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따위 알 게 뭐야

by 공 탄

부장 둘, 매니저 셋, 사원 하나(이게 나였다). 정직원은 이렇게 총 여섯 명이었다. 그 외에 사장과 사장 마누라, 주방 아줌마들, 아르바이트생들이 있었다.
관리부장은 사장의 친형으로, 고위 공무원 출신이라는 점을 늘 강조했는데, 정년퇴임한 건지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해서 쫓겨난 건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다. 배가 풍선처럼 빵빵했고, 정수리와 앞머리는 말끔히 벗겨진데 반해 옆머리와 뒷머리는 지나치게 풍성했다. 이런 걸 보면 하느님도 참 웃긴 분이다.
그리고 관리부장은 주변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며 직원들을 못 살게 굴었는데, 특히 차가 더럽다느니 가게 앞이 쓰레기장이라느니, 깔끔한 이미지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심지어 모든 직원들이 검정 바지와 흰 셔츠만 입게 했고, 그것도 칼로 벤 듯 다림질 돼 있어야 그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주방에서는 바퀴벌레 수천 마리가 만찬을 즐기고 서로 붙어먹고 알을 까고 쥐떼와 친분을 쌓았다. 나는 한 번도 그 인간이 바퀴벌레나 쥐 따위를 문제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음식맛의 비결인지도 몰랐다. 맛있는 건 몸에 해로운 법이니까.
영업부장은 어린애처럼 키가 아주 작고 늘 울상인 사내였다. 어디서 뭘 하다 왔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인물 같았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자신을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그 고통 속에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영업부장은 ‘스탠드 바’라는 곳에 미쳐있었는데, 여자 바텐더와 잡담을 나누며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라고 누군가 귀뜸해 줬다. 그는 매달 월급이 입금되기 무섭게 스탠드 바로 달려가 돈을 몽땅 써버렸다. 그렇다 보니 항상 궁색했고, 여기저기 손을 벌려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결혼해서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 양반이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모를 일이다.
하루는 그와 함께 전단지 영업을 나갔다. 그는 애초에 가게 홍보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고, 하루종일 아파트 주민들이 내다 버린 재활용 쓰레기더미를 뒤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때? 꽤 쓸 만하지?”
낡은 핸드백을 들어보이며 영업부장이 말했다.
“그걸로 뭘 하려고요?”
“뭐 하긴. 마누라 갖다 줘야지. 하필 나 같은 새끼를 만나서… 자, 얼마나 멋진 여자였는지 한번 봐봐. 어때?”
그는 지갑 속에서 빛 바랜 사진을 꺼내 보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젊고 우울한 영업부장과 촌스럽고 깡마른 여자가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당최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한 마디라도 더 했다가는 그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몇 달 뒤에도 그는 여전히 스탠드 바에서 월급을 탕진하고, 푼돈을 꾸러 다니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죄책감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매니저 세 명은 중학교 동창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모두 사이 좋게 퇴학을 당하고(오토바이 절도죄였다) 별볼일 없는 직업을 전전하다가 하필이면 출장뷔페 기사로 정착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가출한 여학생과 동거 중이었고, 매달 그 자리를 비슷한 여자로 갈아치웠다.
매니저 삼인방은 자동차 튜닝에 거의 전 재산을 쏟아붓다시피 했다. 300만 원짜리 중고차에 차값보다 비싼 광폭 타이어, 마그네슘 휠, 레이싱 스포일러, 고출력 앰프 등을 장착하는 식이었다. 세 친구는 카드 빚이 쌓이든 말든, 신용불량자가 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추심업체를 피해 이사를 다니고 대포통장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빌어먹을 승용차는 가족 명의였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했고, 인생을 즐기는 쪽은 항상 극단주의자들이었다.
나는 하루에 250킬로미터 정도를 운전해야 했다. 어째서인지 신축 아파트가 전국 각지에 우후죽순 생겨났고, 집들이를 위해 출장뷔페를 찾는 호구들이 줄을 섰다. 업계는 그야말로 호황이었지만, 직원들은 박봉에 시달리며 매일 12시간씩 혹사당하고 있었다. 나는 고속도로에서 깜빡깜빡 조는 일이 잦아졌고, 한 달만에 몸무게가 5킬로그램 가까이 빠졌다.
빠앙! 끼익! 쿵!
결국 나는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의 뒤꽁무니를 들이받았다. 귀를 찢는 듯한 충격음에 깜짝 놀라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몸이 울컥 앞으로 쏠렸다가 다시 운전석 쪽으로 튕겼고,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견인차가 눈앞에 서 있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30초나 지났을까? 저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견인기사가 승용차 유리창을 두드리자, 안경 쓴 늙다리가 목덜미를 붙잡고 나왔다. 용케 어디가 부러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찌그러진 승용차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 뒤 내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견인기사가 물었다.
