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보세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2주가 되어간다.
중학교에 입학한 첫째와 9개월의 백수생활을 마치고 유치원에 입학한 셋째. 첫 주는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두 달간 온 가족이 붙어서 지내다 드디어 아무도 신경 안 쓰고 혼자 있는 시간이 다시 생겼다! 첫 주는 만남의 주간이라 그동안 못 만난 지인들을 만나 수다를 떠느라 바빴다. 알차게 보내야 했다. 2시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니까. 2시간도 3시간도 짧다. 그동안의 일상을 공유하고, 사교육에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지인은 학원 가느라 아이가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서 30분을 빼기도 힘들다 했다. 목동에서 일할 때 보던 풍경이 아직도 현실인 것이다.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노란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아이들.
우리 집의 아침은 7시에 시작된다. 두 아이가 차례로 머리를 감고 나는 7시 10분에 일어나 아침을 차린다. 7시 30분 이전에 아침밥이 완성되고, 두 아이는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아침밥상은 주로 백반이다. 아침에도 놀라울 정도로 입맛이 돌던 첫째가 중학생이 되고는 조금 입맛을 잃었다. 새 학기증후군이다. 밥을 먹을 동안, 나는 물통과 수저를 챙기고, 아이들이 입을 옷을 꺼내둔다. 그리고는 셋째의 기분을 맞춰가며 놀아준다. 큰 아이들은 8시 5분쯤이면 준비를 마치고 가방을 멘 채로 10분 정도 앉아있다가 5분 시간간격을 두고 차례로 등교한다. 흔한 남매라서 그렇다. 큰 아이들을 보내고 어르고 달래고 화내며 만 3세 셋째의 아침을 먹이고 9시쯤 집을 나선다. 아이를 보내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청소를 하니 10시가 되었다. 아니, 이제 겨우 10시였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나면 2시 반부터 아이들의 귀가가 시작된다. 첫째와 남편이 4시쯤 귀가. 아이들은 복습을 하고 게임을 한 시간 반 한다. 5시 반? 늦어도 6시 전에 저녁식사가 시작된다. 식사 후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첫째와 셋째는 첫 주에 8시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적응이 좀 됐는지 이번주부터 9시에 취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학원에 보내지 않는 대단한 엄마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우스갯소리로 외벌이에 5인가족이라 학원보낼돈이 없어서 못 보낸다고 말하는 것? 5학년이 된 둘째는 방학 동안 남들 다 푸는 최상위 수학으로 복습을 시키고, 첫째는 1월에 하루 50분씩 2타임. 20일 정도 수업했더니 1학기 2단원까지 선행이 가능했다. 이해력이 좋은 편이라 쉽게 진도가 나갔고, 단원평가에서도 3개 틀리는 게 다였다. 수업 한번 듣고 복습도 없이 이점수면 훌륭하다 칭찬하면서 3단원 수업을 나가려고 했지만, 아이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무던한 성격이 아니기에, 이러다 또 수학이랑 담을 쌓을 것 같기도 하고, 이 정도 이해력이면 학교수업 듣고 복습만 해도 되겠다 싶어 브레이크를 걸었다. 욕심나는 아이지만 부작용은 더 크다. 멈추는 것에 두려워하면 안 된다. 영어는 아무래도 학원 다니는 아이와 차이가 크게 나니 예습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파닉스도 모르지만 용케도 잘 외우는 아들은 자습서를 사서 미리 단어를 외우고 같이 읽는 연습을 했다. 방학 두 달 동안 평일 3시간 공부가 전부였다. 그리고 실컷 쉬었다.
중학교 첫 수업이 있던 날. 아이는 신이 나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든다. 사회선생님이 6.25 전쟁의 정전협정체결일을 문제로 내셨는데 연도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었다며 들떠있었다. 책상 앞에 남편이 붙여둔 연혁표가 가끔 한몫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려거란전쟁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자기밖에 없다며 놀라워했다. 나는 뉴스 보는 사람도 너 하나일 거라고 거들었다. 첫째는 뉴스덕에 시사, 정치, 경제 어지간한 건 다 알고 있다. 공부는 싫다고 말하고, 학원에 다니지 않지만 선생님들의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교실에 이 아이 하나인 것이다. 남들 공부할 때 실컷 자서 키도 170cm로 큰 편이다. 가끔 자기는 잘하는 것이 없으니 키라도 커야 한다며 제일 먼저 잠자리에 들곤 한다. 곧 임원선거가 있었는데, 불안이 높아 통제력이 높은 아이에게 반장선거 나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슬쩍 떠보았다. 반장이 애들이랑 같이 떠들어도 신경 안 쓰고 있을 수 있겠냐 했더니, 대답 없이 째려보기만 했다. 관심받는 걸 싫어하니 반장은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곤 다음날 아이가 얘기한다.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반장선거 나갈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셨다는 거다. 고작 일주일을 지내봐도 선생님눈엔 네가 반장감으로 보였다는 거지. 내가 말했을 때랑 반응이 달라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매년 학교에서 듬직하고 괜찮은 아이가 되어있어서 한편으론 안심되었다.
어느 날은 국어 학습지를 들고 와서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첫 시간 '시' 단원 수업인데 뻥뻥 뚫린 학습지와 핸드폰을 주시고는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를 검색해서 찾으라고 하신 거다.
"그러니까 수업을 먼저 하시고, 내용을 적으라고 하신 게 아니라고?"
게다가 중등국어와 고등국어를 섞어놓은 내용이었다.
"양심 있으면 다 채워 오라셨어. 웃기지?"
아이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나 역시도 화가 났다. 이런 방식에 아무도 항의하지 않은 걸까. 좀 더 수업을 지켜보고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진정을 하고 보니 아들이 참 멋있었다. 내가 저 나이 때는 어른들이 다 옳은지 알고 마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다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뭐가 잘못됐는지 알고 있고, 분노하는 그 모습이 건강해 보였다. 세상 보는 눈은 나쁘지 않기에 친구들 학원에서 수능영어 푸는 동안 우리 아들은 자고 있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나 보다. 가끔씩 그래도 욕심이 올라와서 아들에게 협상을 시도해보고는 한다. 한 번은 학교수업만 듣고, 복습하나도 안 하고 시험을 보고, 한 번은 정말 여태 이렇게 공부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해보자고. 엄마는 네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너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딱 한 번만이라도 네 능력을 최대한 써보고 나면 그 뒤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아이의 답은 의외였다.
"근데 나 불안해서 하나도 안 하는 건 안될 것 같아."
"꼴찌는 아닐 텐데? 그건 또 창피해? "
사춘기답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 아직은 귀엽다.
평범하게 사는 삶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서, 어릴 적 내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아마도 주말드라마에서 나오는 평온한 중산층의 저녁식사 씬 정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5시 반. 식탁에 앉아 배 안 고프다면서 양념목살을 상추에 야무지게 싸 먹는 둘째,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아빠한테 하는 첫째, 내가 좋아하는 굴짬뽕을 끓여서 먹고 있다 보니 어쩌면 이게 내가 바라던 그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 시간이 행복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