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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Jul 31. 2024

끼리끼리, 괸당 문화

제주도에서 사람 찾기

제주에 연고 없이 내려온다고 하면, 다들 제주가 배타적이라 외지 사람들은 안 껴준다. 살기 힘들고 일하기는 더 힘들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흔히 "괸당 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괸당"이란 토박이를 말하는 줄 알았다. 토박이들끼리 챙겨준다는 의미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괸당"이란 "친척"을 의미한다. 즉, 우리 가족을 말하는 것인데 이웃사촌처럼 그 의미가 확대되어 학연, 지연 등 아는 사람, 친한 사람, 끼리끼리 챙겨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등학생의 괸당화

내가 제주로 본격적으로 내려오기 전에 남편은 5년 전에, 둘째 아들은 4년 전에 제주로 내려왔다.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때 서귀포로 전학을 왔는데 어려서 그런지 적응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금세 제주 소년처럼 자연과 아이들과 어우러졌다. 그런 아들에게 재밌는 현상이 있었는데 동네 가게를 지나면 엄마, 여긴 누구네 엄마가 하는 곳이야. 엄마, 여긴 내 친구네 사촌이 하는 집이야. 하면서 온 동네 가게들과 연줄을 대었다. 미용실도 정식 오픈을 하지도 않은 친구네 엄마에게 매번 가서 자르고는 했는데, 싸지도 않거니와 실력이 너무 안 좋아서 자르고 온 머리를 보면 빵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거기를 거의 2년을 다녔다.(그 이후론 도저히 안 되겠는지 바꿨다.) 귤 좀 사야겠다. 고 하면 엄마, 거기 귤집 알지? 거기 내 친구네 엄마가 하는 데니까 꼭 거기로 가!라고 소개를 했다. 아, 이런 게 제주도에 살면 저절로 익히게 되는 괸당문화인가? 생각했지만, 아 그냥 우리 아들의 오지랖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도권에서 살 때는 친구 부모들이 대부분 직장인이었거나 동네 장사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텐데 여긴 작은 지역이라 가까운 곳에서 자영업을 하는 친구네 집들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 

는 말을 정말 실감한 사건!

제주에서 산다고 자기가 예전에 만났던 제주가 고향인 사람을 찾아달라고 하는 건, 내가 용인 사는데 용인이 고향이 사람을 찾아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다르다! 용인 사는 김씨와 제주 사는 김씨를 찾는 일은 정말 다른 차원이었다. 

남편이 제주로 내려오고 1년 정도 되었을 때였을까? 형부가 오래전 알던 사람 중 제주 서쪽 어디 출신이었던 박 아무개를 생각해 냈고, 그가 대학을 어디 나와서 어느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까지 들었다고 기억. 이름도 지역도 정확하지 않고 현재 제주에서 살지도 않는데, 그를 찾을 수 있겠냐. 고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그 당시 마을 이장님들과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던 터라 서쪽 지역 만나는 이장님 몇 분에게 그 정보를 댔더니 몇 명의 이장님이 모여 앉아 어느 대학? 어느 기업? 그 누구누구네 그 집 아들 아닌가? 쩌기 그 마을에 그런 아들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런 식의 추론을 거쳐 정말도 두 다리 정도 건너서 그 당사자를 찾았다!!! 떡하니 이름과 연락처가 남편의 손에 들어왔다. 난 이 사건으로 정말 충격을 받았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그 당시는 남편 능력, 인맥 짱! 인걸로 결론이 났지만 지나고 보니 제주의 괸당문화가 있어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동네에서 어렵지 않게 승진, 축하 현수막을 있는데, 우리가 출세하면 "동네에 현수막 걸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이 나는 실제 일어나는 일인 몰랐다. 마을회관 앞이고 사거리고 "000, 모 000의 장남 000 박사학위 취득" 이런 현수막이 엄청나게 여러 개가 걸린다. 공무원 발령이 있고 나면 마을에 승진 현수막이 걸린다. 부장 승진, 국장 승진. 이런 것이 마을에 알려진다. 

그런 정보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집 자식이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다 아는 게 아닐까. 형부가 찾았던 그 지인도 대기업 입사 후에 동네 현수막이 한번 걸렸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걸 봤던 사람들이 건너 건너 기억을 찾아낸 것은 아닐까. 


무슨 "유"씨우까?

나는 남편과 둘째 아들이 한창 제주에 자리 잡은 후 올해 육지의 직장과 집을 모두 정리하고 제주 서귀포로 완전히 내려왔다. 운 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을 하게 되었다. 출근을 한 이후 여기저기 인사를 하러 다녔는데, 한 곳에서 인사를 나눈 센터의 센터장님이 나에게 "어느 유 씨냐"라고 물었다. 명함을 보니 그 센터장님도 유 씨. 

"아, 저는 기계 유.라고 모르실 거예요." 

보통 버들 유 씨가 대부분이고 그들이 물어보는 경우가 다반사라 그렇다. 그런데 갑자기 센터장님 눈이 똥그랗게 커지더니, 

"기계 유라고? 나도 기계 유에요!!! 몇 대손?"

몇 대손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몇 대 손일 지를 오십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우리의 까마득한 조상들이 줄줄이 생각난다. 난 도대체 몇 대손 일까? 

기계 유 씨가 오래전에 제주로 유배를 왔고 그 유배 온 기계 유 씨 씨족모임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유 씨가 아주 귀한데... 이러면서 갑자기 나를 대하는 태도가 급격히 바뀌셨고, 옆에 계시던 분이 "둘이 괸당이네!! 괸당이야!!" 하신다. 나는 갑자기 제주도에 와서 나의 괸당을 만났다. 그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동일한 질문을 또 받았는데, 역시나 어디 인사를 하러 간 자리에 내 명함을 보더니 첫마디가 "저기 매운탕 하는 그 집 사장이 유 씨인데? 무슨 유 씨?"와, 내 명함을 보고 이런 질문을 연달아 받아보다니! 

그리하여 나는 아빠에게 나의 족보에 대해 묻게 되었다. 아빠는 우리 집 족보를 파일로 보내주셨다. 세상에!! 족보가 있는 집이었어! 나는 기계 유 씨 31대손이라고 알려주셨다. 기계란 포항시 기계면을 말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게 여기는 "괸당문화"라는 명칭이 생길 만큼 일반 시골에 비해 서로서로 연줄을 대서 아는 사람끼리 챙겨주는 문화가 강한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제주 사람들이 이 사람이 누구의 괸당이고 어디 출신인지를 알려고 하는 의도가 어떤 "챙겨주고 싶음"이라고 느낀다. 섬의 척박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챙기고 돌보는 정서가 생겼을 거고 거기에 4.3 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타지 사람에 대한 경계가 생겼을 것이다. 

지역 마을분들과 일해야 하는 나의 업무 상 제주 토박이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경계 어린 시선 속에 나에 대한 관심이 느껴지고 그게 때론 부담스러워 모른 척하고 싶지만 언젠가 나도 이들의 괸당의 어느 지점에 맞닿아 챙겨줌을 받게 될 것 같다. 좋든 싫든지. 그들의 "경계"가 내치기 위함이 아니라, 받아들이기 위한 경계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내가 기계 유 씨 31대손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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