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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03. 2024

불후의 명곡

정동하와 알리


강원 FC경기가 있는 날인 줄 몰랐다. 일찍 공연장에 도착했지만 강릉 아트 센터 건너편의 종합운동장 주차장은 이미 꽉 찼다. 주차 요원의 안내를 받고 좀 떨어진 테니스 코트 근처에 차를 세웠다.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공연장을 향해 걷는데, 나만 혼자다. 절친과 같이 오려고 했지만 그녀는 서울에 급한 볼일이 있었다. 혼자라도 온 이유는, 내가 언제 정동하와 알리를 일렬 직관할 수 있을까 싶어서.

입장하기 전 프로그램을 찾았지만 그런 건 없단다. 아마도 자유롭게 곡을 선택하여 부르는가 싶었다. 지정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나보다 훨씬 젊은 층이 대부분이다. 조금 쑥스러웠지만, 혼자 보는 공연을 즐길 수도 있는 나이. 마침 그때, 바로 옆자리에 누가 앉는다. 그녀도 혼자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은 동지 의식. 혼자 속으로 웃는다.

둘은 “바람의 노래”로 장을 연다. 불후의 명곡에서 함께 불렀던 명곡.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는 노랫말처럼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이 삶의 가장 큰 의미 있는 일’. 지금 혼자 보는 이 공연도 내 사랑하는 삶의 한 순간일 것이란 생각. 리듬에 몸을 맡기고, 박수를 치며, 가수들의 열창과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안에서 나도 온몸으로 그들과 하나가 된다.                       

어떻게 저런 고음과 풍부한 성량이 나올 수 있을까 감탄사의 연발이다. 호흡도 어마 어마하게 길다. 이어 나의 애창곡인 ‘광화문 연가’가 나온다. 객석에서는 푸른빛 LED등을 손에 들고 손짓을 이어가고 떼 창도 들린다. 자신들의 음색에 맞추어 편곡을 하고 화음을 맞추어 부르는 두 사람. 나는 두 손을 꼭 쥐고 몰입하여 들었다.

공연 시작 후 두어 곡을 부르며 정동하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다. 심한 목감기가 걸렸단다. 그래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알리가 시간을 이어갔다. 공연장에서 듣는 알리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몇 옥타브를 올리는지 가늠이 안 되는 알리. 댄스 곡에 맞추어 박수를 치며 몸을 흔들고 모두 떼창이다. 나도 물론. 내 나이를 잊고 모든 관람객들과 하나가 되어 온전히 즐긴다.

이어 정동하 시간. 앞자리를 꽉 메운 그의 찐 팬들이 모두 일어서 푸른빛 LED봉을 들고 떼 창과 박자를 맞춘다. 정동하의 음이탈이 감지되고, 아차, 싶었지만 역시 노련하게 그 고비를 잘 넘겼다. 몇 곡을 끝내고 그는. 강릉 콘서트에서는 정동하 음악의 흑역사 한 장면을 보고 듣고 있다는 위트. 그를 위로하기 위해 객석에선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를 외친다. 팬들의 진심 어린 격려와 찐 팬들인 함께 불러 주는 떼 창. 알리는 자신의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무대로 나와 정동하를 대신해 고음을 불러준다. 둘의 케미와 서로를 보완해 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본다.

정동하와 알리,라는 가수를 알게 된 건 10년도 더 지났다. 한창 <불후의 명곡>을 시청하던 때였다. 어떻게 저렇게 노래를 잘할 수 있을까. 저 고음은 뭐지? 듣고 있는 내 숨이 멎을 것 같은 긴 호흡. 그래서 정동하를 찾아보았더니, 그룹 ‘부활’의 보컬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젊은 가수였다. 알리는 어렸을 적 판소리를 했던 말 그대로 목소리 장인. 불후의 명곡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했던 두 사람.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십 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다. 말 그대로 불후의 명곡의 견인차였던 두 사람. “탕 탕 후루 후루~”하며 짧고 귀여운 춤을 관객과 함께 춘다.

요즈음엔 그들을 잊고 있었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리듬의 발라드와 추억의 음악인 R&B가 우리들 가슴을 따듯하게, 푸근하게, 넓게 해 주었다는 것을...  <불후의 명곡>을 시청하지 않은 것도 벌써 여러 해. 인기가 시들한 것은 요즈음의 대중가요의 대세인 ‘트로트’ 때문일까? 아니면 나만 그들의 음악에서 멀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음악은, 노래는, 곡의 느낌과 가사가 나의 감정 상태와 일체가 되면, 그야말로 나의 마음을 울리는 명곡이 되는 것 같다.

<불후의 명곡>은 그 명성을 잃어가도, 그 프로그램이 키운 두 명의 가수가 만들어 내는 감동의 물결은 내 가슴에 벅차게 밀려든다. 무대 뒤를 장식했던 베너  <THE GREATEST>가 말하는 것처럼 불후의 명곡, 최대의 공연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공기는 서늘해도 마음은 따뜻하다.


며칠째 정동하와 알리의 음악을 듣는다.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스피커에 연결하여 종일 듣다 보면, 여운은 바람의 소리가 되어, 상록수가 되어, 비상하는 꿈이 되어 온몸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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