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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빛소리 Aug 13. 2021

티디의 눈


“이모! 이모는 왜 맨날 안대 하고 있어요? 좀 벗으면 안 돼? 애들이 외눈박이라고 놀린단 말예요!”

“카이. 이모는 외눈박이 맞아.”

“거짓말! 저번에 보니까 멀쩡하던데 눈도 예쁘면서 왜 그래요?”

칭얼대는 애를 보며 티디는 한숨을 쉬었다.

“내 맘이야. 너도 니 모자 쓰지 말라고 하면 짜증나잖아. 저리 좀 가라. 그리고 내 눈 보면 안 되니까 몰래 따라다니지 말고. 알았냐?”

젤다는 이모 귀찮게 하지 말라며 카이에게 속삭였다.

“이모가 안대를 왜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아이가 눈을 반짝거렸다.

지금부터 내가 들은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 눈의 여왕이 세상을 다스릴 때, 아빠 카이와 엄마 젤다가 어렸을 때 이야기다.

 카이가 떠난 후 분노한 눈의 여왕은 온세상을 얼려버렸다. 1년내내 겨울이 이어지고 그 다음해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봄이 오지 않자 사람들은 카이와 젤다를 탓했다. 마침내 사람들이 카이를 여왕에게 바치려 하자 젤다는 카이를 데리고 도둑의 딸 티디를 찾아갔다.

 티디는 요즘 좀 곤란했다. 젤다를 좋아하긴 하지만 엄마 눈을 속이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애들이 좀 오래 숨어있을 곳을 찾아야 했다. 티디는 북쪽 끝 핀란드 여자의 오두막으로 애들을 데려갔다. 여왕 코앞이지만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그리고 핀란드 여자는 힘도 세고 젤다를 좋아했다.

 “젤다야. 난 네가 영원히 여기 있어도 괜찮단다. 어때? 그냥 여기서 나랑 사는 거?”

 “죄송해요. 엄마랑 아빠도 보고 싶고. 저도 아주머니가 좋지만…”

 “나 아줌마 아냐~언니라고 부르렴.”

 주제파악 안 되는 것만 빼면 나름대로 괜찮은 여자였다. 그래도 여기서 영원히 살 수는 없으니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약점은 없어?”

 “여왕이 신은 아니야. 그녀의 권력은 사람들의 믿음과 신하들에게서 나오는 거거든. 감히 거스를 생각을 못 하는 사람들. 그리고 강력한 눈보라와 눈폭풍이 그녀를 여왕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이게 진짠데…여왕에게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있어. 욕망의 거울. 아니, 그 악마의 거울 말고. 욕망의 거울이라고. 이 거울은 원하는 자를 가두거나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의 거울이야. 여왕은 누가 그 거울을 훔쳐갈까봐 자기 눈 속에 박아뒀어. 미친. 어이구. 젤다 앞에서 나쁜 말을 하다니. 미안~ 젤다. 방금 한 말은 실수야. 하지만 여왕이 미쳤다는 건 카이도 잘 알지? 한 동안 같이 잘~ 지냈잖아?”

“기억이 안 나요.”

“캬하하하~잘생긴 것들은 어째 다 똑같나 몰라. 기억도 났다 안 났다 그러고 말이지. 크음~음. 젤다야~카이를 욕하는 건 아냐. 카이같이 잘생긴 애들은 뭔 짓을 해도,아니,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우리 젤다같이 착하고 예쁜 애들이 돌봐주고 다 살길을 마련해 주더라고~”

“뭐야. 너 잘생긴 애한테 차인 적 있냐?”

집주인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거 같아서 티디는 말을 돌렸다.

 “욕망 어쩌고 하는 거울 또 없나? 그럼 여왕도 가두고 눈보라랑 눈폭풍도 신하로 만들고 좋을 텐데.”

 ‘여왕은 자기 눈 속에 박아둔 조각말고는 다 태웠지만 말야. 내가 한 조각 챙긴 건 모르더라고.” 핀란드 여자가 으스대며 말했다.

 “그 조각 나 줘.”

 “쉽게 생각하지마. 그 거울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 했어. 나도 무서워서 검은 천으로 싸놓고 숨겨놨단 말야. 원래 여왕에게도 가족이 있었는데 다들 거울 속에 갇혔다는 얘기도 있어. 너도 조심해야 돼. 여왕과 눈이 마주치면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갈 테니까 말야. 그리고 여왕처럼 눈에 거울을 붙일 수 있더라도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이들과 눈도 못 마주칠 건데 그건 정말, 최악이잖아.”

 다음 날 티디는 거울 조각을 찾아내 혼자서 눈의 성으로 갔다.

 티디는 도둑의 딸답게 아무도 모르게 성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여왕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한 가운데 커다란 거울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모든 것을 추하게 비춘다는 악마의 거울 앞에서 티디는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꺼내었다. 그리고 자기를 세상에서 제일 추악한 모습으로 비춰주는 거울을 보면서 작은 거울 조각을 눈에 넣었다.

 ‘욕망의 거울은 그 거울을 본 자가 가장 원하는 모습을 보여서 가둔다지. 그렇다면 모든 것을 추하게 비추는 거울 앞이라면 어떨까?’

 티디의 짐작은 맞았다. 자신의 눈동자 속에서 그 거울 조각이 반짝 빛을 내는 게 보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티디는 거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왕은 천천히 걸어와 거울을 등지고 티디의 앞에 섰다.

 잠시 후 여왕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면서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여왕은 티디의 눈 속에서 어렸을 때 뛰어놀던 집과 언니와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그 동안 잊고 있었지만 다시 보자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자신이 여왕이 되기 위해 거울 속에 가두었던 가족들. 오랫동안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여왕은 티디의 눈동자 속 거울로 들어갔다.

 여왕이 사라지자 눈보라와 눈폭풍은 티디를 섬기게 되었고 오랫동안 오지 않던 봄이 다시 찾아왔다. 사람들은 기뻐했으며 카이와 젤다도 집으로 돌아갔다. 티디는 한 쪽 눈을 가리고 다니게 되었지만 다른 한 쪽 눈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보며 웃을 수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이모 멋진데. 근데 거울 속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여왕은 왜 마지막 순간 악마의 거울을 등지고 있었을까? 뭐,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카이는 관대해지기로 했다.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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