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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 pire May 12. 2024

나를 알아가기

콜레트 솔레 "재발명된 무의식"의 영어본 표지

라깡이 말하는 진리의 순간, 그것은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자기 충동에 대해서 아는 것. 곧 자기에 대해서 알게 되는 순간이지요. 정신분석의 과정에서, 자기가 믿고있던 모든 것들이 남의 말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내 인생의 이야기들이 전부 환상이었음이 폭로되는 순간이 옵니다. 분석가는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 모든 폭로는 분석수행자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나를 움직여왔던 모든 원인들, 나를 움직였던 모든 타인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모든 것이 환상이었고, 내가 구성한 가상에 불과했음이 폭로됩니다. 본래 정신분석학파에서 이것을 “통찰”이라고 하지요. 충동 또한 남의 말로부터 시작되고, 구성된 것입니다. 남의 말을 재료로 삼아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지요. 



라깡파에서 통찰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통찰 이후에 필연적으로 “좋은 우울증”이라고 하는 것이 옵니다. 통찰을 해보면, 나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니까요. 지금까지 나를 구성해온 것들, 그것이 전부 남의 말에 불과했음이 드러납니다. 이걸 라깡이 진리의 순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라깡이 간명하게 말한 것이 이겁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이것을 깨달은 분석수행자는 흔히 허망한 표정으로, 모든 것이 다 제 것이 아니었네요... 같은 이야기를 하지요. 그것은 자기에 대한 깨달음이므로, "공백", "존재결여"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는 순간입니다. 분석가는 이때 한 마디씩을 던지곤 합니다. “전부 남의 말이에요. 모두 다.”



우리를 구성하는 것은 전부 남의 말이지요. 그렇다고 달라질 건 별로 없습니다. 남의 말 중에서 내가 해서 즐거운 것을 밀고 나아가면 됩니다. 이게 프로이트가 말한 훈습입니다. 훈습의 본래 뜻은, 익히고 배우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훈습이란 “자기 한계를 돌파한다”는 뜻입니다. 니체가 말했듯이, 위버멘쉬, 계속 무언가를 넘어가는 인간이 된다는 겁니다. 



모두 프로이트가 예비해놓았던 길입니다. 프로이트는 이 돌파과정에서, 분석수행자가 자기만의 만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분석이 종결될 때 치료는 덤으로 이루어집니다. 만족할만한 다른 기호를 되찾았으니까, 더 이상 증상이라는 기호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만족할만한 기호, 즉 향유할 수 있는 기호jouis-signes, 그것이 각자에게 있는 “라랑그”입니다. 라깡이 라랑그를 말하면서 후기로 넘어간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임스 조이스를 연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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