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로 돌아온 지 반년이 지나 나는 학교에 입학했고, 아빠는 여전히 나를 데리러 온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연락두절이 되긴 하지만, 내가 미술학원에 다니기 전보다 확실히 술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집에 들어오는 횟수가 줄었다. 이 정도로 만족하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나의 8살의 인생도 꽤 재미있었기에 좀 더 즐겨보기로 했다. 수도 없이 발바닥에 가시가 박히게 했던 나무바닥은 아직 온몸의 털을 쭈뼛서게 했다. 기억도 가물가물했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서 땅따먹기도 하고 비석 치기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며 지내는 삶은 나쁘지 않았다. 어제는 학교에서 굴렁쇠를 굴렸다. 가을 운동회에 굴렁쇠 경기가 있다며 선생님이 연습해 보라고 꺼내주셨다. 아직은 몸에 익지 않아서 열심히 쫓아다니느라 모래먼지를 가득 먹고, 손가락에서는 쇠 냄새가 진동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렇게 놀게 많은데 공을 찰 곳도 없어서, 핸드폰이 절친이 된 아이들이 떠올랐다. 막둥이는 뭘 하고 있으려나. 엄마를 찾지는 않을까. 아빠와 엄마의 싸움이 적어져서 그런지, 이 집안의 문제보다 내 집안의 문제가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너 요즘 따라 이상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가서 책이라도 읽어."
"또 책 읽으래..."
"말버릇 하고는 엄마가 언제 책책 거렸냐?"
엄마는 앞으로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거기다 내가 결혼하고 애를 낳고 애가 어린이집에 가는 순간부터 다시, 엄마들 만나서 수다나 떨지 말고,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시작하게 될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툴툴거리며 방으로 들어와 인형들의 머리를 매만진다.
"엄마 미정이 잡으러 갔다 올 거니까 집에 잘 있어 전화 오면 잘 받고."
미정이는 해가 지고 나서도 놀이터에서 노느라 돌아오지 않았다. 겨우 6살이니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요맘때는 가는 곳이 뻔했지만, 내 기억에 미정이는 나이가 늘수록 점점 찾기 힘든 곳까지 누비고 다녀서 엄마가 저녁이 되면 두 팔 걷어붙이고 수색에 나섰다.
"엄마 걔 아까 올챙이 잡으러 간다던데?"
"그래? 이 동네 올챙이 씨를 말리고 들어오려고 작정했나"
하교하던 길에 같은 동네 살던 아이들 서너 명이 모여서 작당모의 하는 걸 목격했다. 오늘은 엄마에게 목적지를 정확히 짚어줘야 했다. 나는 오늘을 기억한다. 미정이는 그냥 올챙이를 잡으러 간 게 아니었다. 그때는 그 생물체가 조금 튼튼하고 큰 올챙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두 손으로 잡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따르릉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
"어? 여보세요? 거기 예 과장님 댁인가요?"
"네 그런대요. 누구세요?"
"아~ 수정이구나. 난 아빠랑 같이 일하는 언니야. 아빠 계시니?"
"아뇨. 엄마가 아빠 오늘 출장 가신댔어요."
"아 아직 안 나오셔서 언제 나가셨는지 아니?"
"한 시간 전에요."
내가 이 여자의 전화를 받았던 적이 있었나.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엄마한테 말해야 할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르는데, 내가 해결해 볼까. 초조하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미정이는 물통 한가득 올챙이들이 압사당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꾹꾹 담아 귀가했다. 엄마와 올챙이를 버리네 마네로 한참을 실랑이하다 미정이의 고집에 못 이겨 제법 큰 대야에 물을 붓고, 올챙이들을 해방시켜 줬다.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생물체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황소개구리의 올챙이였다. 다음날 아침. 움직이지 않는 올챙이 떼를 보며, 이제 갖다 버리라는 동생을 보고 처음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는데, 이제는 생태계 복원에 이바지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줘야 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아빠를 찾는 전화가 왔었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나에게 언니라고 말하는 여자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