“예. 뭐.”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고, 차에서 내려 깨진 범퍼를 괜히 발로 툭툭 건드렸다. 두 사람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내 얼굴과 다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정말 괜찮으세요?”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을 듣자마자 무릎 부근에 통증이 느껴졌다. 바짓단이 피에 젖어 축축했고, 흰 양말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던 정신병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실실 웃었다. 이게 웃기냐? 웃겨? 어? 나는 이 미친 세상에 진절머리가 났다.
“뭐? 졸아? 아니, 대체 왜? 운전 하루이틀 해?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거야? 응?”
사장도 나랑 같은 심정인지, 입에 거품을 물고 경련까지 일으켰다. 그 자식은 내 무릎이 박살나든 말든 아무 관심 없었고, 냉동탑차를 폐차해야 한다는 정비사의 말에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다. 한바탕 분노를 쏟아낸 뒤에도 내가 별 대꾸를 하지 않자, 사장은 귀찮다는 듯이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다시 말해, 핸드폰 전원을 꺼버리고 영영 출근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깜깜한 방 안에 처박혀 가축처럼 먹고 자고 했더니, 체력이 돌아왔다. 핸드폰에는 출장뷔페에서 걸려 온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찍혀 있었다. 소송이라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지만, 고민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동안 뇌를 꺼내 냉동실에 얼려놓고, 딸딸이나 치며 나란 놈이 세상에서 잊히길 기다리는 수밖에. (아, 참. 그리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어느 아르바이트생이 식약처에 제보해서 그 출장뷔페 영업소는 영업정지를 당했고, 영업난에 시달리다 결국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이 훌쩍 지나갔고, 빈둥대는 것도 지겨워지자, 나는 대학에 복학하기로 결정했다.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마침 수중에는 두 달치 월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별볼일 없는 삼류 대학이었지만, 어쨌든 졸업장이 있으면 출장뷔페보다는 나은 직장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만, 내가 간과한 사실은 아무리 시시한 대학이라도 수업을 듣고,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봐야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전에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받았기 때문에 여전히 1학년이었다.
캠퍼스에는 생기가 넘쳤고, 나는 유령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다.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한 세기 동안 잠들었다 깨어난 기분이었다. 홀로 밥을 먹고, 강의실을 찾아 헤매고, 들고양이의 관심을 갈구했다. 나는 지독히 외로웠다.
게다가 수업은 지루하고 무가치했다. 나는 강의실 구석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꾸벅꾸벅 졸거나, 공상에 빠져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대체 왜? 어쩌자고 다시 이런 곳으로 돌아왔을까? 멍청한 새끼 같으니! 밥값을 아껴가며 차곡차곡 모은 돈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꼴이었다.
영어 회화 수업 시간이었다. 코쟁이 교수가 학생들에게 둘씩 짝을 지어 시답잖은 역할극 대본을 읽게 했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모두 고개를 휘저으며 짝을 찾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나는 이런 짓이 정말 싫었다. 결국 누군가는 외톨이가 되기 마련이고, 대개 그런 역할은 내게 주어졌으니까. 역시나 다들 짝을 찾았고, 나만 혼자였다. 코쟁이 교수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띤 채 미끄러지듯 내게 다가왔다. 그 양키 놈은 확실히 즐기고 있었다.
등교 길도 만만치 않았다. 버스 30분, 지하철 1시간 30분, 다시 버스 30분. 순전히 대중교통만 2시간 30분이 걸렸다. 염병할 캠퍼스는 또 어떻고. 산 중턱에 학교를 지어 놔서 강의를 듣기 위해 암벽 등반 장비를 챙겨야 할 판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매년 수백 명의 학생들이 실족사하거나 낙석에 맞아 죽었다.
중간고사 기간이 찾아왔지만, 내겐 그 어떤 의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 세상이 망해 버렸으면, 하고 생각했다. 기도(氣道)에 숯불을 놓은 것처럼 숨이 뜨거웠고, 가슴이 답답했다. 될 대로 되라지, 썅. 나는 시험지를 받아든 지 1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강의실을 나왔다. ‘쯧, 하, 이런, 쳇, 뭐야, 병신, 우–’ 같은 말들이 등짝을 찌르더니 리놀륨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행운을 빈다, 이 개새끼들아! 나는 학교를 빠져나와 고개를 푹 숙인 채 무작정 앞을 향해 걸었다. 한 시간, 두 시간, 해 질 녘 까지 계속.
소설을 한번 써 볼까? 책 읽는 건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이잖아. 다른 사람들을 만날 필요도 없고. 그래, 좋았어! 이때만 해도 내가 삼 년 동안 용직을 전전하며 반백수로 지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작가의 이전글친구의 자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