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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억 Jul 26. 2022

뭐, 어차피 죽을텐데요

#7

배려는 고통을 딛고 나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배려를 요구할 거라면 따르는 상대방의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처음부터 배려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혼자서 해결해내야만 한다.


이 지론이 나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나 여긴다. 그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지론인데, 내 발목을 붙잡고 사람을 혐오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는 책임보다 요령을 요구하는 듯하다. 그래서 혐오스럽다. 이 사회에서 잘 적응해 살아나가는 사람들도 혐오스럽다. 모든 것들이 혐오스럽고 역겹다.


되돌아보면 나조차 지론을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분명 확신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없다. 햇볕 없이는 끝내 고개를 떨구고야 마는 식물처럼 확신이라는 햇볕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 자신도 혐오하고 역겨워졌다. 이것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라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할 터인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정표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지친 마음을 둘 곳도 없다. 글을 쓰는 자그마한 이유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 어딘가에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가까이에는 그럴 사람이 없다. 때때로 연락을 주고받는 몇 명 만이 내 속사정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 외 사람들에게는 말을 건네고 싶지도 않다. 그마저도 아깝다. 말하는 시간도, 털어놓는 수고도 전부 아깝다.


완벽한 고립을 택한다. 택하게 됐다. 누군가는 털어놓으라고 하지만 뭘 보고 믿을 수 있나. 신뢰는 단기간에 쌓아지는 것이 아니다. 수차례 경험을 통해 겪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던 20대 초반부터 다시 쌓아 올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겪어 온 인간군상들은 대부분 신뢰를 저버렸다. 남은 몇 명만이 곁을 지키고 있다.


'사라지니까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결국 지론을 꺾어야만 내 삶이 아름다워진다면, 삶이 더러워지는 쪽을 택하려 한다. 고뇌가 따르겠지만, 지론을 꺾지 않고 산화할 생각이다. 어차피 죽는 게 사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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