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술 한잔이 생각나는 시각, 심야술집 에세이로 찾아갑니다
ⓒ원부연
2014년 6월, 이노션이라는 광고회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달인 2014년 7월, 내 이름을 모티브로 한 '원부술집'을 상암동에 오픈했다.
이후 '모어댄위스키', '하루키술집', '신촌극장', '신촌살롱'등 다양한 브랜드의 공간을 만들었다.
(아쉽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여름, '신촌극장'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폐업했다.)
심야술집 에세이는 그간 느꼈던 다양한 술집 등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모교의 사회과학대학 건물을 연희관이라 불렀다. 담쟁이 덩굴로 덮인 긴 역사와 전통이 있는 건물은 사시사철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이뤄진 연희관은 수업할 수 있는 공간, 교수실, 세미나실, 컴퓨터실 외에도 과방, 학회방, 동아리방 등이 모여 있었다.
*철마다 새로운 얼굴을 하는 연희관의 모습.
사실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가도록 나는 동아리나 학회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1학년 때 만난 친구들과 충분히 즐거웠고, 중고등학교 때 군기 빡센 방송반 생활을 오래 해서 동아리에 대한 흥미도 적은 상태였다. 연극 동아리방에 발을 들이게 된 건 한 학번 후배 혜진 때문이었는데, 함께 인도여행을 하던 중 막바지에 이르러 꺼낸 한마디가 시작이 됐다.
“같이 연극 한번 해보지 않을래?”
동아리 활동도 귀찮아서 안하고 있는 마당에 웬 연기?
얼토당토 않다 생각해 처음엔 대충 얼버무리며 답을 피했다. 그러다 여행 막판 고야 - 뭄바이로 오던 밤버스에서 긴 수다를 나누다 뭔가에 홀린 듯 해보겠다고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도대체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먼저 연극 동아리방에 드나들던 혜진을 따라 나도 극회에 들어갔다.
*진한 담배 냄새에 강렬한 '경로석' 글씨가 인상적이었던 동아리방. 대본 연습 중이던 99학번 강일 선배.
연희관 지하, 016호에 있는 그 곳은 늘 견디기 힘든 곳이었다. 당시에는 실내 흡연이 허용되었지만 밖에서 피는 게 에티켓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던 풍경. 추워서, 더워서, 나가기 싫어하던 골초 동아리 사람들에게 연희관 016호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오히려 비흡연자가 참아야 했다.
그렇게 혜진과 함께한 첫 연극은 ‘클루:단서는 항상 거기 있었다.’라는 추리물이었다. 할머니가 아끼던 목걸이가 사라지자 탐정에게 수사를 의뢰했고, 소년, 소녀, 광대 등이 용의자로 의심을 받으며 갈등이 정점에 이르렀다가 종국에는 훈훈하게 끝난다는 내용이었다. 난 탐정의 조수였고 (마치 왓슨 같은) 혜진은 소녀 역할을 맡았다.
동아리 안에서 비흡연자에 세상 평범하다 생각했던 우리 둘은 어느 순간 또라이가 되어있었다. 연기를 했던 캐릭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묘하게 나도 그렇고 혜진도 그렇고 토굴에 잘 적응했다. 끼라고는 전혀 없는데도 음악이 나오면 빼지 않고 펭수처럼 열정적으로 춤을 췄다. 나이가 많다고 딱히 선배 대접을 하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말도 다 했다.
*청소를 해도 해도 해도 해도 냄새가 났던 이곳, 연희관 016호.
술을 잘 못 마시는 혜진과 달리 나는 술자리에서 꽤 여러 재능이 있었다. 단연코 취직이나 학점에 도움 되는 재능은 아니었다. 잘 한다고 누가 칭찬해주는 끼도 아니었고. 그냥 내가 좋아서, 신나서 이런 저런 제안들과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그게 나름 동아리 술 문화를 바꾸는데 도움이 됐다.
당시 극회의 술 문화는 각자가 알아서 마시고, 연극이나 정치 및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 나누던, 그당시 나에게는 다소 지루한 것들이었다. 술 마시며 하는 이야기도 매일 비슷했다. 그러다가 술이 취하면 서운하네, 내가 맞고 너는 틀리네, 하며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아니, 술 좀 즐겁게 마시면 안 되나, 왜 이리 심각한 것인가. 한숨 쉬곤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걸 궁리하는 게 재밌었다. 아마 술집을 하게 될 운명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팔도소주 궐기대회’ 같은 이벤트를 열고, 맨날 마시던 술집에서 새로운 공간으로의 시도를 제안했다. 오는 사람들의 성향에 맞춰 자리를 배정하기도 했고, 새로운 게임을 개발해 함께 테스트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하나의 분위기로 통일되었던 동아리 사람들이 쪼개지게 되었다. 여전히 내 술 마시며 연극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는 사람과, 게임하고 신나게 마시는 게 좋다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자연스레 모임은 두 개가 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각자 스타일에 따라 술자리가 갈리는 건 당연한 것일 텐데, 당시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동아리에 들기 전까진 몰랐다. 내가 또라이인줄.
조금 더 오바스럽게, 때론 오지랖 대마왕처럼, 분위기를 주도했던것 같다. 그리고 이후에도 나는 그런 시도들을 술자리 외에도 적극적으로 했다. 동아리방에서 '금연화 선언!', 담배를 못 피우게 해 흡연자들의 원성을 1년 내내 사기도 했다. 연출보다 기획자가 더 중요하다며 연출중심주의 사고방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참 열정 만수르 시기였다.(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그러려니... 내버려둔다.)
돌이켜보면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과 사고 방식들이 연극이라는 동아리를 만나 수면 위로 올라왔던 게 아닐까 싶다. 기획 하는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조직의 무언가를 계속 바꿔보겠다는 행동.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기존의 것들은 달라져야 한다는 의지. 연기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 정체성을 스스로 찾아갔던 게 아닐까 싶다.
흡연자 소굴로 표현했지만 사실 이 연극 동아리는 나영석 피디, 강봉규 피디, 김지현 피디, 전진모 연출, 염문경 펭수 메인 작가겸 배우 등 유명한 사람들을 배출한 동아리기도 하다. 연극반에는 유독 특출난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내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의견을 언제든 낼 수 있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 과정에서 기획자의 재능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동아리방 금연화와 무협극 배우로 연기한 것. 두 가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회과학대학 극회보다 <연희관 016호>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우리는 그 동아리를 '토굴'이라 불렀다.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아래 공간을 막아 만든, 그 기이한 모양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아리 이름은 토굴, 동아리방은 자연스레 토굴방이 되었다. 정식 이름 사회과학대학 극회보다 더 편안한 단어가 됐다.
연희관 지하 담배연기 자욱했던 공간에서 그렇게 사람들의 다양한 개성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개성들은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창업을 경험하면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토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가끔 생각보기도 한다. (살짝 아찔하다.) 그래서 그 애정함은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고 크다.
*토굴방. 계단 아래 공간을 활용해 만들어진 곳이다. 진짜 토굴같다. (여름엔 시원, 겨울엔 따뜻.)
ⓒ원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