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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감정이입 대신 배우자에게 할 수 있는것 생각하기

by 아남 카라

부부는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강하다. 사랑하는 이가 눈에 띄게 무너지면, 우리는 그 무너진 틈을 손끝으로 메우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마음이 곧 갈등의 씨앗이 된다. 상대방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비추는 거울처럼 상대의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상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흐려지고, 나의 불안이 자리잡는다. 마치 오래된 상처를 더듬듯, 나 자신의 안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무의식적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유는 대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욕구가 섞여 있다. 배우자가 힘들어 보이는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 '이러면 어때?' '그렇게 하면 안 돼?'라며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정작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허공에 손을 내뻗게 된다. 해결책은 그저 우리의 불안을 잠시 덮어줄 뿐이다.


아내가 자녀 일이나 회사 문제로 힘들어하며 도움을 요청할 때, 나는 그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 과정에서 나의 긴장은 점점 커지고, 아내가 집에 돌아오기 전부터 이미 지쳐버린 나는 "왜 매번 일을 이렇게 처리해서 문제를 만들지?"라는 짜증 섞인 반응으로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결국, 우리 부부의 대화는 감정적인 충돌로 이어진다.


나는 아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부부로서의 책임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아내의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보다 논리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어, 나는 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에서 "내가 늘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라며 불만을 터뜨렸고, 이에 아내는 "힘든 건 나인데 왜 당신이 짜증을 내고 그래?"라며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아내의 감정을 문제로 인식하며 긴장감을 느꼈고, 아내는 단순히 공감받고 싶었으나 이러한 기대가 어긋나 실망과 분노를 경험했다. 이러한 심리적 차이는 결국 갈등을 증폭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남편은 문제 해결 중심으로 접근하여 실질적 지원을 제공하려 했고, 아내는 공감과 정서적 지지를 기대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차이는 서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갈등으로 이어졌다. 남편의 해결 중심적 태도는 아내에게 비난으로 느껴질 수 있었고, 아내의 공감 요구는 남편에게 감정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반된 심리적 요구는 부부 간 갈등의 핵심이며, 상호 이해와 조율을 통해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부부 사이에서 오해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쪽은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지만, 다른 한쪽은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남편이 회사에서 상사에게 질책을 받고 돌아왔을 때, 아내는 "왜 그런 실수를 했어? 다음엔 더 신경 쓰면 되잖아"라고 말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남편의 마음은 차갑게 닫혀버린다. 그가 원했던 것은 그저 누군가 자신의 기분을 이해해주고, 함께 무거운 마음을 나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조언이나 해결책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다. 공감은 단순히 감정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오늘 정말 힘들었어"라고 말하면, 우리는 “어떤 일이 있었는데? 조금만 얘기해 줄래?”라고 조용히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을 통해 상대의 감정에 다가가고, 상대방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너무 빠르게 반응하고 해결하려 한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바로 검색하거나 대화를 단축하려는 시대다. 하지만 관계에서 속도는 공감의 적이 된다. 모든 감정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진정한 이해는 조급함을 내려놓을 때 찾아온다. 한 부부 상담가가 말했듯, “함께 울어주는 것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 감정은 급히 봉합한다고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마주보고, 여백을 남길 때 자연스럽게 치유된다.


아내의 힘듦에 공감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다 주기적으로 갈등을 반복하던 나는 어느 날 문득, '아내의 힘겨움에 깊이 감정이입하여 나의 인내심을 소진하지 말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하자'는 생각이 영감처럼 떠올랐다. 이 단순한 생각의 전환은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아내가 힘들어할 때, 예전처럼 과도하게 감정이입하여 스스로 인내심을 소진하는 대신, 그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며 편안한 마음으로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또는,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집안을 정돈하거나, 재미있는 영화나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일에 집중했다.


문학과 영화도 이러한 진실을 자주 비춘다.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이혼을 준비하는 부부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려 애쓴다. 그들의 대화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팡질팡하지만, 진짜 문제는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한 데에 있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도 라스콜니코프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려 하지만, 그들의 공감 없는 위로는 그를 더 고립시킨다. 관계란 마음의 온도를 느끼고 함께 걸어가는 일임을 문학은 일깨워준다.


실제로 부부가 이러한 '느림의 공감'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빨리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배우자가 힘든 일을 털어놓을 때, “그건 네가 해결해야 할 문제야”라는 말보다는 “그럴 때 참 힘들지, 내가 곁에 있어줄게”라고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문제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작은 행동도 큰 힘이 된다. 예를 들어, 피곤한 배우자를 위해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거나, 설거지를 대신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말보다 행동이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크다. 때로는 그저 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부부 관계는 결국 균형이다. 너무 깊은 감정이입도, 너무 멀리서만 바라보지도 않아야 한다. 서로의 감정을 마주하되, 그 무게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사랑은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성장해가는 여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감의 속도를 늦추고, 상대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결국 사랑은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함께 길을 잃었다가 다시 찾는 과정이다. 가끔은 이해하지 못할 순간이 와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함께 걷겠다는 약속과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다. 부부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길은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다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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