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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빛소리 Aug 07. 2021

카이의 눈물

 눈의 여왕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비어있는 부분이 거슬렸다. 마지막 조각을 남겨두고 카이는 이 성을 떠났다. 그 애가 떠나고 여왕은 세상에 나가지 않았고 마지막 조각은 신하들이 찾고 있었다. 하지만 온 세상을 덮을 수 있는 눈송이도 힘 센 눈보라와 눈폭풍도 마지막 조각을 찾지 못 했다. 눈의 여왕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여왕님,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예전엔 겨울만 되면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더워서 나갈 수가 없답니다. 여왕님의 눈 마차로도 멀리 못 갈 거예요.”

눈송이가 말리자 여왕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못 갈 곳은 없어. 내가 곧 겨울이니까.”

그러자 눈보라와 눈폭풍이 여왕 주위를 휘돌며 소리쳤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지금은 이상기후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곧 빙하기가 올 거래요.”

“맞습니다. 마지막 거울 조각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빙하기가 오면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여왕이 눈썹을 찡그리자 눈송이가 나풀거리며 말했다.

“곧 옵니다. 곧이요. 인간들은 씀씀이를 줄이지 않고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있거든요. 더위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온실가스인지 뭔지를 마구 생산해내고 있다고 합니다.”

여왕은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기온이 오르는데 빙하기가 온다니 또 어디서 인간들 방송을 본 것 같았다.

여왕이 눈 마차를 부르자 모두들 한숨을 쉬며 나갈 채비를 했다.

 여왕은 눈 마차를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게 몰았다. 떠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눈이 사라지고 하얀 모래사막이 펼쳐져 있다. 그사이 사막이 늘어 여왕의 성을 빼고는 얼음을 볼 수 없었다. 조금 더 날아가 검은 먼지가 감싸고 있는 도시가 나오자 여왕은 속도를 늦추고 마차 주위를 얼음으로 감싸 모습을 감추었다. 이곳은 카이가 살던 마을로 지금은 초고층 아파트가 수백 개나 늘어서 있다. 퇴근길 자동차는 매연을 내뿜고 집집마다 고기를 굽는 연기가 가득하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농장에서는 소를 도살하고  바로 옆 구덩이엔 병에 걸린 돼지를 산채로 묻고 있었다. 산에서는 계곡이 무너져내려 사람들이 토사에 휩쓸리고 불어난 강물이 집을 덮치고 있었다. 바닷가에선 사람들이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5분 후에 쓰나미가 덮치는 걸 모른다.

 여왕은 가만히 눈을 들어 방금 떠나온 겨울 땅을 바라보았다. 얼음이 쪼개져 물범과 흰곰이 떨어지는 모습. 어선에 잡힌 고래는 해체되고 물범도 가죽이 벗겨져 바다가 온통 빨갛다. 사람들은 오래 살려고 다른 동물을 죽이지만 지진과 해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가 되었다.

 여왕은 높이 올라갔다. 하늘이 파랗다. 다시 아래를 보자 해변에 늘어진 고래에 물을 뿌리고 바다로 돌려보내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고래는 해변에서 몸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벌목을 막으려 스크럼을 짜고 있는 사람들, 포경선 앞에서 시위하는 배. 엄마 잃은 코끼리를 돌보는 사람들.

 문득 카이가 보인 거 같아 여왕은 아래로 내려갔다. 쓰레기로 가득한 호수에 한 아이가 빠져 있었다.

 젤다는 카이가 물에 빠졌다는 얘기에 호숫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마침내 호수에 닿았을 때 눈의 여왕이 축 늘어진 아이를 꺼내 안으며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젤다는 비명을 질렀다.

 카이는 아빠 카이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였다. 매일 나무를 돌보고 쓰레기를 줍는 착한 아이. 여왕의 품 속에서 아이가 눈을 뜨는 게 보였다. 젤다는 도와달라고 소리쳤지만 사람들은 보고만 있었다.

“카이는 어디 있지?”

“카이는…….”

카이는 고래를 살려야 한다며 사람들과 바다에 나간 뒤 한 달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여왕이 손가락을 움직여 얼음거울을 만들자 그 안에 카이의 모습이 비쳤다. 카이는 바닷가 방호석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젤다도 아는 곳이었다. 뛰어가면 5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카이는 곧 파도에 쓸려 갈거야. 넌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지?”

젤다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 했고 사람들은 눈을 반짝였다.

 여왕이 미소를 띄자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눈 마차가 날아오르고 젤다가 아이를 부르며 뛰어갔지만 여왕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오랫동안 내리지 않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막에도 내리는 눈을 보며 사람들은 여왕의 관대함을 찬양했지만 젤다에게는 아이를 버렸다고 손가락질했다. 이제 눈은 카이의 눈물이라고 불린다. 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카이가 눈물을 흘린다며 곳곳에서 축제를 열어 축하하였다.


그 후의 이야기

 여왕은 카이 가족을 위해 중간지대에 집을 지었다. 중간지대는 눈의 성과 사막 사이에 있는 곳으로 여왕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고나지 못 하는 곳이다. 이곳은 춥지도 덥지도 않았고 수많은 동물이 터를 잡았으며 라플란드 노파와 핀란드 여자도 이웃하고 있었다. 여왕은 어린 카이를 찾으러 온 젤다와 카이를 품어주기로 했다. 오랫동안 혼자였던 여왕은 두 명의 카이를 보며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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