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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경지 Oct 07. 2022

605.2 ; 희망은 어디에 넣어 두었다

전시서문_서울문화재단 시민청 B1 시민청갤러리/2021.9.1. - 15

≪605.2 ; 희망은 어디에 넣어 두었다.≫는 시민기획단 8명이 반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서울’에 대해 끈질기게 고민한 결과를 공유하고자 마련된 전시로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참여하여 총 11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본 전시는 “서울의 어두운 면을 앎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서울에 남아있는가?” 그리고 “서울에서 우리는 무엇을 욕망, 소망, 희망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학업, 일자리, 사업 등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서울에 머물기로 결정했으나,   쉽사리 파악할 수 없는 자본, 사람, 운송 수단들의 홍수를 감당해내다가 휩쓸려갔는지 본래 품고 있던 희망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끝없이 흐르기만 하는 서울 속에서 도시를 닮아버린 것일까? 우리의 개성을 납작하게 누르는 듯한 사회의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에 몰두하는 삶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묻고 싶어졌다.


하루 생활시간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머물기로 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김민경, 석난희, 송석우, 이상원, 이주연 작가의 시선으로 밀도있게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희망을 품고 서울에 남아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시 제목에 사용된 ‘605.2’라는 낯선 숫자는 서울시의 면적(605.2 km²)에서 가져온 것으로, 도시명 ‘서울’을 겹겹이 둘러싼 가벼운 의미들을 걷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냈다. 전시를 통해 ‘605.2’ 어딘가에 존재하는 희망을 바라보면서 버려두거나 간직하거나 아니면 해소됐을 자신만의 희망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김민경의 작업은 일상의 미묘한 감정들을 내레이션으로 펼쳐 보인다. 미시적인 사건들은 사회를 이루는 거대서사로 나아가기에 여러 작은 틈들을 발견하고 틈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노동자의 모습에 시선을 둔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 사람들의 쉼터처럼 여겨지는 청계천이라는 공간은 서울의 시대성을 담는 곳 중 하나이다. 현재 쉼으로서의 장소는 과거 노동의 장소였으며 그 내용은 같은 공간이라고 하기에 매우 이질적이다. <링(2021)은 현재 청계천의 모습과 소리를 사라진 과거의 노동환경과 혼합한 영상작업이다. 목소리는 색을 잃은 이미지와 하나의 결을 이룬다. 거꾸로 가며 지나버렸지만 분명히 있었던 청계천의 하루하루를 소환한다. 현재 청계천 모습 속에 50년 전 노동자의 목소리를 송출한다. 목소리는 스며들었고 지금의 노동 현실 속에 스멀스멀 배어 나와 돌고 돈다.


석난희는 작가 자신의 상상에 기반한 장소들과 인물 등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이를 아크릴과 디지털 매체 등으로 제작해왔다. 초기작에서는 가볍게 흘러가는 일상의 어두운 면을 담아냈고 이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 사건 등을 단순하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한 회화를  선보였다.  작가의 회화 속에서 초현실과 익숙한 일상이 만나 낯섦과 공감을 자아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육각형 캔버스 각각에 여러 상황의 방을 다룬 <방>(2019) 시리즈를 비롯해 한 캔버스 안에서 다양한 장소와 인물을 그려낸 <도피>(2019) 시리즈를 선보인다. 각자가 어디로 향하고자 하는지, 어떤 사정을 가졌는지 상상해 봄으로써 관객이 그림 속 이야기를 유추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길 기대한다.


송석우는 사회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각화하고, 이를  사진매체를 통해 모색해왔다. 작가는 타인과 맺는 관계에 관심을 두고, 주로 몸짓 언어와 퍼포먼스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상호 작용하는 방식, 그리고 거기에 관여하는 사회적인 원리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급변하는 사회 구조 안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청년들, 그중에서도 20대 남성들을 작업의 모델로 선정하여 작가가 사회 속에서 겪었던 곱게 다가오지 못한 시선, 그로 인해 느낀 감정들을 이미지로 복기한 <Wandering, Wondering>(2019-2021) 시리즈 중 일부를 선보인다.  작가는  20대 뿐만 아니라 마주하는 모든 관객이 작품 속 사회로 향하는 과정의 몸짓 언어를 보며 자신의 지난 과거를 회상하거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공감할 수 있기를 제안한다.


이상원은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보이는 일정한 패턴을 연구해왔다. 주로 현대인들의 휴식과 레저 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수집하여 부감 시점이나 파노라마 시점의 회화로 제작해왔다. 일정한 장소에 모여있는 군중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The Crowd> 시리즈는 마치 화면 전체가 동일한 색이나 형태로 무한 반복되는 올오버페인팅(all over painting)처럼 보여진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The Crowd>(2015)는 2014년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뮤직 페스티벌을 그려낸 작업으로  원근법이 무시된 채 반복적인 시각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통하여 올오버적 표현을 극대화해 현대사회의 군중을 표현했다. 풍선을 형상화한 다양한 색과 패턴, 그리고 붓의 터치가 느껴지는 회화적 표현으로 제작한  <The Balloons>(2016)는 새해 첫 날 일출을 보기 위해 산과 바다에 모여서 저마다의 소망을 담아 풍선을 날려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주연은 종이 프린팅을 통해 다양한 판화작품을 페이퍼맨 (Paper man)이라는 주제를 통해 표현해왔다. 페이퍼맨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표현한 평범한 소시민적인 영웅 캐릭터이다. 쉽게 찢어지거나 구겨지기 쉬운 종이의 형태로서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페이퍼맨들이 무리를 지어서 행진하며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기도 하지만, 또 혼자가 아닌 함께 어울려서 달려 나가는 <행진>(2021)과 서로의 화합을 통해서만 서로의 성장을 돕고 공존하며, 인류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는 존재를 의미하는 <화합>(2014)을 선보인다. 우리가 모두 유약하고 소외된 현대인이지만, 개인이 지니고 있는 잠재적 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인간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 시켜 나가는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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