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보러 갔던 것은 지난 월요일.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신부님과 남편, 나. 세 사람이 함께 간다. 우리 팀 브롱코스(Broncos)의 주 스폰서인 대형 주류도매상으로부터 일열직관 입장 티켓 2장과 주차 티켓 1장을 얻었다.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고, 구경은 공짜 표를 얻어서 가는 것이 제일 재밋단다.신부님 티켓 1장은 구매. 본당 신부님은 미국 생활 4년째. 아직 한 번도 풋볼구장을 가보지 못했다. 궁금해하며, 혹 풋볼구장을 가게 되면 같이 가자 하시던 말을 잊지 않고 약속을 지켰다. 뜨거운 티를 보온병에 담고 과일을 깎아 플라스틱 용기에 넣으며 소풍 가는 아이가 되어본다.
게임시작은 6시 15분. 셋이 만나는 시간은 2시. 왜 그리 일찍 가느냐는 신부님의 질문에 가보면 알 거라는 답. 이른 저녁을 먹고 가기로. 구장 안에서는 미국 패스트푸드와 주류만 있으니까. 든든하게 먹고 가야 응원도 잘할 거라며. 지는 해가 산허리쯤 걸려 있을 시간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곳곳에서 파티를 벌이고, 팀의 연주에 박자를 맞추며 춤을 추면, 우리들도 어깨와 발을 들썩인다. 햄버거 굽는 냄새 가득한 주차장. 곳곳에서 고 브롱코스(Go! Broncos!)의 구호가 울린다. 팀의 색깔인 주홍색 물결은 넓은 주차장을 뒤덮었다. 일단 구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확인한 후, 맥주를 사거나, 구장 안 구경을 하기로 했다.
몰래 주머니에 넣어갔던 미니 사이즈의 위스키는 무사통과. 6만 8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구장을 거의 한 바퀴 돌아 지정석을 찾았다. 마침 우리 옆자리가 비어 있어 신부님도 우리와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짐을 자리에 내려놓고 경기장 구경을 나섰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와 보았지만 신부님은 처음. 궁금한 것이 많을 수밖에. 여러 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금방 시간이 갔다. 그제야 왜 2-3시간 전에 와야 하는지 알겠다는 신부님. 미국 국가가 연주되고 성조기가 펼쳐진 대낮처럼 밝은 구장의 한 자리, 게임이 시작됐다.
우리보다 훨씬 열세에 있는 클리블랜드 브라운(Cleveland, Brown)과의 경기. 이길 것은 거의 확실했지만 어느 정도의 점수 차이일까, 기대와 흥분. 이번 시즌13주째의 게임. 이미 와일드카드에 안착해 있는 우리 팀은 경기를 펼치기에 좀 편했을 수도 있지만, 꼭 이겨야만 그 자리를 확고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게임이었다. 게임이 시작되고 먼저 터치다운을 만들며 게임이 잘 풀리는가 싶더니 이내 점수를 내주어 역전이 되었다. 점수를 주거니 받거니,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 상대방 브라운은 하프타임 3초 전 터치다운을 만들어 바짝 따라왔다. 전반 스코어는 21:17.
20분 간의 하프 타임(Half Time 쉬는 시간). 관중석이 모든 불이 꺼지고 핸드폰의 손전등 기능만 들어오게 해 별들의 향연 같은 연출. 치어리더들은 색색의 네온의 옷을 입고 선을 만들었다 헤어지고 원을 만들고 하트를 만든다. 하늘에서는 붉은빛 낙하산이 내려온다. 그들과 하나 되어 록 음악에 몸을 흔들고 손뼉을 치며 함께하는 시간들. 빛의 향연 끝즈음에는 덴버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흰색의 네온풍선을 들고 나와 어울리고, 말미에는 경기장의 양쪽 끝에서 현란한 불꽃이 터졌다.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심판이 파울일 때 던지는 플래그(깃발, Flag)의 설명을, 감독의 표정은 대형 전광판에 그대로 실린다. 터치다운을 하면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고 앞과 옆, 뒤, 하이 파이브를 하며 소리치고. 발을 구르고, 응원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치는 재미. 이게 직접 구장에 오는 묘미 아닐까. 이런 맛에 비싼 돈 주고, 긴 시간을 쓰며 일렬 직관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응원을 너무 열심히 해 목이 많이 말랐다. 벌컥벌컥 맥주를 마신다. 그 시원함. 몰래 가져갔던 작은 술병도 따서 마시고, 흥분은 더 고조된다. 후반전이 시작됐다. 역시 점수를 주거니 받거니. 그러다 선두를 내주자 ‘이게 뭐지?’하는 느낌. ‘승리의 여신은 또 상대방 편?’ 하는 생각이 잠시 지나갔다. 그러나 우리 팀이 공을 가로채며(intercept) 빼앗아 달아나 그걸 터치 다운을 만들면서 기세는 완전히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브라운과 쫓고 쫓기는 게임은 4회 말까지 계속 이어졌다. 대부분의 관중들은 구장을 빠져 나갈 때의 불편함을 생각해 20분 전쯤이면 서서히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 게임은 달랐다. 마지막 시간까지 다들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만큼 마지막까지 팽팽한 접전이기 때문에.
이 게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상대방 쿼터백이 던진 공을 우리 팀 수비수가 낚아 채(Intercept) 엔드 존까지 뛰어가 터치다운을 만든 3번이다. 심지어 게임의 마지막 순간에는 브라운이 터치다운을 만들기 위해 던진 공을 수비의 엔드존에서 낚아 채 50야드까지 달려간 것 아닐까? 이미 승리는 굳어졌으므로 더 이상 전진은 하지 않았지만 그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41:32로 압승.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경기장을 빠져나온다. 모든 홈팀 팬들의 발걸음이 가볍고. 곳곳에서 ‘고, 브롱코스!. 우린 이겼다!(Go, Broncos! We win!)’을 외친다. 고속도로엔 자동차 후미 등 빛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나의 엔도르핀은 최고조에 달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10분. 7시간의 여정은 해피 엔딩이었고, 꿈에서도 주홍색 브롱코스 기어를 입고 손뼉을 치며 소리 지르며 고, 브롱코스(Go, Broncos!)를 외칠 것 같다. 이런 행복감. 이런 흥분. 언제였는지 기억이 없지만 가끔 시간을 내 이런 호사를 하는 것도 살면서 참 해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