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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희 Oct 25. 2021

파도 - 2

아득하게 쏟아지는 칠흑빛



생식하는 어둠에 권태로 뒤덮여 뒤척이다 느닷없이 편지를 써 내려갔다. 잠에 취해 마주한 꿈에서 평소에는 만날 수 없던 이들을 만났다. 식은땀을 쏟으며 깨어났을 땐 창문이 빛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빈약한 기억이 소실되고 파괴되어 사라졌다. 일부분만이 기억으로 남았다. 파편화된 기억은 불완전한 부분을 비약된 막연함으로 메웠다. 복기하여 선명했던 것이 과거인지, 꿈인지, 사실과 동일시된 상상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빛이 그인 경계에 왜곡된 기억들이 난무했다.


서늘하게 부딪치는 공기를 마시며 옅어진 선을 바라보았다. 불순한 날씨만이 손에 쥘 수 없는 투명함을 알아주었다. 속이 비치는 곳마다 아득함이 엿보인 빛으로 채워졌다.


질퍽한 모래 위에 서서 내리쬐는 햇볕에 말라가는 바다를 바라본다. 정다운 어느 날의 바다는 파도로 사랑을 표현했다. 부서지는 파도를 따라 심해로 가라앉았다. 문드러진 채 그믐달이 기운 수조 속을 유랑하다 짙푸른 빛에 뛰어들었다. 바다의 깊이를 알았더라면 끝내 젖어 들지 못했을 칠흑이 쏟아졌다. 두려움이 스러진 자리에 파도가 선사한 사랑을 머금었다.


파랑(靑)이 파랑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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