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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Nov 11. 2023

상처를 헤집으면서 생긴 변화

상처에서 흉터가 되기까지


 5년 전 이 맘 때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부모님의 큰 다툼이 있던 날이. 찾아보면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런 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부모님의 큰 다툼이 있던 날, 아버지의 날카로운 말들을 나도 함께 듣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만의 마찰이 아닌 나와 아버지 사이에도 큰 마찰이 생겨 나와 엄마는 쫓기듯이 집을 나와야 했다. 나도 아버지도 각자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발길질을 했던 날이다. 그리고 그 발길질에 큰 충격을 받은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끊을 수 없었다. 그날 있었던 다툼 이후로 엄마가 내게 물었다.      


 엄마가 시골로 가서 살면 넌 어떨 것 같아?’     


질문을 듣고 긴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가지 마라고 답했다. 가족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내 속을 100%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내가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엄마라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있어서 얼음장같이 추운 그 집에서 버틸 수 있었다. 엄마가 있어서 아빠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없으면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붙잡았다. 하지만 엄마는 결국 시골로 내려갔고 나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엄마랑 매일 같이 통화를 했지만 속으로는 엄마를 원망했다. 그 시기에 나는 가족 그 누구한테도 애정이 없었다. 가족이 남보다 못하다고 느꼈던 때가 그 시기일 정도로 말이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엄마와 항상 통화를 했다. 하루는 엄마가 통화를 하면서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지금은 힘든 이 시간을 웃으면서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씁쓸하게 눈물을 참으며 짧게 ‘응’이라고 답했지만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도 이 시기는 기억하기 싫을 것이라고, 웃으면서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는 나오는 눈물을 편히 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나는 당시 매일이 지옥 같았지만 악착같이 버텨야 했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5년이 지났음에도 나는 그 시기 내가 생각했던 것을 누구에게도 자세하게 말한 적이 없다. 조각을 많이 내서 조각 하나는 엄마에게, 조각 하나는 언니에게, 조각 하나는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조각들이 모여지면 당시의 내가 나오겠지만 그럴 일이 없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를 말할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 내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누군가에게 애정을 받고, 좀 더 자세하게 내 상처를 헤집어 보자 찾아왔다.      


 주말 아침, 전날 본가로 퇴근해서 잠을 자고 눈이 일찍 떠졌는데 잠이 오지 않아서 옷을 갈아입고 근처 개천가로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냥 생각나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고, 통화를 하게 되었다. 엄마가 일하러 가기 직전까지 통화를 해서 생각보다 꽤 길게 통화를 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5년 전 무렵의 내가 어땠는지 말하게 되었다.      


힘들고, 무서웠고, 미웠어. 외로웠고, 우울했고, 살기 싫은 날도 있었어.’     


 그 시기의 감정들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밖으로 나왔다. 엄마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하지 못할 것 같았던 많은 이야기를 하고 통화가 끝났다. 어느새 나는 자주 가던 공원에 도착했다. 벤치에 앉아 엄마와 했던 이야기를 되새기고, 5년 전 나를 떠올렸다. 신기했다,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니 아팠던 날들이 아프지 않았다. 엄마한테 하지 못 할 것 같던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한테 한 번 더 속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을 보냈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 (23.11.11)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고맙고, 행복한 날도 있었고 속상하고, 화나는 날도 있었고, 때로는 다시 우울의 바다로 가게 될까 불안했던 날도 있었다.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는 다이내믹한 몇 달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약을 먹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노력 또한 끝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내가 살고 있는 이유를 알아가고 있다. 우울했던 내가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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