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더위가 지나치면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픈 충동이 든다.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나를 데려다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평상시에 듣던 노래가 아닌, 색다른 노래를 틀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익숙하고 낯익은 시공간에서 벗어나려면 그만한 도약이 필요하니까. 모르는 가수의 음악을 찾아듣거나, 아는 가수의 새로 나온 신곡을 듣는 것도 즐거운 일탈이 될 것이다. 이 여름을 탈출하고 싶다면.
이것은 2023년도 8월 달의 무더위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하기 위한 글이다.
https://youtu.be/MqzX9JAZ08U
나는 다양한 장르를 폭넓게 사랑한다. 잘 모르는 장르도 얕은 지식으로 어떻게든 더듬어가며 틀어진 노래를 즐긴다. 재즈, 펑크, 락, 디스코, 메탈, 지금 세대와 거리가 있는 음악이라고 다르지 않다. 시대라는 건, 유행이라는 건 늘 돌고 도는 법이니까.
최근 자주 듣는 노래는 다음과 같다 :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등 / 코드쿤스트, 이찬혁, 콜드, 소금의 치열(CREERS) / 악뮤(AKMU)의 고래, 낙하 등 / 비비(BIBI)의 조또, 모토스피드 24시, 카지노, FIY WITH ME 등 / 이영지의 그냥, WITCH, NOT SORRY 등 / 저스디스의 딩고 킬링벌스 라이브 영상 등 / 자우림의 이카루스 + 피터의 노래 편곡 버전 등 / 페노메코의 RINDAMAN, 피융, X 등 / 에미넴 등 / 레드벨벳 슬기의 28 Reasons / 샤이니 태민의 이데아(IDEA:理想), Advice, Criminal 등 / (여자)아이들 전곡 및 전소연 솔로 전곡
개중에서 (여자)아이들의 노래를 가장 많이 들은 최근.
이번 포스팅으로 내가 독해한 (여자)아이들의 리더 전소연의 음악적 작품관을 함께 나누어볼까 한다.
대중은 흔히 전소연을 천재라고 부른다. 전소연이 (여자)아이들의 모든 타이틀 곡과 대다수의 수록곡을 작곡했다는 이야기는 구태여 길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전소연의 노래를 무조건 타이틀곡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수준급 작곡가들의 외주곡과 블라인드 경쟁을 통해 선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녀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얼마나 춤을 잘 추고, 얼마나 무대를 멋지게 즐기는지, 그런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나의 전문 영역도 아니다.
그녀의 작곡에는 변화무쌍한 창작물을 내놓는다는 특징이 있다. 댄스, 힙합, EDM, 락까지 폭넓은 장르를 다루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각 곡마다 전해오는 심상이 전부 다르다. 길게 말할 것도 없다. 힙합 그루브의 'Uh-Oh'와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살린 서정적인 곡, '화(火花)'를 교차 비교하면 될 일이다.
전소연은 음악적 다양성을 논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좋은 의미로). 창작물을 보면 알 수 있다. 전소연은 창작자로서 끝없이 변모해왔고, 번뇌해왔으며, 그녀의 커리어는 그녀의 의지를 증명한다.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주제의식 역시 올곧게 이어져 왔다.
한 개인의 음악적 커리어를 들여다보았을 때 장르 풀이 다양하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음악을 하는 창작자가 세상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다양한 수단'으로 전달해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양한 장르를 폭넓게 소화할 수 있어야지만 진정한 아티스트"라는 평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김치찌개의 대가일 수 있다. 김치찌개 장인이 자기 복제라는 비난을 받고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하면 김치찌개 맛있게 먹던 사람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장르가 수단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쇠퇴해가는 장르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목말랐기에 새로이 나타난 창작자에게 더 큰 증명을 원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 장르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라고 창작자를 압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싱잉 랩은 힙합이 아니다" :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필요한 예문이기에 들고 왔다.
이러한 논쟁은 대개, 대중과 멀어져가고 있는 장르를 너무도 오래 사랑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음악사를 보라.
음악은 늘 다른 장르와 교류하고,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전승하고, 때로는 싸우고, 멀어지고, 그러다 다시 화해하며 21세기까지 이어져왔다. 더 아름답기 위해 범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베토벤이 말했듯이.
장르는 더 아름다운 음악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적어도 이 포스팅에서는 그러한 관점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더 아름다운 음악'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리고 심상에 얼마나 치열하게 매진하였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창작자에게 중요한 것은 장르가 아니다. 주제 의식 - 메시지이며, 전하고자 하는 심상이다.
그렇다면 심상이란 무엇인가.
1.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 공감각적 심상. 2. 심리 이전에 경험한 것이 마음속에서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상. 백두산을 머리에 그리는 경우, 지각만큼 생생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형태라든가 산꼭대기에 쌓인 눈 따위가 떠오른다. 이것이 백두산의 심상이다.
이 포스팅에서 심상은 이전에 경험한 감정을 끌어내는 공감각적인 상이라고 정의한다. 청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하는 어떠한 상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에 외치고 싶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이자 시간이며 순간. 때로는 공간이며, 기억 속일 수도 있는.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나의 감정을 거울에 비추어 보여주는 찰나를 심상이라고 정의하였을 때,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떤 노래를 듣는 순간, 이 노래를 듣던 과거의 기억이 단번에 떠오른 경험이 있는가?
