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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Jan 13. 2022

누추한 곳, 귀한 해달

다음에는 싸인 한 장만 부탁드려요.

매년 여름방학만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일하던 횟집이 위치한 작은 포구가 있는 해안마을은 모두 주황 지붕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기묘하게 여느 때와 같이 아침 10시에 출근을 하니 기와, 플라스틱 기와, 석고 기와 모두 주황색 기와가 되어 있었다. 마을의 개성은 생겼지만 집마다 각기 다른 기와의 개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 말고는 처음 왔을 때와 똑같다. 물 빠진 포구에서 기울어진 어선 밑에 자리 잡고 따개비를 떼는 할아버지, 겨울 조업만 있어 여름에는 대문 앞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보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분의 집 대문 앞에는 의자가 있다.) 이른 아침 올라온 배에서 내려 해풍에 말린 오징어를 파는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일하는 횟집 모두 그대로인 것이다.


친구와 나는 출근을 하자마자 어젯밤에 퇴근하며 던져둔 통발을 꺼내어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한다. 가끔 노래미나 문어가 올라와 사장님께 가져가면 몇 시간 후 점심이 되어있다. 그리고 일을 하고 퇴근하며 건졌던 통발은 다시 던져두고 간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친환경 가챠 같은 것이다. 가끔 앞에 나가보는 바다도 마냥 심심한 풍경은 아니다. 근처 양식장에서 폐사해버린 도미가 떠내려오거나,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노무라입깃 해파리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다시 횟집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 사모님은 여쭤보신다.

“뭐시 있디?”

“큰 해파리가 있더라고요.”

“뭐? 진즉 말해야지!”

라고 하시며 바다로 우다다 뛰어가셔서 놀라 따라가면 해파리가 아니라며 약간 실망하고 다시 들어가신다. 아마도 냉채감은 아닌 모양이다. 설사 냉채감이어서 그 해파리가 점심으로 올라온다면 내 몸은 그때부터 미동도 없이 싸늘해질 것이다.


“엇 해달이다!”

집과 의자만 번갈아 돌아다니셔서 한 번에 다섯 발자국 이상 걸어 다니는 걸 못 봤던 옆집 아저씨는 단숨에 포구의 어선 갑판에 올라간다. 2층에서 자던 친구와 1층에서 마늘을 썰던 나도 단숨에 포구로 가본다.

“보노보노라니!”

나와 친구는 이번 여름 들어서 그렇게 설렌 적이 없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간 탓에 바다에 재빠르게 들어가는 회색에 나름 오동통한 꼬리만 보았다. 보노보노는 생각보다 겁이 많았다. 나와 친구는 이번 여름 들어서 그렇게 실망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싸인 한장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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