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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Jun 27. 2022

빠른 지각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그는 또 지각을 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뭐라 꾸짖으려고 했지만 처음 시작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관두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회사를 다닐 때부터 여러 기성세대 상사들에게 직장인의 기본은 근태라고 배운 나에게 지각이란 일종의 강박이 되었다. 아니, 그것은 누군가에게 같잖은 훈계를 할 때 하는 핑계이고, 회사를 다니기 한참 전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나는 항상 등교를   했다. 가족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에 조용히 책가방을 싸서 등교를 하면 낮은 안개와 아직 마르지 않은 이슬이 가득하다. 도로에는 가끔 새벽 출근을 하는 자동차와 쓰레기 수거차만 지나다닌다. 학교에 도착하면 아무도 없다. 수위 아저씨도 출근 전이라 학교 문도 열려 있지 않다. 도착  얼마 동안 혼자 시소에 앉아 있으면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친형이 와서 나를 데리고 집에 돌아간다. 그리고 형은 집에 와서 등교 준비를 하고 나와 같이 다시 학교에 간다. 그렇게 한번 다닐 길을   다녀서 그런지 당시의 형은 많이 먹지만 살이 찌지 않았다. 미안한 일이지만 나도 어쩔  없었다.


이유인 즉, 내가 선천적으로 시간 개념이 정말 없었기에 정해진 시간보다 과하게 빨리 가거나 늦게 가거나 둘 중에 하나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할 정도로 중간이 없다.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지독하게 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극단적인 두 개의 상황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그냥 그렇게 고를 수 있다. 성인이 된 나는 지각은 할 수 없으니 남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만 괜찮으면 30~40분 정도 빨리 출근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을 회사에 다녔고, 어느 날 회식에서 후배가 작정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사실 선배가 너무 일찍 출근해서 좀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얘는 대체 뭐라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반감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본인은 선배보다 먼저 와서 성실히 업무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겠지만 그다지 성실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보다 족히 30분은 빨리 와서 앉아있는 선배를 보고 있자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의미 없이 빨리 출근하는 나와 의미 없이 먼저 퇴근하지 않는 부장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반성은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닭병에 걸린 듯 고개만 꾸벅꾸벅 숙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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