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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수달 Feb 05. 2023

3년 만에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다

1. 여행

 2020년은 코로나 시작의 첫 해였다. 한평생 경험할까 말까한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그 해에 시작되었는데, 한평생 한 번 하는 결혼도 하필 그 해에 잡아버렸다. 많은 예비 신혼부부들이 예정된 결혼식을 미뤘으나 우리는 3월 폭증세 이후 정말 그나마 수그러들던 6월이라 다행히 연기는 없이 예정대로 진행하였다.


평생에 한번 * 평생에 한번이 만난 2020년도에 결혼식을 한 21만 쌍이 정말 큰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신혼여행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거의 8개월 전에 미리 예약한 하와이 신혼여행을 결혼식 불과 몇 개월을 앞두고 모조리 취소했다. 하늘문이 막히고 모든 여행이 금지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항공기와 숙박을 결제하였으나 눈물을 머금고 취소했다. 하와이행 왕복 비행기는 어찌어찌 대부분을 환불받았으나, 하와이 내 섬 간 이동하는 비행기처럼 끝끝내 환불받지 못하고 모조리 날려버린 것도 있었다.

 대신 우리는 마치 그 옛날 부곡하와이를 가는 느낌으로 국내 제주도여행을 했다. 그래도 갓 결혼한 분위기를 활용하여 협재해수욕장을 와이키키해변이라 생각하고 걸으니 마치 하와이에 온듯한 느낌이 들기는 무슨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풀 죽은 신혼여행객으로 가득 찬 제주도 해변 그 자체였다. 결혼하고 그 좋은 기회에 해외 신혼여행을 갈 수가 없다니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고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 올해 기회가 왔다. 난 3년마다 눈을 한 번씩 깜빡인다.


제주도 신혼여행 때 친구집에서 보드게임을 하는 로맨틱한 광경

 타이틀은 신혼여행이지만 사실상 우리들이 알 수 없는 분노에 갖다 붙인 보복성 테마이고, 3년이 지난 뒤에서 하는 여행은 현실에 눈을 맞출 수밖에 없는 해외여행이었다. 3년 전엔 이미 결혼식 전후의 무지막지한 돈의 이동에 감각을 잃어서 이왕 가는 거 호텔로 다 잡고 제대로 놀다 오자였는데 이제는 모두 에어비앤비로 예약을 했다. 하와이는 기본적으로 물가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데 거기다 무슨 리조트비다 주차비다 각종세금이 내 배에 있는 지방처럼 달라붙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심지어 하와이 호텔은 대부분 오래되어서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퀄리티도 잘 나오지 않는데 말이다. 그뿐이랴 월급은 그대로인데 그동안의 인플레이션도 그대도 반영되었다.


왼쪽은 20년 예약내역, 오른쪽은 23년 요금견적. 똑같은 호텔 5박인데 거의 50% 가까이 폭증했다

 솔직히 비행기값도 많이 올랐다. 3년 전에는 아시아나로 2인 왕복 176만 원에 끊었는데 이번에는 하와이안 항공으로 200만 원이다. 국적기 탑승 시 10-20만 원 더 올려야 하는 걸 감안하면 30% 정도 올랐다고 보면 된다. 달러라도 안 내렸다면 그냥 아예 갈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이라는 걸 그대로 확인하게 된 순간이다. 렌터카도 그땐 당연히 빌리는 거였는데 지금은 빌리지 않거나 대형 렌터카 업체가 아닌 1:1 개인렌털 어플을 통해서 최대한 저렴하게 가려고 생각 중이다.



 돈을 모아야 하는 시기라 솔직히 꼭 가야 하나 라는 생각도 했었다. 신혼여행 타이틀을 어거지로 붙인다 하더라도 대략 7백만 원 정도의 경비가 일시적으로 소모되는 것은 대부분의 직장인이라면 부담되는 금액이다. 그러나 너무 욜로적인 소모만 아니라면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여러 가지 인생의 경험들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인 것 같다. 또한 아직 애기는 없지만 2세가 생긴다면 우리가 언제 해외여행을 이렇게 자유롭게 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봤을 때 지금 돈을 좀 쓰는 것은 마냥 소모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4달 뒤에 호텔은 아니지만 어느 작은 하와이의 방 안에서 슈퍼마켓에 사 온 음식으로 간단한 요리를 해 먹을 때 웃게 되는 내 와이프의 모습이 그려진다. 따뜻한 환대보다 걱정으로 더 가득 찼던 코로나 시절에 결혼한 신혼부부의 셀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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