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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Aug 18. 2022

상류보다 위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어릴 적 가족들과 계곡을 자주 갔다. 평상에 앉아서 물에 발조차 담그지 않는 나를 보고 엄마는 순식간에 윗옷을 벗겨 계곡물에 들어가라 등을 떠밀었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각선 위쪽 평상에 자리 잡은 아저씨가 신나게 물장구를 치다가 갑자기 멈춰서고는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보았기에 끝까지 들어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우리 가족이 아저씨보다 더 상류에 자리 잡았다면 나는 분명 물에 들어가서 형들과 잡은 물고기를 모은 두 손에 담아 부모님께 보여드렸을 것이다.


여름방학이 되었지만, 사교육에 관심이 없는 방목형 가정의 나와 친구들은 늘 심심했다. 매일 만났지만 하는 것이라고는 자전거를 빌려 타다가 친구 집에서 낮잠을 자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은 친구가 아파트 단지 뒷산에 가자고 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땀에 저려 산을 올라가자 큰 계곡이 보였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우리는 더 특별한 곳이 있으리라 생각하여 더 깊이 산을 올라갔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계곡의 가장 상류에 도착했다. 물이 정강이까지 밖에 오지 않고, 폭도 좁았지만 잠깐 놀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물속에서 가재를 찾았지만, 알을 밴 것을 보고 잡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돌들을 들추며 손톱만 한 민물새우를 관찰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허송세월만 하던 중에 친구는 계곡물이 흘러서 내려오는 커다란 콘크리트 굴을 발견했다. 길이가 많이 길지는 않은 듯 굴 반대쪽에서 야구공만 한 깨끗한 녹색의 빛이 보였다. 빛을 따라 굴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친구와 나누는 대화가 울려 여러 번 들렸고, 점점 낮아졌다. 굴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지만 미끈거리는 이끼에 넘어질까 두려워 붙잡고 있는 벽을 이어 천천히 걸어가니 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곳은 여러 나무의 잎이 햇빛에 투과되어 남향으로 설계된 오래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여전히 녹색의 빛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거기다가 물도 허벅지까지 올 만큼 높았다. 물속 내 발목에는 잔잔한 물결과 작은 민물고기들의 지느러미가 부딪쳤다. 제대로 된 계곡을 발견한 친구와 나는 신이 나서 어느 정도 묵직한 바위까지 힘을 합쳐 들추며 놀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위를 들추는 것에만 소질이 있던 나는 물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 친구에게 어떻게 해야 잘 잡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가장자리에 풀이 많은 곳을 뒤져야 하고, 물속에 미리 손을 넣고 천천히 다가가 잡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바로 풀이 우거진 계곡의 가장자리로 가서 손끝의 감각에 의존한 채 물 밑을 더듬거렸다. 그러자 어느 지점에서 돌과 자갈 대신 기분 나쁜 벨벳 같은 느낌이 나는 것이 있어 본능적으로 잡아당겼다. 백골과 아직 다 썩지 않고 피가 빠진 힘줄에 엉겨 붙은 가죽이 풀 속에서 줄지어 나오자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짧은 털을 가진 개의 사체였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것을 던져버리고 물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온 자리는 흙탕물이 생겨 밑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렇기에 천천히 물 밑으로 꺼지던 개의 사체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에게 빨리 물에서 나오라고 말한 뒤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산을 내려오며 하류에서 재밌게 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누구에게도 내가 잡아 올린 개의 사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같이 간 계곡에서도 재밌게 놀고 있는 형들에게 몸을 부르르 떠는 아저씨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이렇게 상류의 비밀을 알아버릴 것이었다면 차라리 하류에서 아저씨의 변을 맞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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