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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Sep 06. 2022

장피에르 죄네식으로 살다 간 남자

남자는 자연분만으로 태어났지만, 분유를 먹으며 자랐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항상 저녁 밥상을 다 차리기 전에 밥을 먹으라며 불러주었고, 지우개를 다 쓰거나 잃어버리기 전에 다시 사줄 만큼 세심하고 다정했다. 유년 시절에 부모님께 혼났던 유일한 기억은 아버지의 검정 세단 보닛 위에 올라가서 놀다가 엠블럼을 발로 차서 부쉈던 것밖에 없을 정도로 그의 부모님은 온화한 사람이기도 했다. 학생 때 사춘기는 오지 않았지만, 여드름이 많이 난 탓에 자존감이 낮아져 소심한 성격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집 앞 공업사에 취업하여 타이어 펑크 씰(일명 지렁이)을 메꾸는 일을 하였다.


22살에는 자주 가던 카페에서 자주 마주치던 어느 여자와 결혼했다. 자주 마주칠 뿐, 남자와 여자는 딱히 서로에 대한 관심도, 인연도 없었다. 사실 남자가 카페를 자주 가게 된 이유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쳐다본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에게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이후로 그 카페를 자주 갔고, 바리스타가 남자의 복잡한 주문을 굳이 외우지 않고 몸이 기억하여 (이것은 마치 이 글을 보는 사람 중 다수가 본인 집의 도어락 비밀번호를 외우지 않고 몸이 기억하여 치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만들게 되었을 때, 남자는 바리스타에게 청혼하였다. 하지만 바리스타는 그의 청혼을 잘 자란 단호박처럼 거절하였다. 이유는 남자가 항상 다 마신 컵 안에 빨대 비닐을 잘게 찢어서 넣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실연당한 남자가 카페를 나가려고 등을 돌리자 자신과 똑같이 컵에 빨대 비닐 포장을 잘게 찢어서 넣고 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는 서로 구면이지만 첫눈에 반하여 결혼하였다. 자식은 없었지만 경도 비만의 노르웨이의 숲 고양이를 키우며 완만히 지낸다. 고양이는 18살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어느덧 36세가 된 남자는 일생 동안 한 번도 물수제비를 2개 이상 성공한 적이 없었다. 2개 “이상”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것은 물수제비를 하려고 해도 항상 1개만 성공했다는 말이니 전혀 못 했다는 말과 동일하다. 어릴 적 다른 아이들은 서로 물수제비를 몇 개 하는지 내기를 하고 있을 때, 그는 그저 일렁이는 호수에 돌만 던지고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자신의 와이프에게도 말하지 않을 정도로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42세가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난 노르웨이 숲 고양이를 힘겹게 잊어버리고 헛짖음이 많은 바셋하운드를 키우기 시작했다. 화창한 어느 날, 남자와 인공저수지에서 산책하던 바셋하운드는 어느 나무에 집착하여 오랫동안 냄새를 맡았다. 남자는 그런 자신의 반려견을 잠시 나무에 묶어두고 저수지 수면 위로 물수제비를 시도한다. 예상과 달리 4개를 성공하고 그 자리에서 놀란 염소처럼 몸이 굳어버린다. 몇 분 후 남자의 바셋하운드가 주인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그는 좀 전의 상황을 믿지 못하고 다시 물수제비를 시도한다. 이후로 수도 없이 시도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남자는 그 돌만 물수제비가 가능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돌을 다시 찾기 위해 저수지 안으로 들어갔다. 몇십 분 뒤, 남자는 저수지에서 몸이 뒤집힌 채 떠오른다. 그의 부고는 안타깝지만 죽기 직전에 물수제비에 성공했다는 만족감으로 이승을 떠도는 귀신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옥에 떨어졌으니, 이유는 그가 던진 돌에 죄 없는 개구리가 여럿 맞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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