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여자 suny에서 작가 다온으로
내가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친구의 영향으로 인터넷 소설을 보게 되었고, 당시에는 좋아하는 가수를 주인공으로 쓰는 팬픽도 유행이었던 지라 그런 것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글 쓰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소설만 쓰던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사춘기로 인해 생각과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면서였기 때문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해하고,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해졌지만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표현을 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안과 화를 글로 적기 시작했다. 그날, 그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적었다. 어느 때는 욕 한 줄로 끝났고, 어느 때는 길게 생각과 감정을 적었다. 그렇게 쓰고 나면 답답했던 속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해결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뒤로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내 안에서 매일 만들어지는 감정들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는 것이 너무 벅찼다. 숨이 트이질 않았다.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해진 나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며 사는 작가의 삶을 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 쉬운 것이 없다지만 특히 글 쓰는 직업은 삶을 이어나가기에는 탁월하지 않다고 잘 알려져 있기에 나는 계속 썼지만 내 첫 번째 직업은 ‘작가’가 아닐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기마다 유행 타는 소셜네트워크에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적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지금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내가 괜찮아졌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인스타그램이 국내에 들어오고 좀 지났을 때 인스타그램으로 활동 SNS를 옮겼는데 그때는 마침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있던 중이었고, 작가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핸드폰 메모장에 생각들을 짧게, 짧게 적어서 올렸다. 물론 그 글들의 기반은 지금까지와 같았다. 내 생각과 마음이었다. 어느 날은 고민하지 않아도 술술 써졌고, 어느 날은 쓰고 싶어도 잘 써지지 않았다. 또 어느 날은 반응이 좋아서 가슴이 두근거렸고, 어느 날은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무언가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가 되면 글로 쓰면서 다듬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에 글을 쓴 것이 7년이 되었다.
스물 중반이 되었을 때 하던 일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내 첫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소설의 모양을 띄고 있지만 나의 이야기가 잔뜩 묻어있는 내용이라 내게는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쓰고, 지우는 것을 셀 수 없이 반복해서 시작한 지 1년이 좀 넘었을 무렵 책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도서관 몇 군데에서만 볼 수 있는 내 첫 책은 조용히 세상에 머물고 있다. 책을 냈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책을 냈으니 나는 ‘작가’일까라는 생각을 꽤 오래 고민했다. 나는 내 직업을 소개할 때 그저 ‘커피 해요’, ‘카페에서 일해요.’라고 말했지, ‘글 써요.’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금전적인 거래가 없으니까.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확실한 조건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나를 작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쓰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내가 글을 그만 쓸 수도 있겠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대략 3년 전쯤부터 그런 순간들이 잊을만하면 찾아왔다. 매일이 똑같다고 느껴지고, 내가 나의 감정에 무뎌지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나는 힘들었지만 무엇도 쓰지 않은 채 몇 날 며칠을 보내고는 했다. 그럴 때면 이런 생활이 익숙해지면 글 쓰는 것, 작가라는 직업을 원하는 마음을 떠나보내게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그것을 느꼈을 때는 무엇이든 억지로 쓰려고 했다. 억지로 만들어 낸 그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오래 갖고 있던 꿈을 잃고 싶지 않았다. 두, 세 번째쯤 느꼈을 때는 마음을 일부러 비웠다. ‘괜찮아, 안 써도 괜찮아.’라면서. 그리고 그다음에 느꼈을 때는 처음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처럼 뭐라도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도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질 때면 돌아올 자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다시 무엇이든 써야 한다고 스스로를 북돋았다.
예전에는 신춘문예에 당선이 돼서 등단을 하거나 책을 내서 유명해져야 ‘작가’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아도 ‘작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는 사실이 나는 그저 감사하다. 그렇게 방법이 생기는 동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더 생겼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살기 위한 글이었다면 지금은 나도 살고, 다른 누군가도 살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자 목표다. 첫 책을 쓸 때 느꼈던 것이 나와 비슷한 환경에 처해져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것을 알면 그것이 꽤 큰 힘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과 마음을 적으면서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그러니 힘을 내요.’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사실 아직까지 어디에도 먼저 작가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가끔 ‘작가님’이라고 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면 표현할 수 없지만 행복하다, 그리고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결심을 이어나갈 힘이 생긴다. 그렇게 글 쓰는 여자 suny는 작가 다온으로 살아갈 힘을 계속 키워나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