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롱코스(Broncos) 게임 #5
더위가 가고 가을이 내리면 난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미식축구의 계절. 올해도 어김없이 브롱코스 기어들을 찾아 펼쳐 놓는다. 프리 게임에는 반팔로 시작한다. 그러다 옷소매가 길어지고 두꺼워지고 후디에 장갑과 털모자까지 찾아 쓰면 시즌이 얼추 끝난다. 콜로라도의 긴 겨울 동안, 목요일 저녁, 일요일 성당을 다녀와서, 월요일 밤까지 다양한 팀들의 게임들이 있다. 어느 팀이 게임을 하는지 챙겨보며 일주일을 시작하는 재미 쏠쏠하다.
내가 늘, 우리 팀이라부르는 덴버 브롱코스. 이번 시즌엔 프리 게임 3개를 다 이겼다. 어? 웬 일? 기대를 좀 해도 되려나? 생각했지만 지난 시즌도 프리 게임은 모두 이겼다. 작년 시즌 내내 승부의 시소게임을 하며 내 마음을 졸이더니, 간신히 플레이 오프에 올라가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새 감독에, 신생 쿼터백에, 10여 년을 내리막을 걷고 있는 브롱코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며 올 시즌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올 시즌 본 게임이 시작되고 억울하고 아깝게 2게임을 연속 졌다. 기운이 다 빠졌다. 희망을 접었다. 마음을 비웠다. ‘언감생심 무슨 디비전 플레이 오프나 슈퍼볼까지 올라가겠느냐’라며.
그렇게 힘을 뺐던 이유일까, 어제의 게임은 그야말로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 이길 기대를 전혀 안 했고, 3:17로 끌려가던 상황이었다. 더구나 필라델피아의 이글스(Eagles)가 누구인가? 지난 시즌의 슈퍼볼 우승팀 아닌가? 지난 시즌부터 지난주까지 20 게임을 연속 이긴 팀. 더하여 이글스의 홈구장에서 하는 게임. 누구도 브롱코스가 이길 거라는 예상을 안 했다. 나는 브롱코 티셔츠에 브롱코 귀걸이를 달랑거리며 성당을 가면서도, 그냥 ‘잘해라, 아무도 다치지 말고’라는 마음 정도.
한가위 미사가 끝나고, 성당 친교실에서 구역끼리 모여 점심식사를 하며 자매님들이 내 옷을 보고 한 마디씩 다 한다. ‘워메~ 귀걸이까지?’ 웃으며, ‘우리 팀이잖아. 콜로라도..’ 그때 남편이 다가오더니 3:10이라는 스코어를 보여 준다. 얼마 안 돼 3:17이 되었다. 전화기에서 게임 상황을 보며, 졌구나, 싶다. 당연하다는 생각.
식사가 끝나고 부엌 정리를 하면서 귀동냥을 한다. 지지부진한 2번째 쿼터와 하프 타임이 지나고 3번째 쿼터부터는 브롱코스의 수비진의 활략이 펼쳐진다. 상대편 쿼터백을 연달아 쎅(sack)을 시켜 넘어뜨리고, 공을 뺏는다.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 하는 느낌. 이글스의 공격을 완전 차단하며 기선을 잡아간다. 4 쿼터. 브롱코스가 터치다운을 해 10점을 만들고, 다시 또 터치 다운을 하면서 16점이 된다. 그때 감독의 기발한 작전으로 다시 앤드 존으로 던져서 2점을 내는 컨벌젼을 시도해 성공한다. 갑자기 전세는 역전 18:17. 희망이 있어 보인다. 와~~~ 잘하네~~~. 그렇게 4 쿼터, 터치 다운 2개와 필드 골 1개를 더하더니, 최종 점수는 21:17. 오메~ 이겼네!!!
10년 전, 그날의 함성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덴버가 생기고 시청 앞 광장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다던 시간, 덴버 브롱코스가 슈퍼볼 우승을 하고 시내 퍼레이드를 하던 날이다. 종일 로컬 뉴스 채널을 고정하고, 브롱코스 소식을 들었다. 선수들, 감독, 코치… 가족들, 배경, 연습 등으로 이어졌던 브롱코스의 날. 그때 나는 일을 했다. 병원 내 모든 직원들이 브롱코스 유니폼을 입었다. “Victory! Broncos!!” 대형 플래카드가 병원 건물에 붙여지고, 환자도 보호자도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박수와 함성을 질렀던, 콜로라도 주 전체가 축제였던 날.
그때, 나의 퇴직 후 버켓 리스트에는 ‘슈퍼볼 한번 가보기’가 추가되었다.
브롱코스 구장이 옮긴다는 기사는 지난달 발표 되었다. 청사진과 함께 올라온 소식. 주민들의 세금이 아닌 순수 민간 자본으로만 짓게 되고 2031년 시즌 오픈을 목표로 한단다.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는 콜로라도. 구장에는 지붕을 덮어, 날씨에 따라 개폐를 할 수 있단다. 새 구장 오픈후 2-3년이면 수퍼볼을 유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소식을 보고 들으며 80이 되기 전, 나의 버켓리스트를 실행할 수도 있을까?라는 꿈을 조심스레 다시 펼친다.
70이 한참 넘은 동양 할머니가 오렌지색 두꺼운 후디를 입고, 브롱코 기어들로 완전 무장을 한 채, 목이 터지도록 응원하는 나를 상상한다. 혼자 웃으며, 혼자 박수를 치며, 혼자 브롱코스 게임 다시 보기를 돌리고 또 돌려 보는 일요일 밤.
게임 후, 코치 인터뷰를 본다. '선수들이 모두들 잘해 줘서, 그들이 자랑스럽다. 이제 짐을 싸고, 다음 게임 장소인 런던으로 가야지요. 준비 운동을 좀 하고 다음 게임을 준비합니다....' 뭐 그렇게 이어진다. 기자가 묻는다.'런던에 가시는데, 어디를 구경할 겁니까?' '구경? 그런 건 없습니다! 우린 놀러 가는 게 아니고 일을 하러 갑니다!!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돌아와야지요.' 단호하다. 그렇지, 일하러 가는 거지.....
“이번 시즌도 홧팅!!! 끝까지 가보자!!!! 브롱코스!!!!!”