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이 있습니다. 정말 창의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능력을 좋은 곳에 쓰는 사람이 있고, 안 좋은 곳에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 듣기만 해도 자존감 떨어지는 말들이 있습니다. "너 이 ○● 자꾸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언젠가 너 큰 사고 칠 줄 알았어.", "도대체 너는 뭐가 되려고 그러니?", "네가 뭔데?" 쓰라고 하면 더 쓸 수 있지만, 쓰면서 제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 더 쓰진 않겠습니다.
평소 잘하던 사람이 한 번 실수하면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실수하면 위와 같은 말들이 날아옵니다. 반복해서 실수하면 그 사람이 잘못된 거 아니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첫 실수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처음 들은 후배는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몸이 굳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실수가 더 나올 수밖에 없겠죠. 이때 선배들은 앞서 언급한 능력을 사용하십니다. 같은 말이지만 다르게 표현해서 말을 전달합니다. 후배의 몸은 더 굳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도 지난날의 기억 때문에 '실수하지 말아야지'라는 문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집중이 안됩니다. 그렇게 실수는 계속 반복됩니다.
"요즘 애들은 너무 물러서 강하게 키워야 해!"라는 선배님들의 말씀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반대합니다. 후배들이 강하게 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욕을 하는 것이라면 다시 한번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인간은 인정욕구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인정을 받고 싶지, "절대 나를 인정해주지 마십시오!"라고 외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욕을 먹으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반발심이 먼저 들게 됩니다.
인정받는 느낌을 느낄 수 없다면 후배들은 포기합니다. 후배들뿐만이 아닐 겁니다. 같은 상황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할 겁니다. 특히 요즘은 옛날 선배님들에 비해 버티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일을 구하면 되거든요.
얼마 전 SNL에 나왔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요즘 신입사원이 금방 그만두는 데 왜 그런 걸까?'를 풍자한 내용이었습니다. A회사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너무 금방 그만둬서 대리가 막내 생활을 오래 하고 있었습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자 대리는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그런데 과장님이 신입사원에게 무언가를 시키고 신입사원이 못마땅해하는 눈치를 보이자 대리는 더 이상 못 참고 과장에게 "저 나가면 과장님이 막내니까 제발 신입사원 잘해주시라고요!!"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과장은 깜짝 놀라 잘해주려고 신입사원에게 탕수육을 사주면서 손수 소스까지 부어줍니다. 그러자 신입사원은 "어, 저 찍먹인데... 그만둘게요."라고 얘기합니다. 대리는 눈을 찌푸리며 과장에게 "저도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과장도 "사장님, 저도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하며 끝이 났던 웃픈 이야기였습니다.
혹시 이걸 보고 "탕수육 소스 가지고 뭐 저러냐?"부터 생각이 나셨다면 아직 후배들의 인정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신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탕수육 소스는 웃음의 소재일 뿐입니다. 해당 상황은 선후배 간 소통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후배는 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 다양한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통 없이 오로지 선배의 취향만 맞춰야 하는 삶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상호 인정하고 받는 관계에서 이것은 불편한 상황입니다.
역대급 취직난에도, 힘들게 시험 보고 들어온 공무원 집단도, 겨우 합격한 대기업도 별 미련 없이 떠나는 요즘 후배들은 젊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어디든 취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회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큽니다.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라는 말이 아니며, 선배님들은 기회가 없지 않냐는 말이 아닙니다. 한 직장에 오래 있는 것이 당연했던 예전과 비교해 현재는 입사 후 이직을 준비하는 전혀 다른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로 말씀드린 겁니다.
기회가 있는 사람들을 인정받지 못하면 바로 다음 기회를 사용하기 위해 이동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사위가 4 이상만 뜨면 되는데 기회가 여러 번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주사위를 굴려서 3이 떴다고 '아쉽지만 여기서 멈춰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정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줘야 할까요? 인정하지 않은 사람임에도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특징은 실수에는 온갖 좋지 않은 말을 하면서 칭찬에는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해 주고, 잘못한 것은 바로잡아주면 되는 이 간단한 한 문장이 현실화되기가 '다이어트'라는 한 단어를 현실화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말로 하면 서로 쑥스러우니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럼 실수했을 때도 잘하라는 응원의 눈빛만 보내는 건 어떠신가요? 쉽지 않습니다.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시켜 주는 것을 눈빛으로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입이 없어도 되는 방향으로 진화됐을 겁니다. 앞서 말한 신뢰의 눈빛이라는 것은 실례의 눈빛입니다. 상대방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할 말만 하는 선배를 후배들은 꼰대라고 합니다. 후배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