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아테네(Athens)
새벽 5시. 마지막 기항지 그리스 아테네(Athens) 도착. 배에서 하선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선 시간은 7시. 미리 가이드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짐이 있으니 예약해 둔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투어를 시작하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방법을 물어봤지만, 짐 때문에 택시나 밴을 이용해야 한다며, 비용으로 200유로가 든단다. 울며 겨자 먹기로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여행을 출발하기 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아크로폴리스 입장권도 미리 예매. 하선장과 호텔의 거리를 알 수 없었고, 대중교통이용이 가능한지 등을 문의했을 때, 그는 시간이 충분하다며 9시 입장권을 사라고 안내를 했었다. 그의 안내에 따랐는데, 막상 아테네에 도착할 때쯤 되니, 시간이 촉박하다며 관광 밴이나 택시를 타라니, ‘엮였네?’ 하는 느낌.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었다. 가이드가 주선해 준 밴을 타고 숙소에 짐을 맡기고 다시 그 밴을 타고 아크로폴리스 언덕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밴의 기사에게 대금을 지불하고 우리들의 안내를 시작했다.(가이드가 지불하고, 우리가 가이드에게 대금을 지불했으니, 요금 차이가 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 기분이 많이 상한 상태였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인문학과 로마 신화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진 않겠지? 하며 투어를 시작했다.
여행기간 중 가장 더웠던 날씨. 그야말로 뙤약볕. 더구나 가이드의 말소리는 작았고 속으로 웅얼거리는 듯, 전달력이 한참 부족했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더위도 있었지만 우리들은 아침 5시에 일어나 강행군을 하고 있으니, 우리들의 체력과 나이도 좀 배려해 주어야 했던 것 아닐까? 우리 외에 다른 팀이 있었다면 문제는 달랐겠지만, 그날은 우리 6명밖에 없었다. 가이드는 매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하는, 그의 직업적인 일이겠지만, 우리들은 처음, 그리스라는 곳을, 더구나 아테네를 온 여행객들 아닌가. 좀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수신기의 이어폰으로 들리는 말을 영 알아들을 수가 없다. 가이드는 혼자 이야기를 하면서 빠른 걸음을 옮긴다.
고대 그리스는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이자, 철학의 도시. 민주주의 본산이자 의회주의의 표본이 되었던 곳. 그리스의 학교. 고대 그리스 문명의 꽃이자 모든 유럽국가들의 문명의 요람이 된 본거지인 아테네. 그 중심에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있다. 그 돌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사야 하고, 지정한 시간에만 입장이 가능하다.
언덕의 초입에서 만난 디오니소스 야외극장. 연극이 인류 최초로 공연된 곳으로 추정되는 곳. 당시에 1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 신전과 함께 위치해 있다. 기원전 5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아테네 문화의 상징’이라 불릴 만큼 고대부터 아테네인의 최고의 자랑거리. 연극은 물론이고 각종 공연을 행하는 곳. 기원전 4세기경 관중석이 석재로 재건축되었고, 78개 계단 맨 끝 열의 최장길이는 100미터, 최하단에서 최정점까지는 90미터의 위용을 자랑한다.
극장 옆에는 에브메니아 스토아(Stoa of Eumenes)를 지난다. 공연 소품을 보관하고, 악천 후일 때 관객의 피난처로 쓰였던 곳이란다. 이어 아스클레피우스 신전(Asclepius) 기원전 420년경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를 섬기기 위해 지었던 신전. 병실을 만들어 환자를 치료하던 곳이다.
이어 헤테로스 아티쿠스 (Odeon of Hetero atticus)극장. 철학자, 헤데로스가 죽은 아내를 위해, 그녀를 기리며 지어서 헌정했다는 음악당. 1950년에 복원작업을 진행했고, 5천 명 정도 수용할 수 있으며 현재에도 공연이 열린다.
