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본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지은 Jul 08. 2024

나리타에서 만난 풍경

일본여행 5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선다. 어제 미루어 두었던 나리타산 신쇼지(Narita-San Shin Shoji Temple. 신승사)를 향한다. 길에서 산 위로 멀리 보이는 뾰족탑을 향해 걷는다. 물론 네이버 맵을 켜서 손에 들었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는 고요하다. 가게도 아직 오픈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작은 골목과 몇 개 안 되는 가게들을 지나 25분쯤 걷자 신쇼지의 옆문이 나왔다. 경내는 기도하는 참배객만 몇 사람 눈에 띈다.

일본의 유적지 풍경은  늘 신사와 절이 공존해 있는 모습. 신쇼지도 다르지 않았다. 문득 2개의 믿음이 한 곳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는가 싶다. 수천 개의 신을 믿는다는 일본인들은 천재지변에 대한 불안감을 늘 갖고 있어, 작은 어떤 것들에도 기대고 싶은 것일까? 그래야 자신들이 보호되고 지켜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일본인 친구가 있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의문점 하나 마음에 담고 경내를 돌며 각각 특성이 다른 건축물들, 평화거탑, 액당, 광명당 등을 보았다.


신쇼지는 서기 940년부터 커다란 산 하나 전체에 절이 세워지기 시작했다니 말 그대로 천년고찰이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수행과 기도를 하고 있다는 안내문을 보며 역사 속에서 자신의 안녕을 기원했던 그들의 마음 보인다. 본당 앞마당의 삼층탑. 1712년에 만들어진 25M의 높이로 중요문화재란다. 이어 대웅전. 유리로 둘러싸인 경당 안은 음침하도록 어두웠고 , 일본식 전통 의복을 입은 몇 사람이 큰소리로 뭔가를 말하며 심벌 같은 것을 치며 천천히 걸어 자리를 옮기면 많은 신도들이 따라서 기도를 올리는 듯한 모습. 문외한이 보기엔 법회 같았지만 일본어로 하는 것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어 사진 하나 남기지 못했다. 대웅전 뒤로 이어지는 건축물들. 각각의 이름을 갖는 작은 경당들이고 기도하는 곳이겠지만 일어를 모르는 까닭에 그냥 기웃거리는 것만으로 만족. 이어지는 정원들, 어디가 경당 마당이고 어디가 정원인지 구분이 안되게 이어져 있던 길에서 많은 봄 꽃들을 만났다.


다시 또 만나자는 아쉬운 마음을 너른 마당에 두고 정문으로 내려온다. 계단 위에는 인왕문이 서 있고, 사천왕상 문도 지나게 된다. 계단 맨 아래에는 작은 못이 있고 그 연못에는 제법 커다란 잉어들이 살고 있다. 연못 가운데 장식되어 있던 돌거북이. 참배객들과 여행객들이 던져 놓았을 동전들이 수북하다. 장수와 부귀영화를 비는 마음은 누구라도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인들은 새해 첫날 신사나 절을 찾는 풍습이 있다는데, 신쇼지가 전국에서 2위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참배객들이 올지 상상이 가는 일이다. 넓은 대웅전 앞마당에 빼곡히 모여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길 건너에서 바라본 신쇼지의 자태는 크고 웅장하다. 그들의 오랜 기원과 참배객들의 안녕과 우리들 여행의 평안을 기도하며 말걸음을 돌린다.

내려오는 작은 골목길에는 참배객들에게 보양 음식이었을 장어 덮밥. 귀향길에 심심풀이로 먹었을 전병 과자 과자 가게가 여럿 있다.  어제 먹은 장어 요리 이야기를 하며 우린 모리소바 집으로  들어갔다. 늦은 점심을 위하여. 절친은 따뜻한 소바를 나머지 셋은 찬 소바를 시키고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근사한 점심 식사를 마쳤다. 거리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비를 맞으며 돌아가는 길. 시선이 닿는 곳 어디에도 쓰레기 하나  없는 청결. 봄비에 떨어질 벚꽃이 거리를 어지럽히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 하며 내년 봄에도 또 이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오후,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버스의 종점은 기차역. 하차해 거리를 둘러보아도 딱히 들어갈만한 곳이 없다. 큰 상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쁜 카페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얼마를 헤맸을까 겨우 스낵과 커피를 파는 곳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카페는 말 그대로 만원사례였다. 겨우 4명이 앉을자리를 찾았는데 비좁다. 바로 그 옆자리엔 책을 읽으며 조는 뚱뚱한 아저씨 한 사람. 겨우 비집고 앉은자리 옆에서 졸고 있는 아저씨를 깨우며 의자를 조금만 당겨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리에 앉은 지 한 5분이나 되었을까. 내 전화기에 벨이 울렸다. 답을 하자. ‘출입국 관리소 동해 출장소’란다. 진행하고 있던 한국 국적 회복이 완료되었고, 등기우편으로 서류가 올 것이란다. 감사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긴 기다림.  11개월의 시간. 국적 회복을 시작했던 이유인 엄마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한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라 끝내야 했다.

인간의 본향에 대한  마음. 연어가 회귀해 알을 낳고 죽듯, 나도 이제 가야 할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귀향을 준비한다.

아직 모든 살림이 미국에 있고 가족이 미국에 있으니 완전 귀국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돌아오는 연습. 귀향의 준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본향의 의미. 그런 것들을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다음 여행지인 일본의 수도, 도쿄지방 여행일정을 기다리며 우리끼리 지냈던 일박의 여행. 꽤 괜찮았고 그 의미가 컸다. 다음 일본 여행은 우리끼리 와도 되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기대하지 않았던 1박 2일의 나리타. 그곳에서 만난 본향의 의미.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 관동지방을 향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