 고기 사본적이 별로 없다. 주로 마트에서 고기를 샀기 때문이다. 부위별로 원산지별로 잘 정리되어 있는 고기들 중 하나를 집어 들면 된다. 제주도 와서도 이마트에서 장을 보면 고기까지 산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장에서 정육점을 한번 들어가 봤다.
사장님, 김치찌개 끓이려고요. 이러면 사장님이 고기 덩어리를 하나 꺼내 드신다. 칼로 쓱쓱 썰어서. 요정도? 하며 분량을 물어본 다음. 저울에 올리면 6,320원. 이런 식으로 찍힌 고기를 5천 원만 내. 이런 식으로 파신다.
그 고기가 바로 썰어지는 걸 봐서 그런지 뭔가 더 신선한 거 같고 맛있는 거 같아서 시장에 가면 이 정육점을 꼭 들린다. 삼겹살도 목살도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썰어주신다. 남자 사장님이 항상 인심 좋게 많이 주시는데, 어느 날 여자 사장님이 나오셔서 고기를 썰어주시는데 딱 저울대로 돈을 받으시는 거다. 힝.
“남자 사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물으니 일 보러 나가셨단다. 아쉽다.
두부가게
시장에는 두부만 파는 가게가 있다. (당연한 건가? 난 이게 신기했다.) 그 가게에는 매대에 중국산 도토리묵(천 원), 제주산 도토리묵(이천오백원), 국내산 콩 두부(이천오백원), 중국산 콩 두부(천 원). 그리고 순두부. 이렇게 놓여있다. 우리는 도토리묵은 중국산으로 두부는 국내산으로 산다. 두부는 보통 김이 폴폴 나는 뜨끈뜨끈한 경우가 많고 마트에서 파는 두부보다 밀도가 높다. 두부가 다 떨어지면 가게는 문을 닫는다. 3번 중 한 번은 문이 닫혀 있다. 두부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들 말로는 시장 두부는 맛이 다르다고 한다. (난 잘 모르겠다) 도토리묵은 중국산이 희한하게 더 맛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토리 묵의 색깔과 맛이고 제주산 도토리는 좀 흐리멍덩한 색에 질감이 좀 다르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날이면 야채가게에서 인심 좋게 담아주는 야채를 듬북 넣고 도토리묵 무침을 한다. 저렴하면서도 간편한 건강식!! 막걸리를 곁들일꺼라면 유산균 제주 막걸리로~
생선가게
요즘은 손님이 오지 않고서는 회를 잘 사지는 않는다. 시장에서 회를 파는 집과 생선을 파는 집은 다르다. 회를 파는 집은 수족관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면, 생선을 파는 집은 갈치, 고등어, 옥돔, 자리 외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생선들이 매대 위에 죽 누워있다. 아직도 이 생선집은 좀 어렵다. 일단 생선 중 알아볼 수 있는 게 갈치와 고등어, 옥돔 정도라 그렇다. 나머지는 어떤 생선들인지, 어떻게 먹는 건지 알 수 없으니 그걸 일일이 물어보거나 아는 척할 수 없어 사지 않게 된다. 더욱이 생선이 신선한지 아닌지도 구분하기가 어렵다. 갈치를 두어 번 사봤는데 진짜 큰맘 먹고사는 경우다. 갈치는 철에도 매우 비싸다. 작은 거는 3만 원, 큰 거는 5만원이거나 7만원. 서민의 생선이었던 고등어도 싸지 않다. 그리고 생선은 그때그때 가격도 다르고 나오는 것도 달라서 언제 뭘 먹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코앞이 바다인 곳에 살면서 생선을 이렇게 못 먹는다는 게 아쉽지만 좀 더 시도해 보리라.
