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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Jul 28. 2022

모르는 편이 더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서 집 앞의 왠지 낯익은 카페에 갔다. 주변은 어릴 적부터 노닐던 기억에 익숙하지만, 카페만은 눈에 뒤덮인 설산 사이 빛이 들어오지 않는 크레바스을 쳐다보는 것과 같이 그 자리만 푹 꺼진 느낌이 들었다. 유난히 하얀 벽에 작지만 분위기 있는 한글 나무 간판이 멋진 곳이었다. 깨끗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밖이 잘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레몬티를 주문했다. 조금 시간이 흘러 레몬티를 가지고 오는 직원에게 카페를 열기 전에는 무슨 가게가 있었는지 물었다. 직원은 창가로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오르막길을 잠시 바라보고는 식당이 있었다고 말했다. 무슨 식당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은 실례라는 생각에 관두고 레몬티를 마셨다. 반쯤 마셨을 즈음, 카운터에서 포스기를 조작하던 직원의 시선이 뒤통수에 느껴졌다. 부담스러운 시선에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했다. 직원은 계산을 하고 영수증과 카드를 주며 말했다.


“손님, 티셔츠 앞주머니가 등에 있습니다.”


“네? 그럴 리가…”


날개뼈가 움푹 들어간 곳에 만져보니 정말 주머니 같은 재봉선이 느껴졌다. 사실  밖을 나올 때부터 티셔츠  부분에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외출을 했었다. 한여름에 레몬티를 시키고 카페 안을 등지고 있었는데, 다른 손님들에게도  멍청한 티셔츠 앞주머니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열이 많아 빨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서둘러 카페 화장실에서 티셔츠를 돌려 입고 밖으로 나왔다. 직원도 오죽하면 먼저 말을 꺼냈나 싶었다. 옷도 정상적으로 입었으니 약속 장소로 향하려던 찰나, 카페  벽에 세워둔 담쟁이덩굴에 파묻힌 빨간 대야가 보였.  대야를 보자 번뜩 생각이 났다. 어릴  나는 이곳을 지날 때면 눈을 질끈 감고 지나갔다. 이유는 항상 식당 뒤에서 나는  울음소리와 입구  개고기 피를 빼고 있는 대야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때와 같이 눈을 질끈 감고 지나지는 않지만 빠른 걸음으로 마저 지나갔다.  트인 카페 창가의 사람들은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커피를 마시며 웃고 있었다. 카페 이전의 모습보다 차라리  우스꽝스럽게 돌아간 티셔츠만 알고 있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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