플로펠리아(Propeilia)라 불리는 신전의 전각이 나온다. 기둥들의 높이와 크기의 위용이 대단하다. 기둥 문과 돌계단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파르테논신전(Parthenon).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 제1호. 그리스 문화의 진수. 아테네 여신을 섬기기 위해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의 가장 높은 아크로폴리스의 언덕의 가장 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의 어느 곳에서 올려다 보아도 보이는 곳.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을 택하며, 단순하지만 웅장함의 대표적인 도리아식으로 지은 신전. 페라클레스가 페르시아 제국을 물리치고, 전승기념으로 지어졌다. 짧은 기둥 8개, 긴 기둥 17개의 건축물. 2500여 년 이상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건축물의 동쪽에는 아테네 여인의 탄생을 주제로, 서쪽은 아테네 여신과 포세이돈 신이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을 조각해 넣은 화려한 장식이 있다. 총 92개의 메토프(Metope:사각형의 건축패널 요소로, 채색화나 부조 조각으로 꾸몄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군이다)와 300개 이상되는 인물과 동물들로 새겨진 건물의 주요 장식인 조각된 부조가 이어져 있는 프리즈(Frieze) 장식이 있다. 그리스는 신화로 시작해서 신화로 끝나는 나라임을 입증하게 하는 신전. 나무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사람에 밀리며 인증샷을 찍는다.
아직도 보수 공사 중인 파르테논 신전 옆에서 에릭티온(Erechtheion) 신전을 만난다. 여인상이 건물을 바치고 있는 작은 신전. 이오니아식의 대표적인 건물이란다. 기원전 4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아테네 신들의 왕인 에릭토니우스(Ericthonius)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떨군 자리에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으며 그 삼지창의 자리라고 알려주는 곳은 약간 파인 돌모양이었다. 전설의 고향쯤으로 치부해 두고 전망대로 걸음을 옮긴다. 360도로 아테네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 멀리 아크로폴리스 박물관과 미술관이 보이고, 흔적만 남은 역사의 자료들인 돌무덤들이 보인다. 아직도 발굴 중인 유적들.
건너편에서 파르테논 신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레스 신의 언덕’이라는 아레오파고스 (Ares Pagos)언덕. 입구에는 성경구절이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아레스 신에게는 딸이 있었고, 아레스 신은 딸을 겁탈하려 했던 신을 죽였단다. 이 언덕에서 최초로 살인에 관한 재판을 벌였다고 하고, 제우스신이 판사를, 올림푸스 12 신이 재판장을 맡았다고 하는 신화. 이러한 이유로 법정은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리스 대법원은 지금까지 ‘아레파고스(Areopagus)’라고 불린다.
언덕을 내려와 다른 방향으로 낮은 언덕을 오른다. ‘소크라테스의 무덤’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 청년들을 말로 유혹한다는 죄명을 쓰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작은 동굴 속에서 그가 생각했던 철학과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장소는 고대민주주의 집회 장소인 프닉스 언덕. 의회주의가 발달한 아테네. 아테네의 시민들이 투표를 통해 정치를 논했다는 곳.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는 여성의 참정권이 없었고 귀족과 노예가 분명했다. 현재의 시선으로 본다면 민주주의와 확연한 차이가 있지만 고대에는 그것이 최상이었을까?
주차장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숙소로 돌아가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지 않고 혼자 총총히 떠난다. 남겨진 우리들, 우여곡절 끝에 우버 2대를 불러 3명씩 나누어 타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번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이라도 가이드가 조금 더 친절히 숙소까지 오는 방법을 알려주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한국인 가이드를 택했던 이유 중 하나,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 좋고, 덤으로 말이 통하는 약간의 친절 같은 것을 기대했었는데, 아테네에서는 전혀 아니다.
종일 땀과 먼지 범벅이 된 우리는 샤워를 하고 점심 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골목 안, 케밥 집. 감자튀김과 함께 나오는 케밥과 지역 맥주 한잔씩으로 종일의 갈증을 푼다.
숙소 근처의 상가나 골목길의 낙서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길거리 예술이라고 봐주기에는 너무 지저분하고, 어지럽다. 선조들의 문화가 이렇게 이어져 가는 것이 안타깝다. 표현의 자유라고 하기엔 낯선 여행객에게는 익숙지 않다. 내 작은 염려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만은… 아테네의 밤공기는 눅눅하고 끈적인다. 종일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내일 예정되어 있는 그리스의 또 다른 도시는 조금 더 다정하게 다가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저녁이다.
가이드의 말을 알아 듣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은 이 글을 쓰며 위키피디아를 찾아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