바가지
시장에 가면 남편은 항상 사장님들의 관상을 본다. 어느 집에서 물건을 살지를 결정할 때, 남편의 “저기 사장님 인상이 좋다.”로 결정될 때가 많다. 그렇게 한번 사본 이후 좋다고 생각되면 그 집을 쭉 이용하는 식이다. 그렇게 뚫게 된 몇몇 가게들 외에 가끔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서 바가지를 쓸 때가 있다. 한 번은 할머니가 몇 개의 야채를 바닥에 놓고 팔고 계셨는데, 완두콩을 이쁘게 까서 바구니에 담아놓으셔서 “이거 얼마예요?”라고 물었는데. 갑자기 그걸 비닐에 주섬주섬 담으면서 “이게 #$%*천원인데 #$%”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말 중 천 원이라는 말만 들린다. 이게 천 원이라고요?? 몇 번을 물어도 답이 없다. 이미 완두콩은 비닐에 다 담겼다. 지갑에서 천 원을 꺼내 드렸더니 “아니, 뭐 하는 거야? 요즘 천 원으로 뭐를 사? 천 원 빠진 만원이라고!” 이러신다. 참내. 얼떨결에 완두콩 만원 어치와 (만원으로 야채가게에서 살 수 있는 분량을 생각할 때 어리둥절하지만) 혼나기까지. 옆에 있던 남편이 저건 거의 시장 할머니 코스프레에 가깝다고 어이가 없단다. 그런 식으로 가끔 이건 잘못 샀구나. 할 때가 있다. 시장이라고 다 싸고 좋은 건 아니란 말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설날을 제주에서 보냈다. 설 전날 오전에 올레 시장을 갔는데 우린 정말 진풍경을 보았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회골목은 거의 문을 닫았고, 주민들이 주로 가는 골목 쪽으로는 인산인해 사람이 북적북적. 우리가 가던 단골 가게들에 온 가족이 다 나왔다. 대부분 사장님의 자녀들이 총출동된 모습이었는데 별거 팔지 않던 우리의 단골 김치가게는 전을 팔았는데 사람이 제일 많았고 사장님의 딸, 아들, 사위, 동생 다 나온 듯 안쪽에서 거의 전 부치는 공장이 돌아가고 있었다. 바쁜 와중 깜짝 놀란 우리를 보시더니 튀김을 하나 얼른 먹으라고 챙겨주신다. 정육점도 야채가게도 모두 여러 명의 자녀들이 일손을 도우러 나와있다. 아, 진짜 명절 분위기 난다. 시장은 아직도 가족 운영이구나. 서울에서는 명절 연휴에 일손 바빠져도 자녀들이 돕는 경우보다는 시급을 높여 알바는 찾는데 말이다. 올레시장은 관광객들에게는 마농치킨과 회를 사 먹는 곳, 야시장으로 기억되는 곳일지 모르겠지만 제주에서 살게 된 우리에겐 그렇게 사장님들의 인심이 있는 정겨운 곳이 되었다.
덧붙여> 온누리 상품권 사용법.
전국의 모든 시장과 지하상가 같은 곳에서 사용가능한 온누리 상품권은 명절 시즌엔 10%, 평상시에 5% 혹은 7% 등 대중없는 할인금액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보통 10% 할인율을 유지할 때가 많다. 온누리 상품권은 종이로 된 상품권과 어플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지권(종이로 된 상품권)은 새마을금고나 농협 같은 곳에서 직접 구매해야 하는데 시장에서 써보면 지권을 쓰기가 편하다. 만 원짜리 상품권을 내면 얼마를 사든 현금으로 거슬러 주시고, 지권을 안 받는 가게는 거의 없다. 반면 온누리 상품권 어플은 내가 쓰는 카드와 연결해서 쓸 수 있어 편한데 내 카드(어떤 카드든 상관없다)와 연결하여 충전을 하고 그 카드로 카드결제를 하면 충전액에서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근데 시장에서 이걸 해보면 사장님들이 거의 모르신다. 온누리로 결재돼요? 라면서 카드를 내밀면 100이면 100 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으신다. 일단 결제를 해보면 안다. 어떤 집은 그냥 내 카드로 결제가 되고(이건 안된 거다) 어떤 집은 온누리 충전액에서 결제가 된다. 정육점이나 생선가게처럼 좀 비싼 거는 온누리 충전 카드로, 야채가게 같은 곳은 지권으로 쓰고, 우리의 김치가게는 둘 다 안된다. ㅎㅎㅎㅎ 그냥 현금을 쓴다. 가끔 현금이 모자라 카드를 내미는데, 그런 날은 별말씀 안 하셔도 사장님 표정이 살짝 안 좋다. 시장을 갈 때는 온누리 상품권 지권을 챙기고 어플도 충전하여 시장 사장님들의 인심에 10%의 할인율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