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시작부터 첫 책 출간까지의 여정
언젠가부터 나는 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을 마음 한편에 품게 되었다. 영국에 오고 나서부터는 그 욕망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내가 겪었던 수많은 일들은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울 정도로 한 편의 드라마 같았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내 일기장에만 담겨 있던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기로 결심했다. 그게 내 브런치의 시작이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일주일에 글 한 편씩 쓰는 것을 목표로 삼고 매주 글을 쌓아갔다.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부터 영국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 그리고 런던에서 겪었던 취업 과정과 그 이후의 영국 직장 생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썼다. 주변 지인들은 나를 보고 어떻게 일하면서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냐며 의아해했지만, 나에게 글쓰기는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 즐거운 취미였다.
그렇게 재미있게 글을 쓰다 보니 독자들도 내 글을 재미있게 읽어준 걸까? 소소하게 시작한 내 브런치는 조금씩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구독자가 10명에서, 50명, 100명, 200명 이상으로 늘어갔고, 가끔 다음과 브런치 메인 글로 선정되어 일일 조회수가 몇 천을 넘기도 했다. 내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재미에 중독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통계 페이지를 들락날락했다.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감사하고도 신기했다.
출판사에서 처음 연락이 온 건 작년 4월이었다. 당시 브런치를 시작하고 매주 글을 쓴 지 5개월이 좀 지난 시점이었다.
안녕하세요, 엄지현 작가님. 브런치 매거진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하고 싶은 도서가 있어, 저희 출판사와 출간 계약 및 미팅이 가능하신지 여쭙고자 이렇게 메일로 연락드립니다.
와, 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재미로 쓰고 있는 글을 사람들이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출간 제안이라니. ‘작가님’이라는 타이틀이 아직 어색한 나에게 출간 제안은 브런치 시작 이래 가장 큰 이벤트였다. 처음부터 책으로 만들려고 쓴 글은 아니었지만, 내 이야기가 책이 된다는 상상을 하니 설렘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품게 된 소망이 있었다.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아무 연고 없는 영국에 오기 전, 나의 유일한 정보 창구는 온라인으로 접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보다 한 발 먼저 영국에서 삶을 만든 사람들의 사연을 읽으며 정보를 찾고, 영감을 받고, 용기를 얻었다. 내 글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내 이야기가 책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었다.
출판사와 미팅을 통해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주고받았다. 출판사에서는 영국 회사의 조직문화 체험기와 영국 해외취업 장단점 등의 유용한 정보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고,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었기에 함께 방향성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미팅이 끝나고 ‘출판권 설정 계약서’라는 걸 처음으로 받아봤다. ‘저작자’ 란에 내 이름 석자가 적혀 있는 걸 보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며 출간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그토록 나를 설레게 했던 책을 쓰게 되었는데, 막상 집필을 시작하니 이상한 현상을 경험했다. 즐거운 취미였던 글쓰기가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트북 앞에 오래 앉아 있어도 글이 잘 써지지 않았고, 글을 쓰는 게 전처럼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출판사와 약속한 마감 날짜가 있었기에 전보다 더 열심히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시험공부를 미루는 수험생처럼 자꾸 글쓰기를 미루게 되었다.
“글쓰기도 책 출간도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도대체 왜?”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모순적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동시에 정말 하기 싫은 일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출간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이 책을 정말 잘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스스로 책 집필에 대한 마음의 장벽을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책을 위한 글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의식 중에 내 글쓰기를 억압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쓴 글은 모두 부족해 보였고, 무슨 글을 써도 성에 차지 않아 계속 같은 글을 고치기만을 반복했다.
하지만 과연 ‘완벽한 글’이란 게 있을까?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만 해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다. 달고 짠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고소하고 담백한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도 있다. 글도 그렇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글’은 없다. 내 브런치 독자들은 내 글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이런 사람들을 위해 나만의 스타일을 지키며 계속 글을 써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때부터 ‘완벽한 글’을 써야 한다는 망상은 버리기로 마음먹고 다시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내 마음의 장벽 외에도 이직과 이사 등 개인적인 상황의 변화, 그리고 출판사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예상보다 출간이 많이 미뤄지게 되었다. 하지만 완벽한 출간 시기라는 것도 없다는 걸 알기에 그다지 조급해하진 않았다. 그저 내 책이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완성된다면 그걸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내 첫 책 <개발자인데요, 런던 살아요>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책이 출간되면 엄청나게 감격스러울 줄 알았지만 사실 아직은 실감이 잘 안 난다. ‘저자 엄지현’이라고 적힌 책이 온라인에서, 그리고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게 잘 믿기지가 않는다. 한국에 있었으면 서점에 가서 책의 실물이라도 확인할 텐데 영국에 있어 그러지도 못한다. 아마 다음에 한국에 갈 땐 서점부터 들를 것 같다.
책 한 권 낸다고 인생이 바뀌진 않을 거라는 건 안다. 이 책으로 인해 엄청난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을 거라는 기대도 없다. 그럼 이 고생을 하면서 책을 써서 얻은 게 뭐냐고? 기분이 좋다. 뿌듯하다. ‘완벽한 책’을 써야 한다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완성된 책’을 낸 스스로가 대견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인생에서 더 많은 것들을 하나씩 완성해 나가고 싶다.
물론 책을 쓰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기왕이면 이 책이 더 많은 분들께 닿아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 혼자만 알고 있던 이야기를 일기장에서 브런치로 꺼내고, 브런치에서 또 책으로 담아낸 이유는 그거였으니까요. 독자분들이 제 이야기를 통해 정보를 찾고, 영감을 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독자분들이 해외 취업을 결정하는 데 이 책이 현실적인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