전혀 슬프지 않았는데 어떤 노래를 듣자마자 목에 울음이 치민 적은?
이상하게 이 사람의 노래만 들으면 웃음이 나거나 행복해진 기억은?
노래의 심상이 당신을 자극한 것이다. 노래에 담긴 감정이, 공감각적인 상이, 당신의 감정을 북받치게 한 것이다.
전소연은 바로 이 지점에서 천재적이라고 여겨지기 마땅하다. 타이틀곡으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음이 아니라, 다양한 심상을 불어넣었음에 말이다.
전소연이 작곡한 타이틀곡은 겹치는 심상이 거의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특색 있는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퀸카와 한에 어린 심상을 교차 비교하는 작업은 창작자로서 정말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세뇨리따와 오마이갓을 교차 비교하는 것 또한 추천할 만한 일이다.
얼마 전, 멤버 별 파트 분배 문제로 전소연이 퇴물이라고 주장하는 댓글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먹이 금지라는 인터넷의 규율에 따라 드라이빙 스루하듯 지나갔다.
다시 말하지만 이 포스팅에서 다루는 주제는 창작자로서의 전소연이다. 파트 분배는 내가 말을 얹을 영역이 아니며, 작곡의 영역일 것이다.
그렇지만 톰보이, 누드에 이어 퀸카가 타이틀곡으로 뽑힌 것에 대하여 작곡가 전소연에 대하여 약간의 잡음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여기서 나의 의견을 먼저 밝히자면, 나는 퀸카가 타이틀곡이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의 한 수라고 여길 정도다.
레드벨벳이 데뷔 초에 레드 컨셉으로 데뷔하고 다음 곡을 벨벳 컨셉으로 냈듯이, 다양한 컨셉으로 활동할 거면 한두 번 결정적일 때 딴판인 걸 대중에 선보여야 한다. 그래야 다음 분위기 반전이 쉬워진다. 원래 다양한 컨셉을 소화하는 그룹은 그렇게 활동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다양한 컨셉을, 심상을, 메시지를 소화하는 그룹이다.
(개인적으로 톰보이 - 누드 다음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할 것이었다면 조금 더 꺾어도 좋았겠다 싶기는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다. 전소연의 작품관이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톰보이 - 누드의 여파가 컸기 때문에 퀸카가 상대적으로 얄팍하게 느껴진다는 의견을 다소 접했다. 그렇지만 톰보이 - 누드라는 두 가지 곡만 보고 아이들을 평가하기엔 그녀들이 커리어에서 쌓아올린 여러 주제들과 소재들이 참 많다. 만약 전소연이 한계를 맞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화, 한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와 그 수록곡들(문, 달리아 등)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고 오면 좋을 것이다.
애초에 아이들은 나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룹이다. 각각의 개인을 '아이(I)'로 놓고 여기에 한국어로 복수를 의미하는 복수 표시 접미사 '-들'을 붙여 '다섯 명의 개성이 모인 팀'이라는 뜻이 그룹명일 만큼 그들은 처음부터 나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2018년 5월 2일 미니앨범 <I am>으로 데뷔한 이후, 모든 앨범명이 나 자신(I)의 이야기를 의미하고 있다.)
전하고자 하는 심상이 쓰린 사랑이든 시원한 이별이든, 결국에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먼저라는 정체성 확립을 이미 마쳤다는 의미다.
그 상태에서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나"를 보라는 톰보이가 나온 것이고, 네 눈에 덧씌운 환상이 아닌 "나"를 보라는 누드가 나온 것이다. 그 맥락에서 퀸카를 독해해야 전소연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퀸카는 역시나 "나"에 대한 이야기고 전소연이 말하는 "나"는 이 노래를 듣는 '나'를 포함하는 개념이기에 전소연은 퀸카를 작곡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전소연의 노래는 "나"를 표현함으로서 "너"와 교감한다. 솔직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당신 또한 그래도 된다고 응원한다.
이것이 전소연의 작품관이고 창작자적인 정체성이다.
다시 말하지만 장르는, 컨셉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심상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세계 전체를 통째로 관통하는 주제 의식 - 코어는 성장하고 변화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전소연은 그 코어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다양한 심상을 음악으로 녹여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게 무슨 의미냐면 전소연은 이미 창작자로서 자기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주제 의식과 메시지가 담긴 창작물을 아름답게 가다듬어 선물하는 게 창작자의 일이라면 전소연은 자기가 무엇을 선물하고 싶은지 알고 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계속 곡 쓰고 노래하고 살아갈 사람인 거 뻔히 알지만 오늘 하루만 살 것처럼 무대를 즐기는 정열에 자꾸 시선이 잡아끌린다. 온몸으로 외치고 있지 않은가. 나 무대가 정말 좋다고. 전소연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고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자기 자신이 떠올린 심상을 전달할 수 있는지 명석하게 잘 알고 있다. 부침이 있을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다. 잘못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전소연의 창작이 멈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계속 말하고 싶을 것이고, 전하고 싶을 것이고, 그렇게 할 테니까.
창작자가, 주제 의식에 코어를 가지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작품관이 확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재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녀가 훌륭한 창작자라는 것은 확실하다. 제자리에 답보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성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