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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라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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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 pire Apr 17. 2024

시작

안녕하세요!     


그간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분석가의 욕망을 가지고 있느냐로 깊이 고민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분석가로서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건 라깡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짓이었습니다. 분석가는 지식의 유무로 결정 나지 않습니다. 분석가의 욕망을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지금까지 저는 자기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라깡파 분석가로부터 분석을 받으며, 그리고 그것이 조기에 종료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내뱉고 다녔던 많은 말들이 모두 타인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진짜 저의 순수욕망은 한 톨도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순수욕망이라는 하나의 문자를 찾아야, 그걸 찾아야만 제 본래성을 찾을 수 있음에도 그걸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저는 저에 대해서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변화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바꾸려고 제 꿈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꿈에서 저는 저격총으로 누군가를 저격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꿈틀거리며, 어딘가로 기어가는 것을 저격총으로 지켜보고만 있었지요. 애초에 이것이 훔쳐보려는 욕망의 표현인줄로 생각했습니다. 뭔가를 훔쳐봄으로써, 그러한 죽어가는 생명체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점이 뭔가 기이하다고 생각되긴 했습니다.      



저는 분석가에 대해서 크게 오해하고 있던 것입니다. 분석가는 죽어가는 사람을 저격총으로 바라보며 자기의 욕망이나 채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꿈에서 느꼈던 이유 모를 불안은, 제가 분석가의 욕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교육분석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근본기분이었던 것이지요.      



또한 저격 – 자격이라는 어휘로 연결되어, 저는 분석가의 욕망이 아닌, 분석가의 자격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던 겁니다. 라깡은 분석가의 자격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분석가의 자격을 인정받으려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매우 강박증적인 태도로, 분석가의 자격만 획득하면 어찌되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꼈던 것입니다.  

    


저는 교육분석에서, 예전에 들었던 수업을 “교육분석”의 일환으로 생각하라는 분석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분석이 끝나고 당시의 수업을 필사한 제 기록을 다시 보니, 분석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 혼자 그렇게 착각하며, 그걸 교육분석이라고 생각하고 수업을 듣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 수업을 정말로 교육분석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며, 제 자신에 대해서 혼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크나큰 착각이었던 셈입니다만... 그 과정에서 라깡 이론을 전부 이해하면 분석가 또한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식을 통한 저항까지도 드러내고 있었지요. 분석가는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을 통해 저는 그것이 모두 저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인정을 욕망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고, 그래서 지금 여기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분석가는 내담자인 분석주체에게 선물을 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결여되어있다는, 무의미라는, 공백이라는 선물을 줍니다. 그래서 그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이를 괴롭혀왔던 외로움과 상처, 아픔들로부터 공백을 줌으로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끔 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인생입니다. 



분석가의 욕망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분석가의 사무실을 시작했습니다. 미약하게나마 타인에게 공백을 선물로 줄 수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다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 하나만은 안다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저는 죽고, 다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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