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추석연휴 고향을 찾지 않은 시간이란

아보스_(마음)오늘에 충실하기

by 봄이

이번 추석연휴는 몇 년 전부터 화두가 되었었다. 열흘의 기나긴 추석연휴가 있다, 기다려진다, 무엇을 할까.

나는 맏며느리고,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 고향행은 건너뛰기로 하고 자유(?)를 누리기로 했다.




“명절의 자유는, 자유일까”


색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명절은 부모님, 조상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은 여전히 우리 고유의 문화다. ’ 어쩔 수 없는 ‘ 상황을 핑계 삼아 우리 가족 셋이 고요하고 정갈하게 보내려 했지만, 그 자유는 맏며느리자 일명 K-장녀인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끈 하나가 나를 꼭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와 남편이 좋아하는 잡채와 음식 몇 가지를 하고, 고향에 연락을 드렸지만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가슴에 ‘딱’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속이 좀 무겁고 내일도 영향을 받을 것 같아 내가 한 선택은 우중런. 뛰는 습관을 지니게 된 지 일 년, 이럴 땐 뛰는 게 최고라는 걸 일상에서 느끼고 있다.




“진짜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


뛰다가 약간의 비를 맞은 적은 있었지만,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뚫고 나간 건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누군가 뛰고 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한 지 5분 정도가 지났을까.

하늘에서 나에게 지금을 느껴라-라는 듯한 빗줄기가 조명과 얽혀 빛나 보였고, 차갑기보다 시원했고, 무엇보다 내 기분을 말끔하게 씻어줬다.

물 웅덩이에 발을 툭툭 넣으며, 아이가 첨벙첨벙하는 것처럼의 시원함을 느끼며 미소가 지어졌다. 해방감이랄까. 나를 꼭 잡고 있던 것들에 대한 해방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 나를 옥죄고 있던 나를 놔주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계획보다 2km를 더 뛰었고 난 오롯이 내 발에 차이는 빗물과 내 모자에 떨어지는 빗줄기에 집중했다.



“죽은 사람들“


얼마 전 문학포럼 사회자로 무대에 서고 한 달에 한 번은 문학을 접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추석 명절 시작되고 읽었던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그중에서 죽은 사람들이 문득 생각났다.


그 책에 나온 책의 한 구절.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들은 모두 망령이 되어가고 있었다. 늙어서 비참하게 시들어 사라지는 것보다 차라리 열정이 가득한 영광의 순간에 다른 세상으로 용감히 뛰어드는 편이 나을 것이다.
눈은 삐뚤어진 십자가들과 묘석들, 작은 문의 창살들, 앙상한 가시나무들 위에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눈이 부드럽게 살포시 전 우주에, 살포시 부드럽게, 마지막 종말을 향해 하강하듯이, 모든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위에 내려앉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도 천천히 희미해져 갔다.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삶을 시들게 보낼 수 없지. 어쩔 수 없음을 자책하는 그 감정은 뛰는 이 길가에 사뿐히 내려두고, 지금 이 순간을 불꽃처럼 살아가자.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는 이유가 있고 이 길을 살아가는 내 마음과 내 모습처럼 나는 그 어떠한 형태로 눈처럼 살포시 내려앉겠지.

우리 조상들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열정을 다해 살아내고 그 속에서 조용히 희미해졌던 것처럼. 그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눈처럼 살포시 내려앉을 그날까지 나도 내게 주어진 것들에, ‘ 지금 이 순간 ‘에 온 마음을 다해야지.

내일은 우리 딸과 남편을 위한,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절음식 육전을 맛있게 만들어 봐야겠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온전히 만끽하며 행복하게, 이 순간을 느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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