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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Dec 09. 2023

무엇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평온한 토요일입니다. 아내와 브런치를 먹고, 맞춰둔 안경과 세탁물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거실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고 창밖도 보고 합니다.


갑자기 짧은 띵 소리와 함께 핸드폰의 일정 알림이 울립니다. 뭔가 해서 봤더나 ’마누라 시술‘이라고 써놨습니다. 일년 전 오늘, 불임 시술로 난임 여정을 끝냈던 날입니다. 아이를 찾아 헤매는 길에 마침표를 찍었던 그 날입니다. 기념일에 입력한 것도 아니고, 그 날 일정에 입력한 것인데, 왜 ’매년 반복‘을 선택해 놓았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마침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있으니 창밖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길고 힘들었던 여정이 너무나 간단하고 빠르게 끝났을 때의 허무함과 아쉬움, 섭섭함….. 많은 감정들이 조금씩 가슴 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약간 아리지만 많이 아프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러다 작년 시술 후에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썼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오랜만에 다시 들어와 봅니다. 로그인도 다시 합니다. 마지막 글을 쓴 날만 확인하고 읽지는 않습니다. 제일 좋아했던 작가님 브런치를 찾아 글을 딱 하나만 읽고 나왔습니다. 웬지 이 곳에는 작별인사를 했으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바로 나가지 않고 이런 글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곧 겨울맞이로 윈터타이어 교체하러 나갈 시간입니다.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져서 억울하지만 곧 또 추워지겠지요. 오는 길에는 향어 회를 사 와서 둘이 또 먹고 놀 예정입니다. 어제 봤던 살찐 까치가 있나 하고 창밖을 보지만 조용합니다. 흔들리는 나뭇잎이 바람만 보여줍니다. 나갔다 오면 타이머 맞춰 둔 트리가 반짝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따뜻한 날 때문에 겨울을 두 번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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