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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수달 Apr 03. 2022

돈만 모으면 파이어족이 될 수 없다

 같은 팀 내 동료로부터 그의 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30대 중반의 그 사람은 대기업을 다니는데,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털을 통해 홈 트레이닝 기기 관련 중개업을 하는 스마트 스토어를 창업했다.(일반 직장인이 부모님이나 가족을 통해 사업자를 내는 방법은 이제 너무 비일비재 해져서 중학생이 두꺼비집 내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만큼 쉬워졌다.) 코로나 이전에는 꺗! 열심히 회사를 다녀야지! 할 만큼 부수적 수입이 그저 그럴듯했으나, 코로나 이후에 홈트레이닝 수요가 하늘을 찔러 도수치료를 받지 않아도 저절로 척추가 올곧게 될 만큼 자신감과 사업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부수입으로만 순수익 월 천만 원 중반대가 나온다고 하니, 그 소리를 듣지 마자 나의 헐거운 KF94 마스크 내로 입이 쩌억 벌어졌다. 그는 분명히 곧 파이어족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파이어족은 조기퇴근보다 조기퇴직이 목표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볼 책을 리스트해서 도서관에 가는 편이지만, 다른 책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파이어족이 온다>는 와? 이런 책이 있어? 하면서 고민도 없이 대여 목록에 추가했다. 책 제목을 보자마자 그 한 다리 건너의 지인이 생각났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은 회사에 갇힌 노예족이지만 이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일 당장 은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레었다.


 글자 그대로 적으면 파이어족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의 약자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 자발적인 조기 은퇴를 추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니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파이어족은 원래의 파이어족과 전혀 다른 의미임을 알 수 있었다. 파이어족의 필수조건은 수십억 벌어 일찍 퇴사한 후 한강변 아파트와 포르쉐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 소비 절감과 절약의 생활화를 통한 안정적인 경제생활이다. 따라서, 파이어족은 당신이 청소업무를 하든 변호사이든 연봉의 금액과는 관계없이 누구든지 자신의 소비패턴을 바꾸어서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나와있다. 흔히 생각하는 파이어족은 '재테크'에만 방점을 찍고 있지만 실제로 파이어족은 '소비절약'에 방점을 두어 60-70%를 저축하는데 집중한다.

그 당시 파이어족이 있었다면 전 국민이 조기 은퇴하였을 것이다

 왜 이런 오해가 생겼나 하면, 한국에서 이런 조기 은퇴와 재테크에 관심이 최근 5년 안에 그 곡선을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일단 이 급격한 관심의 초기 빗장을 비트코인이 풀었음이 분명하고, 잇따른 전례 없는 부동산의 폭등과 주식의 안드로메다행(좋은 의미로 쓰일 수도 있다니)이 수많은 부자를 만들어내며 재테크의 전성기를 안착시켰다. 왜 항상 부자는 한 다리 건너 있는지는 연구대상 감이지만, 어쨌든 이런 시대에 파이어족이라는 적당한 소스를 추가하니 지금의 사회적 현상과 아주 잘 맞물려 '재테크 잘해서 조기 은퇴하여 여유롭게 사는 부자'라는 대명사가 된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최근 아주 짧은 몇 년 동안 이 파이어족을 강렬하게 써왔으나 실제로는 미국에서 30년 전인 1990년대부터 '잘 절약하여 조기에 안정적인 삶을 살자'는 모토로 써왔다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그 괴리가 큰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재테크일 수 있다.

 내가 파이어 관련 내용을 공부하면서 가장 사고의 전환을 크게 느낀 것은 10가지 목록 쓰기 훈련이라는 것이 있다. 이 10가지 목록 쓰기 훈련은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10가지를 적는 것인데 실제로는 놀랍게도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 10가지에 '포르쉐 사기', '한강변 아파트 사기', '명품백 사기' 등은 잘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주말에 아내와 함께 근처 천을 따라서 걷기

맛있는 요리와 함께 저녁 식사하며 TV보기

각자 예쁜 옷 차려입고 근사한 근교 카페 가기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고 저녁에 카드게임을 하기

평일 두 번 테니스를 치는 것


 생각해보면 우리가 실제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돈을 소비하는 것보다 교감이나 감성적인 것에 더 치중되어 있다. 나도 행복을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되묻게 되었다. 이 훈련은 파이어족에게 물질적 소비는 우리의 행복 그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알게 하여 절약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행복한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은퇴시점을 앞당겨 줄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냥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 조기 은퇴를 하고 싶다면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게 낫겠다. 파이어족의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고차원적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무엇이 날 행복하는 것인지를 먼저 알고, 그 외의 것들을 줄여서 나오는 돈으로 점차 은퇴시점을 앞당기려 노력하는 것이다. 마냥 돈만 좇아 재테크를 하는 것은 우리가 많은 돈을 벌기까지의 시간 동안 정말 행복한 것들을 놓치고 살 수 있으며, 파이어족의 본래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 돈만 벌어서는 파이어족이 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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