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씽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
어릴 때 부터 취미, 특기를 쓰는 란에서 항상 남들보다 오래 머뭇거렸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모두 담기엔 그 하얀 종이 속 빈칸은 너무 작게 느껴졌다.
"못하는 게 뭐야?"
그렇다. 특별히 못하는 게 돋보이지 않았던 나는 무엇이든 대부분 평균은 하는 사람이었다. 조금 노력하면 평균 이상으로 보여지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잘하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것이 많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다양한 수상내역을 휩쓸기도 했고, 문이과 통합형 융합인재라는 말을 들으며 꽤나 만족스러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전공으로 공대 중 한가지 과를 골랐고, 내 자소서를 보면 모두가 '얘는 이 학과를 가려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친듯이 팠다.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악기 도전하기(베이스 기타, 드럼)
- 밴드부 들어가서 공연하고 진행(MC) 맡기
- 국내외로 미친듯이 여행 다니기
- 엑셀로 여행 계획표 짜고 친구들에게 배포하기
- 유튜브 채널 만들고 브이로그 편집해서 올리기
- 해외봉사활동 가서 아이들에게 음악 가르치기
- 로컬지원사업으로 영화 상영회 기획하고 운영하기
- 영화의 매력에 빠져서 전국의 영화제 탐방다니기
- 옛날 노래에 빠져서 LP 수집하기
- 책 읽고 감상을 나누는 게 재밌어서 독서모임 여러개 만들기
어떻게 졸업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전공 이외의 것들에 참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뒤 없이 그냥 하고 마는 성향도 한 몫했다. 누군가는 '정말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나?' 하고 좀 더 따져보고 고민할 시간에 나는 그냥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아니 한달만에 만난 친구도 내가 또 새로운 것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원씽>이라는 책을 읽고 나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 세상의 법칙에 또 한번 놀람과 동시에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른 모든 것들을 쉽게 혹은 필요없게 만들, 단 하나의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 전에 없던 브레이크를 조금씩 밟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일. 하나의 일은 다른 모든 것들을 필요없게 만든다. 나에게도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내가 좋아하고 열심히 쏘다니며 즐긴 것들을 돌아보면 그것들은 모두 '기획'과 '문화예술' 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정돈된다. 나는 이 모든 활동에 주도권을 가지고 무에서부터 쌓아가고, 만들어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것을 잘해서 자주 리더역할을 맡곤 했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공대에서 배우던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는, 답이 정해진 것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정답이 없어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그런 것이다.
언젠가 돈을 잘 버는 사업가가 한 말 중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둘 중에 하나만 하면 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첫번째는 사람들을 편리하게 해주는 일. 해결책을 제시해준다거나 대신 무언가를 해주어 그들의 삶에 편리함과 효율을 주는 일이다.
두번째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 우리가 보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는 일로써 돈을 벌기 위해 공대에 갔지만, 결국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함께 성장하는 것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것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
나처럼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원씽을 찾을 수 없을까봐 좌절하는 이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나도 처음에 나의 원씽이 좋아하는 단 '한 가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를테면 그림그리기 -> 디자이너, 기타 연주 -> 기타리스트 처럼 말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게 너무 많은 사람도 잘 분류하고 정리하다보면 하나의 큰 소주제가 만들어지고, 그 소주제를 묶어보면 대주제가 나온다. 마치 나처럼 이것저것 일 벌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기획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만약 내가 원씽을 따르느라 음악만 했더라면? 혹은 영화만 팠더라면? 책만 읽었더라면?
내가 기획을 좋아하고 문화예술의 전반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쓸데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쓸데없지 않은 자잘한 도전, 시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원씽을 못 찾은 자여, 원씽을 찾지 말고 에브리씽을 해보자. 최대한 뒷일을 생각하지말고 욕심을 부리자. 그러다보면 운명처럼 나의 원씽을 찾게 될 수도, 그 수많은 것들이 엮어져 나만의 원씽이 만들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