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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Jul 17. 2022

우는 저기, 저 남자

5시부터 해가 저버리는 추운 겨울날, 나는 터미널 방향의 어둡고 넓은 도로 옆 버건디와 카키색의 보도블록의 인도를 두고 마리아 타케우치의 시티팝이 제법 잘 어울릴 것만 같은 퇴폐적인 모텔 네온사인 간판이 잔뜩 즐비한 골목을 지난다. 아직 어린 나는 어지러운 골목이 익숙지 않아 유난히 고개를 숙이며 걷고 있다.


그러다 오른쪽 귀에 들리는 우울한 소음에 으스스함보다는 상당히 질기게 당기는 호기심으로 고개를 든다. 그는 젊다. 많이 봐야 20대 후반이 아닐까. 허나 난 남자보다는 그의 촌스러운 등산복에, 촌스러운 등산복보다는 까칠 거리는 모텔 전용 주차장의 벽과 회색 승합차 사이에서 대걸레 봉을 옆에 끼고 오열하듯 우는 남자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남자 본인은 아주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 생겨 울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의 멈춘 발걸음과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눈은 엄청난 실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가면 더 비참한 상황인 것 같다. 지금 마음이 찢어발기듯 아프니 알아봐 주라는 의도도 조금씩 들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안타깝지만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자에게 다가가서 다독여 주기에는 실컷 울어야지 풀릴 남자의 슬픔을 도저히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남자는 한참 울다가 벽을 잡고 있던 손으로 옆에 있는 대걸레 봉을 힘겹게 잡아 지팡이 대용으로 쓰듯 한다. 하지만 이내 힘이 풀리는지 대충 바른 흰색 콘크리트의 주차 표시선을 밟으며 풀썩 주저앉는다. 이제 남자를 혼자 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모텔 골목을 빠져나온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성년이 지난 남자가 그렇게까지 우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남자가 왜 그리도 슬피 울었는지 확실한 답을 내기 어렵다. 키보드를 눌러야 할 타이밍을 놓친 옷 입히기 플래시 룰렛 게임처럼 장소, 복장, 시간 전부 어느 하나 맞는 구석이 없어 어느 하나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내가 떠난 후로도 얼마나 더 울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울다 어느 순간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리고 나와 똑같이 집에 갔을 수도 있고, 그 자리에서 한동안 쉬지 않고 울어 탈수가 왔을 수도 있고, 우연히 길을 지나가던 오지랖 넓은 프리허거에게 꼭 안겨서 안정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더 이상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울지 말고 차라리 옆 편의점 노상 의자에 앉아 술이라도 까면서 울었으면 한다. 바닥보다는 자연스럽고 보기 좋게 고독해 보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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