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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May 09. 2022

슬립온과 장우산

뜨거운 커피를 마시던 그에게 비를 좋아하는지 물어보자 얼굴을 찡그리고는 서둘러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고개를 젓는 것으로 부정 의사를 확인했지만 그는 커피를 삼키고 대답을 하였다.


“끔찍해요…”


싫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끔찍하다고 하니 이유가 궁금했다. 이유를 물어보려 하기 전에 그가 말을 이었다.


“지금 제 신발 보이시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의자보다 낮은 테이블을 두고 다리를 꼬아도 신발보다 바지에 눈길이 먼저 갈 만큼 의식하기 어려운 흔한 끈이 없는 슬립온 신발이다.


“저는 슬립온 신발만 신어요. 슬립온은 밑창 빼고 전부 면 소재라서 물이 다 들어가거든요”


“왜 슬립온만 신으세요?


“없어요. 이유 같은 거”


이유는 없다고 하니 맥이 빠졌다. 거창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유가 없다는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는 다시 커피잔을 들었고, 나는 비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염주를 찬 민머리 고깃집 사장님을 본 것 마냥(실제로 고깃집에서 그런 사장님이 테이블로 다가와 친절히 고기를 잘라 주신 적이 있다. 참으로 묘했다.) 묘한 눈빛을 보냈다. 그 후 커피를 삼키고 왜인지 물었다.


“우산 쓰는 것을 좋아해요. 그중에도 장우산. 단우산은 뭔가 마음에 안 들고 장우산을 쓰고 싶은데 비 안 오는 날에 우산 쓰고 있으면 이상하잖아요”


“참 좋으시겠어요”


그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약간 비꼬듯이 말하고 다시 커피잔을 들었다. 커피가 식어버려 안 뜨거운지 크게 들이켰다. 그가 커피잔을 내려놓자 유리창에 서리 끼듯 퉈 퉈 물방울이 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압이 낮아지며 비가 제법 내렸다. 난 창 밖의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지만 그는 비를 싫어하니 표정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거리의 가로등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그는 의외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김광석의 “거리에서”였다. 김광석을 좋아하는지 아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았는지 모르지만 맞는 구석을 발견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참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신발은 유감이지만 댁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우산 가져왔어요.”


우린 의자에서 일어나 입구에 둔 우산을 쓰고 카페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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