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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 pire Jun 04. 2023

정신분석의 과정

진리. 분석과정에서 드러나는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란 말하기를 통해 드러난다. 그것은 온전히, 전체로서 드러나지 않으며 절반만 드러난다. 분석가의 수수께끼 같은 발화는 그 때문이다. 분석수행자는 말한다. 분석가는 침묵한다. 그 침묵 또한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수수께끼는 분석수행자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불러온다. 그는 분석가를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으므로 침묵이나 수수께끼 같은 발화에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의미를 찾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어느 때는 분석가를 의심하기도 한다. 분석가를 비난하기도 한다. 분석가를 달래 보기도 한다. 이리저리 해보지만 분석가는 냉정을 유지한 채 요지부동이다. 분석가의 태도로 인해, 분석수행자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무의미가 있다. 


분석가는 공백을 선물한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무의미라는 의미가 있다. 분석가의 행동은 공백을 선물하기 위한 연극이기도 하고, 분석가의 욕망이기도 하며, 스승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 모든 행동이 지시하는 것은 공백이다. 분석가의 행위는 공백의 표지 그 자체이다. 


분석수행자는 어떤 사건 이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들이 이야기를 만들어왔고, 그 이야기들이 자신의 인생을 구성해 왔으며, 그 삶의 과정들이 주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이러한 주체는 기표들의 행렬, 이야기들의 나열, 의미의 나열 그 자체에서 출현한다. 분석가는 이러한 행렬에 공백이라는 선물을 준다. 분석수행자의 이야기들은 환상이었으며, 그 환상으로부터 분석수행자는 바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야기 너머, 환상의 바깥, 그곳에는 언어화되지 않은 분석수행자의 삶의 지점들, 과거들,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던 무의식의 사건들, 공백의 지대가 위치하고 있다. 무의미, 무의식, 공백의 지점. 거기서부터 분석수행자는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무로부터의 창조. 


분석수행자는 공백의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무로부터의 창조를 통해 분석수행자는 주체의 서사로 나아간다. 새로운 삶의 서사가 시작된다. 주체는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난다. 분석과정에서 진리란 이런 것이다. 명확히 규정할 수 없으며, 언어화하기도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은 삶의 서사가 새롭게 창조되는 과정이며, 하나의 예술이며, 음악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 사건에는 공백으로부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주체의 리듬과 같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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