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05일 화요일
오늘은 포트폴리오를 고치고 이력서 지원에 필요한 습작품을 부랴부랴 찾았다. 종종 가는 카페에 보니 습작품 제출 전에 저작권 등록을 하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고민하니 시간이 또 훌쩍 가버린다. 결국 고민하다 지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내 글을 훔쳐갈 리가 없다는 깨달음까지 생각이 닿는다. 매번 생각이 너무 많다는 생각(재미있는 일이다. 생각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라니!)을 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나면 또 하루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일단 지금까지의 고민거리가 헛되었다는 건 내 머릿속에서 증명되었으니 내일 아침에 습작과 함께 지원을 해야겠다.
이제와 드는 생각이 있다. 이것저것 재다가 일주일 동안 지원한 곳이 손에 꼽힌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다. 일을 하고 싶은 거야? 일을 하기 싫은 거야? 곰곰이 내면을 살펴보면 당연히 일하기 싫다! 아, 당연한 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하고 싶어서 일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과 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겐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 일은 돈이 될 것 같지 않으니 결국 그건 개인 작업으로 남기고 다른 일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해당 분야를 업 삼아 자신의 작업과 일을 일치시키는 대단한 사람들이 있지만 -어쩌면 일과 작업이 일치하는 사람이 내 생각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굉장히 나약해져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과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니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나약하다는 자각, 그것이 나를 더 나약하게 만든다.
이럴 땐 이 시대의 자기소개서를 읽어야 한다. <부의 추월차선>이나 <저는 이 독서법으로 연봉 3억이 되었습니다> 같은 종류가 딱 좋다. 자기 PR의 시대인 지금, PR은커녕 내가 할 수 있는 일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연약한 상태가 되었을 땐 '근자감'이라도 자신감을 키워주는 종류의 책을 읽어 스스로를 세뇌시켜야 한다. 연약함이 지나쳐 바스러지기 전에 말이다.
부동의 현실과 비대한 망상. 실시간으로 조용한 실패를 맞이하는 사람들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대상에 내가 포함되어 있으니 타인에 대한 비난도 타인에 대한 비판도 아닌 자기반성에 가깝다. 차가운 현실도, 더러운 현실도, 뜨거운 현실도 아닌 부동의 현실인 이유는 내가 지금 마구잡이로 만들어낸 '조용한 실패'란 단어와 맞닿아 있다.
'조용한 실패'는 역설적인 실패로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즉흥적으로 만든 말이다, 하지만 왠지 나는 모르지만 이를 지칭하는 단어가 있을 것 같다- 무언가를 시도해서 실패하는 일반적인 실패와 다르게 시도하지 않아서 자동적으로 나를 지나쳐가는 모든 기회를 지칭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는 상황, 그래서 0인 것 같지만 시간은 흘러가기에 도전할 기회도 성공할 기회도 실패할 기회도 손 밖으로 흘려버리는 절대적인 실패에 관한 것이다.
'기회비용'이라는 단어가 유사한 듯싶지만 기회비용이 선택에 따른 실패라면 이 '조용한 실패'는 주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비용이란 단어를 쓰기엔 아깝다. 조용한 실패의 원인이 바로 이 글의 도입에 이야기한 '부동의 현실과 비대한 망상'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부동의 현실, 그리고 그 보다 높은 이상을 가지기에 비대한 망상. 비대한 자아가 아닌 이유는 부동의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미래'가 아닌 '망상'인 것을 말이다. 조르주 페렉의 도서 <사물들>에 보면 놀랄 만큼 이 설명과 유사한 인물 두 명이 나온다. 현실을 죽게 놔두고 '망상'으로 살아가는 이들 말이다. 심지어 젊다! 조르주 페렉 이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한줄한줄이 지금은 오싹할 지경이다.
오늘 한 일에 대해서 쓸 때는 한 일이 적어서 그런지 재미가 없었는데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잡생각에 대해 풀어놓으니 글 쓰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앞으로도 일기 거리가 없으면 일평생 계속해 온 잡생각이나 풀어야겠다. 오늘의 글쓰기는 정말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